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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 대하여(박상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3-03 17:25
조회
145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1.

아주 오래전에 중풍으로 쓰러진 시모를 모시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시어머니의 성정이 괄괄했던지라 시집살이가 몹시도 모질었단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으니, 어려운 시모를 모시며 그러려니 하면서 참는 게 며느리의 도리인가 하며 살았단다. 돌아보면 눈물로 살아낸 시절이기도 하였단다.

그 무섭기만 하던 시어머니가 어느 날 쓰러졌다. 시어머니는 쓰러져서도 기세등등하였다. 아들은 어머니한테 극진했으나 자리보전한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며느리인 그이의 몫이었다. 심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몸을 쓰며 돌보는 일은 그이를 지치게 하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어머니를 이리저리 눕히며 기저귀를 갈자니 손목이 시큰거렸다. 똥 기저귀라도 갈려고 한쪽으로 눕힌 시어머니를 그대로 확 밀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욱하고 치밀기도 하였다.

그렇게 속으로 화를 삭이고 있을 때 딸과 남편이 주말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시간을 내주었다. “엄마, 주말에는 내가 할머니를 돌볼 테니 엄마 하고 싶은 거 해!” 힘들어하는 아내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남편도 딸의 말을 거들었다. “산에라도 가서 바람 좀 쐬고 그래~.”

“다른 자녀는 없었나요?” 내가 묻는 말에 그이는 “왜 없어! 시누이가 와서 나 대신 돌봐준다고 해도 시어머니가 몸에 손도 못 대게 그래!” 한다. “왜 그러시죠?” “왜 그러겠어. 자기 딸이 귀하니까 힘들고 지저분한 일 시키고 싶지 않은 거지, 그러니 내가 더 화가 나는 거야!” “정말 힘들겠네요!”

 



 

2.

돌발성난청으로 입원한 적이 있다. 입원하는 며칠 동안 병실의 환자는 계속 바뀌었으나 어르신 한 분은 나보다 먼저 입원해서 내가 퇴원하고 나서도 계셨다. 침대에서 꼼짝달싹 못 하는 할머니를 낮 동안에는 며느리가 와서 돌보다가 저녁 시간이면 퇴근길에 들른 아들이 잠시 지켜보다가 돌아가곤 하였다.

할머니는 아들은 자랑스러웠고, 며느리는 못마땅했다. 며느리가 잠시라도 자리를 뜨면 나한테 이 얘기 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잠깐의 이야기로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만큼. 내가 입원하고 이틀째인가, 낮에 약속이 있는 며느리 대신 아들이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환자를 돌아보던 간호사들이 헉, 하고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기저귀 갈아드리지 않았어요?” 간호사들의 말에 아들이 화들짝 놀라면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변을 본 지 오래되셨네요!” 할머니는 눈을 꼭 감고 있었고 아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지금 당장 갈아드리지 않으면 큰일 나요!” “내가 어떻게 해요! 이따 아내가 오면 하라고 할게요!” “아내가 언제 오는데요?” “저녁때 올 거예요!” “그때까지 기다리면 똥독 올라 큰일 나요!” “어휴, 난 못해, 난 못해요!” 아들은 그러면서 병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 일을 어쩐다, 비닐 가져오고 수건 가져오고 빨리빨리 해요~.” 세 명의 간호사가 할머니를 들어 올리고 비닐을 깔고 기저귀를 빼내고 씻기고 새 기저귀 채우고…. 그러는 동안 할머니는 간호사들과 아들이 하는 말을 두 눈 꼭 감은 채 귀로 듣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침 녘에 똥을 눴으나 차마 아들한테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할머니가 느낄 수치심에 대한 배려보다는 빨리 치워야 한다는 생각과 불감한 아들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민망해진 나는 슬그머니 병실을 나왔다.

3.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누군가에게 나를 의탁한다는 것은 그저 아픈 몸만 맡기는 게 아니라 체면과 기억과 수치심까지도 맡긴다는 것을. 지인의 시어머니가 딸에게 자신의 뒤처리를 시키지 않은 것은 귀한 딸에게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나의 몸을 의탁하기에는 딸이 먼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의 내밀한 곳을 의탁하기에는 딸보다는 며느리가 가깝고 임의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지인에게 위로의 말을 달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면 지인은 억울해했을까, “왜 그럴 때만 내가 임의로운 사람이냐고” 하고.

더없이 자랑스러운 아들보다는 못마땅한 며느리에게 자신의 몸을 의탁하는 게 자연스러운 시어머니는 수치심으로 눈을 꼭 감아버렸다. 아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자신이 돌보기 민망하면 간호사들한테 간곡히 부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저 난색을 보이며 펄쩍 뛰었으니 말이다. 저녁에 간호사들한테 그 이야기를 들은 며느리는 혀를 찼다. 그래도 어머니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았다.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말없이 곁에 있었다.

 

몸을 맡긴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약한 순간을 내어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돌봄이란, 한 사람이 가장 연약해진 그 순간에, 가장 낮아진 자리에서조차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