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도재형(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치적 에포케와 광장의 정동(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5-11-24 16:56
조회
159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정치적 에포케


 정치적 에포케 즉 판단중지는 기본적으로 법적·제도적인 체계로서의 정치를 대상으로 한다. 그리하여 그 바탕에서 작동하는 근원적인 사태를 발견·포착하고자 한다. 정치적 에포케를 하고 나면, 민주주의는 단지 법적인 제도로만 작동하는 게 아님이 드러난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국가 형성의 문제만이 아님이 드러난다. 민주주의는 국가 이전에 생활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때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나와 타인과의 관계, 즉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로 환원된다.

우리의 대의민주주의 정치가 국가 형성을 위해 헌법을 통해 규정한 결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광장의 정치는 이러한 대의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예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정치적 에포케에 연결해 말하면, 광장 정치의 현상은 정치적 에포케를 생각이 아니라 직접 행동을 통해 실현함으로써 드러난 것이라 할 것이다.

 정치적 에포케를 하면, 정치 감각이 근본에서부터 드러난다. 이 정치 감각은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생활세계적인 지각을 통한 만남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이 정치 감각은 기본적으로 몸과 사물 내지는 사건과의 만남에서 맨 처음 생겨나는 정동을 통해 생겨난다. 그런가 하면, 이 정치 감각은 ‘함께 잘 살자’를 체화한 의식을 통해 사회적인 불균등과 불평등을 느낄 때, 게다가 자신이 그에 따라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불리하다고 느낄 때 특히 더 강하게 나타난다. 말하자면, 생활 세계적인 정치 감각은 사회의 장벽에 몸으로 부딪쳐 튕겨 나 자신이 고통의 정동에 휩싸일 때 더 강하게 나타난다.

 

2 광장에서의 정치적 정동

 정동은 기본적으로 몸과 사물과의 물질적인 만남에서 이루어지지만,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간의 몸의 부대낌에서 그 밀도와 강도가 가장 높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뭇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몸은 삶의 경험을 통해 계속 새로운 크고 작은 몸틀들을 구비한다. 그리고 그 몸틀은 감각-운동적인 선험적 규정으로 작동함으로써 경험을 달리하게끔 한다. 이때 사물이나 타인들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정동의 형태와 밀도나 강도 역시 달라진다. 그리고 그 정동은 행동을 다르게 하고, 그 다른 행동을 통해 역으로 다르게 이루어진다. 몸에서 정동과 행동은 상호 순환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장에 모인 숱한 종류의 직업과 신분 및 정체성을 지닌 시민들의 몸들은 그들이 살아온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몸틀들을 구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만날 때 온갖 다양한 정동과 그에 따른 감각 및 감정이 복합 다층적으로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광장이라는 장소의 정치적인 특수성에 따라 그 복합 다층의 정동과 감각은 서로를 관통하면서 수렴 축적될 것이다. 서로 오가면서 부대끼고 악수하고, 아스팔트에 자리 깔고 앉고, 구호를 외치고, 손뼉 치고, 촛불과 응원 봉을 흔들고, 손을 높이 들어 환호하고, 한데 모여 행진하면서 또 구호를 외치는 등 할 때, 거기에서 각자의 몸에서 그리고 서로의 몸을 오가면서 형성되고 발휘되는 정동과 감각은 당연히 강렬한 느낌으로 공동과 공통의 위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모인 시민들은 각양각색이기에 그 삶의 다양성에 따른 다양한 크고 작은 몸틀들이 엮이면서 자아내는 정동은 그야말로 다양하게 중첩된 주름들에 따라 강렬한 탄성을 지닌 위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회사원, 룸펜 지식인, 여러 부문의 노동자들,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꾼, 여러 형태의 장애자,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갑질을 당한 자, 몰락한 자영업자, 취준생, 가정주부, 중고등학생, 대학생, 각 영역의 사회활동가, 농사꾼, 심지어 부도내고 도망 다니는 자 등등 그 다양한 면면이 화려할 정도로 다양한 몸들이 모여 그들 나름의 정동을 표출하고 그 정동들이 수렴 축적되어 광장의 혁명적인 위력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시민들이 신성한 예외 상태를 정확하게 오인하여 반헌법적 계엄과 군대 동원의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 세력의 파시즘적 폭력을 진압하고자 광장에 모이고 거리를 행진할 때 거기에서 발휘되는 정동과 감각들은, 비록 행동을 통해 동일한 방식으로 수렴되어 나타날지라도 그 저변에서 각양각색의 무늬와 리듬으로 발휘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만큼 다양성이 어우러져 강도 높은 방식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4월 4일 송현공원을 비롯한 광화문 앞까지 잔뜩 모여든 그 수많은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이를 여실히 일러주었다.

 

3 광장 혁명의 근본 정동: 용납할 수 없음

 광장에서의 정동은 정치적인 방향으로 분출되는 것일 텐데, 그 핵심 원인 또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한 마디로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용납할 수 없음’을 이성이나 지성적인 판단에 앞서 몸에서 먼저 즉각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몸의 직관은 근본적으로 몸의 정동에 따른 것이고, 그럴 때 몸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분쇄하고 정상으로 되돌리고자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용납할 수 없음’이야말로 광장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 정동이라 하겠다.

 ‘용납할 수 없음inacceptablité’은 몸 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이기도 한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가 정치적 문제가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다루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변증법에 대한 교조적인 이해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아 『변증법의 모험Les aventures de la dialectique』(1955)이란 책을 썼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피력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역사와 정신에 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을 철학적으로 말하기 위해 완전히 정교하게 만든 원리들을 기대하는 건 엄밀성을 추구하는 체하는 잘못된 태도일 것이다. 사건들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과 맞닥뜨리게 되고, 바로 그것을 해석한 경험이 하나의 테제가 되고 철학이 된다. (p. 9)

 

 이 인용문에서 줄 친 부분을 특별히 유념하게 된다. ‘정치적인 것’이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을 만났을 때, 거기에서 성립한다는 것으로 읽었다. 완전하게 정교한 철학적인 원리를 완성해서 그 이념에 따라 교조적으로 정치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들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을 만났을 때, 거기에서 정치적인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저 앞에서 제시한 정치적 에포케와 맥락이 닿는다. 미리 설정된 정치적인 원리나 이념에 따라 정치적인 현상을 추출하고 해석하려 하는, 이른바 체계에 따른 정치 과학적인 태도를 에포케하고, 그 바탕에서 작동하는 ‘용납할 수 없는’ 사건들을 발견하여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사건들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을 맞닥뜨릴 때, 그러니까 어떤 정치적 사건에 대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정동이 몸에서부터 일어날 때, 그 정동이야말로 정치적 감각과 행동이 제대로 작동하는 시발점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 철학과 정치적인 테제를 정립하려 한다면, 바로 이러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을 찾아 그 전모를 데이터로 삼아 해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의 핵심은 ‘용납할 수 없음'이라는 정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겠는데, 우리로서는 이를 광장의 직접 민주주의 정치 현장에서 여실히 확인하게 된다.

 

사진 출처


 

 다시 빛의 혁명이 이루어진 광장으로 돌아가 본다. 무능력한 국정에 사법적 정치적 부정부패로 크게 얼룩져 수없이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러 온 윤석열 정권이었다. 그래서 이미 ‘촛불행동’, ‘비상 국민 행동’ 등의 이름으로 수없이 퇴진 운동의 시위가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12·3 계엄과 내란처럼 그야말로 목숨을 바쳐서라도 결단코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 터지고 말았으니, 그에 따른 정동은 말 그대로 전율일 수밖에 없었다. 절망, 분노, 좌절, 탄식, 에 이어 함께 모임과 돌봄이 일차적인 정동으로 나타났고, 이에 광장의 행동에 나섰을 때, 모두의 정동이 한데 결집해 말 그대로 대대적인 혁명의 ‘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정동을 통해 모두가 하나의 역동적인 근원적 물질로 되돌아가 팽팽한 탄성으로 솟구쳐 오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뒤, 되돌려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 한데 모여 외치고 행동함으로써 급기야 신성한 예외 상태를 주장하던 윤석열의 파시즘적인 야망을 꺾어버렸을 때, 이차적인 정동인 환호와 환희에 이어 ‘함께 잘살기의 민주정치’를 위한 새로운 정치적인 연대와 돌봄의 정동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용납할 수 없음’은 ‘논의해 볼 수 있음’과 대립한다. 논의해 볼 수 있음은 ‘함께 할 수 있음’의 한계 내에서의 일이지만, 용납할 수 없음은 금기의 한계선을 넘어섰다는 절망과 그에 따른 분노를 수반하면서 ‘논의할 가치조차 없음’과 직결된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건 함께 잘살자는 정치 공동성을 향한 의사소통의 가능성, 즉 공론장을 아예 파괴하는 짓이다. 온건한 의미의 정치는 정치 공동성의 기반 위에서 현안을 놓고서 경쟁하는 가운데 토론하고 협의해서 타협하고 결정한 약속을 지키고,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 그 위반 사항들을 감시하고 처벌을 수행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의 근본 틀을 깨뜨려 의사소통의 정치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드는 짓은 결단코 용납할 수 없음에 해당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정치적 행위는 예외적인 방식의 혁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때 작동하는 일차적인 정동이 절망과 분노이고, 혁명이 성공했을 때 오는 이차적인 정동은 환희와 환호, 희열인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돌이켜 보면 환희와 희열이 가장 컸던 사건은 1979년 젊은 시절 부마항쟁 끝에 다락방에 숨어 있다가 라디오를 통해 독재자 박정희가 10월 26일 사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10월 27일 아침에 일어났지 않았나 싶다. 절망과 분노는 용납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목숨을 걸게 만드는 정동이며, 환희와 희열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바로 잡았을 때 일어나는 정동임을 처음으로 제대로 깨달은 사건이라 할 것이다. 나 개인으로서는 그보다는 강도가 덜하지만, 작년 12월 14일 여의도 광장에서 들었던 국회에서의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 결정과 올해 4월 4일 헌법재판소 근처 송현공원에서 들었던 대통령 탄핵 인용의 파면 결정 역시 그에 못지않은 정치적 정동의 대사건이겠다.

 

4 광장 이후의 광장

 문제는 ‘용납할 수 없음’이라는 정동을 일으켰던 직접적인 사건이 해결되었다고는 하나, 그 용납할 수 없음의 뿌리가 깊어 계속해서 그 가지들이 뻗어 나와 감당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기성을 부린다는 점이다. 이러한 썩은 가지들 쳐내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광장’은 지난한 투쟁을 통해 거둔 열매를 제도권 정치에 넘겨주었다. 급기야 새로운 대선을 치러 ‘광장’에 연합한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을 당선시켜 정권을 인수하도록 했고, 그들과 더불어 조국혁신당 및 진보당 소속의 진보 진영의 국회의원들이 순조롭게 제도 정치를 하도록 판을 꾸려 주었다. 이제 반헌법 계엄 내란 세력들을 척결하는 일이 급선무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재빨리 이를 위한 특검들이 꾸려졌고, 그래서 이제 광장의 비상 정치는 거의 정지되었으며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빛의 혁명을 완수하는 일이 진행되는 중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정세의 흐름이 전혀 만만치가 않다. ‘광장’의 관점에서 보면,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합법의 우산 아래에서 다소 움츠러들긴 했으나 도대체 물러날 기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란을 척결하는 일에 선봉에 서야 할 내란 재판부가 내란 수괴를 괴이한 수법으로 석방한 인물을 재판장으로 해서 계속 진행하고 있다. 그 배후에는 내란 주요 종사자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하여 정치 중립의 의무를 위반하고서도 전혀 물러날 기색이 없는 대법원장 조희대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누가 봐도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임에 분명한 전 법무장관 박성재의 구속 영장을 그가 계엄이 과연 불법인지를 정확하게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다툴 여지가 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법원이 두 번씩이나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내란 척결을 위해 설립한 특검에서조차 내란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노상원에 대해 징역 3년 구형을 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란 수괴인 윤석열의 손발 역할을 한 검찰은 대장동 사건에서 피의자 남욱에게 “배를 갈라서 장기를 꺼낼 수도 있고, 환부만 도려낼 수도 있으니, 네가 선택하라고 했다.”라는 식의 강압 조작 수사를 바탕으로 기소한 사실이 법정의 증언을 통해 드러나자, 그 일이 2심에서 정식으로 드러날 것이 염려되어 항소를 포기한 것을 대통령 이재명과 법무부 장관인 정성호가 압력을 가한 탓이라고 하여 18명의 검사장이 사표를 내는 등 집단으로 항명하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내란 수괴를 배출한 당인 ‘국민의힘’은 함부로 내란 운운하지 말라는 말을 예사로 하면서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표라는 자인 장동혁은 구속된 내란 수괴인 윤석열을 방문한 뒤 모두 힘을 모아 이재명 정권과 싸워야 한다면서 ‘이재명 탄핵’을 주장하고, 황교안이 내란 선전 선동 혐의로 내란특검팀에 조사를 받게 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등의 말로써 노골적으로 내란의 선동 선전에 동조한다. 다들 알다시피, 그 외 관련해서 주목할 사건이 한둘이 아니다. 자칫 이대로 가다가는 속된 말로 ‘죽도 밥도 안 되는’ 낭패를 볼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진 출처 


 

 무슨 말을 하려고 다들 아는 일들을 굳이 입에 올리는가 하면, ‘도무지 용납할 수 없음’이라는 정동을 일으키는 사건들에 대해 과연 어떤 정치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를 말하고 싶어서다. 광장에서의 직접 민주주의를 통한 시민혁명이 성공함으로써 제도권 정치가 정상화되었다고 해서 광장 정치가 문을 닫은 게 아닐 것이다. 제도권 정치인들은 광장의 시민들이 그들을 도왔다고 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광장의 직접 민주주의 정치가 제도권 대의민주주의 정치를 수단으로 싸안았다고 봐야 한다. 말하자면, 얼마 전 그때만 비상시국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비상시국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이제 ‘광장 이후의 광장’에 대해 나름으로 제안해 본다. 우선 광장의 직접 민주주의를 비상하게 열어야 한다. 그 핵심 의제는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의 해산이어야 한다. ‘국힘’은 오랜 세월 수구 보수의 정치적인 진영으로서 경제, 언론, 교육, 사법 등을 장악한 사회권력의 카르텔을 위한 정치적인 선봉 역할을 하면서 국가의 정치권력을 오남용해 온 국가 공동체의 암적 존재다. 그렇기에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정치 집단이라는 사실이 이번 반헌법 계엄 내란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고, 또 계속 드러나고 있다. 만약 ‘국힘’을 성공적으로 해산한다면, 그야말로 광장 직접 민주주의 시민혁명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국회를 비롯한 각급 지방단체장과 지방의회는 물론이고 국가의 폭력적 지배를 뒷받침하는 군대와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 등의 사법 권력의 영역에서도 비정상적인 부정부패의 인물들을 ‘숙청’할 수 있는 정치 개혁의 공간이 크게 열릴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표인 정청래 의원이 수시로 힘주어 말하는 ‘국힘당의 해산’이 그저 수사적인 정치적 압박에 불과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2014년 내란 음모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통합진보당을 해산했고, 그로 인해 당시 5명의 국회의원이 즉시 의원직을 상실했다는 건 다들 안다. 이번에는 실제로 내란을 일으킨 수괴를 둔 108명의 국회의원을 둔 거대 야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의 국회의원들과 소속 정당들의 움직임만으로는 전혀 쉽지 않은 과제다. 『빛의 혁명 183』이라는 책을 써서 빛의 혁명에 관한 일지를 어마어마한 실천적 기록으로 남긴 조정환 선생은 책의 마지막에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인류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제기한다.”라고 했음을 특별히 명기하고 있다.

 광장의 민주시민들이 먼저 국힘당이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정당임을 확실하게 규정하고 그 해산을 대대적으로 몰아붙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광장의 명령’을 받아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민주 진보 진영의 정당들이 일치단결해 움직여야 한다. 그리하여 정당 해산 청구권이 있는 정부가 연이어 확실하게 움직이게 하고 미흡하면 법무부 장관을 바꾸어서라도 헌법재판소에 ‘국힘’의 정당 해산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광장 이후의 광장’이란 문구를 만들어 제시하는 까닭은 이제 한국의 정치가 헌법에 명기된 제도적인 대의민주주의를 비제도적인 광장의 직접 민주주의가 뒷받침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광장의 직접 민주주의는 헌법에 전혀 명기되지 않았지만, 여러 영역에 각종 형태로 현존하는 시민사회의 주권적인 활력을 북돋우고, 그러한 시민 주권의 활력을 통해 명실상부하게 국민 주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가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생활 세계적인 민주정치의 기반을 공고히 확대해 나가야만 제도적인 민주정치가 그 바탕 위에서 건전하게 자리를 잡고서 정의롭게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함께 잘살기’를 중심으로 한 정치 사회적인 정동과 감각이 일상의 생활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 때, 언제라도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광장에의 참여가 건전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