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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동네는 넓고 할 일은 많다(3)-동네를 키우는 상점 ‘동키마켓’(이재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6-29 15:35
조회
719

이재환/ 시흥시청 지역화폐팀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사는 것, 곧 동네가 되다.’


 지난해 중소기업벤처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2021 동네단위 유통채널 구축 시범사업’ 공고를 냈었다. 동네단위 유통채널 구축사업이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소상공인+동네상점+소비자’를 연계하여 지역상품의 소싱·유통·판매 구조를 하나로 통합하는 하이퍼로컬(지역밀착형) 개념의 유통·물류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시범사업 공모결과 시흥시가 선정되었고, 함께 공모한 운영기관 ㈜컬쳐네트워크와 주식회사 빌드가 약 8개월 여 동안 시범사업을 마쳤다. 동네단위 유통채널 구축이라는 사업명 그대로 참여자들과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는 없으므로 ‘동키마켓’이라는 서비스명을 갖추었다. 동키마켓은 ‘동네를 키우는 상점’의 줄임말이다. 맞다. 예상하듯 마스코트는 ‘당나귀(Donkey)’이다. 당나귀는 예부터 소상공인의 친근한 벗이자 일꾼이었다.



 처음에 언급한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사는 것, 곧 동네가 되다’는 슬로건은 동키마켓의 지향점을 축약한 내용이다. 동키마켓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동네 단위’이다. 동네 주민과 지역 생산품을 연결하여 지역 내 유통과 소비를 지향하고자 한다. 최근 다시 회자되고 있는 ‘지역순환경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뤄내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런 사업을 할까?


나 자신만 하더라도 소비의 절반은 대형 e커머스 플랫폼을 통하고 있다. 없는 물건이 없고, 배송도 빠르면 반나절 만에 이뤄지니 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찜찜하다. 분명 우리 동네 시흥 포도를 주문했는데 나라를 한 바퀴 돌아 저기 옥천hub를 거쳐 오는 것도 그렇고, 겹겹이 쌓인 상품 포장지도 볼 때마다 지구에게 미안하고, 쇼핑몰 입점 판매 수수료도 만만치 않다고 하고, 온라인 쇼핑몰에 밀려 동네 가게와 소규모 생산자들은 점차 힘들어지고...


 더 이상 편리함에 취해 더 중요한 가치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지역순환경제를 생각하는 소비자들에게 맞춤형으로 선보인 공공 유통 서비스가 바로 동키마켓이다.


 동키마켓의 사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동키마켓 앱에 시흥시의 생산자들이 상품을 올린다. 마치 ‘당근마켓’에 올리듯 말이다. 예를 들어 시흥 포도 농부나 시흥 미산동 두부공장 사장님이 직접 상품을 올린다. ‘시흥 포도 100상자 10% 할인해서 팝니다’, ‘당일 생산 두부 3판 팝니다’ 등등. 쇼핑몰에 입점하려면 수십 퍼센트 대 수수료 부담 때문에 엄두를 못 냈던 지역 생산자들이 투박하지만 자유롭게 지역 온라인 쇼핑몰에 상품을 올릴 수 있다.


 동키마켓 앱에서 이를 본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면 결제는 시흥시 지역화폐인 ‘모바일시루’로 가능하다. 모바일시루는 현재 10% 인센티브 혜택이 주어지므로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10% 할인 효과를 보게 된다.


 지역화폐 결제까지 이뤄지면 소비자는 쇼핑한 물건을 수령할 오프라인 동키마켓을 지정해야 한다. 많은 물류 운송 및 포장비용이 드는 택배송 보다 퇴근길 또는 산책길에 들러 쇼핑한 물건을 픽업해야 한다.(불가피한 경우 별도이용료를 내고 택배송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이 오프라인 동키마켓은 새로운 가게들이 아니라 기존 동네 상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네 입구 슈퍼마켓이나 북카페 등이 ‘동키마켓+**수퍼’, ‘동키마켓+북카페’처럼 기존의 영업을 유지하면서 동키마켓이란 브랜드를 함께 사용한다. 일종의 숍인숍 개념이다.


 오프라인 동키마켓은 ‘앵커스토어’를 지향한다. 앵커스토어란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전달하여 꾸준히 발길이 이어질 수 있는 동네 사랑방같은 가게를 말한다. 지역 내 생산품을 지역 내 소비자에게 직접 연결해 전달하는 가치를 키우면서 쇠락해가는 골목상권을 되살려 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물건 픽업해오면서 가게 사장님과 가벼운 정담을 주고받으며 내친 김에 우유 한통, 막걸리 한 병 더 사는 느슨한 공동체 경제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동네단위에서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새로운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려는 시도가 동네단위 유통채널-시흥 동키마켓 시범사업이었다. 현재 1개의 동키마켓 쇼핑앱, 9개의 오프라인 동키마켓 상점, 약 50곳의 생산자 및 상품 구성이 시범사업 기간 내 구축 완료되었다.


 시범사업 이후 운영기관인 ㈜컬쳐네트워크와 주식회사 빌드가 동키마켓 참여 상점 및 생산자들과 함께 구축된 시스템을 돌리고 확산하게 된다.


 물론 당장 당일직송에 익숙한 지역 소비자의 큰 호응을 기대할 순 없을 터이다. 대신 물류 유통 및 재고처리 비용을 최소화하여 저렴하고 신선하며 특색 있는 지역 생산품을 제공함과 동시에 지역화폐로 결제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스며들 듯 지역 소비자들에게 다가 갈 것이다.


 지역 맘카페와 연계하여 소구력을 갖춘 지역 생산품 공동구매와 같은 이벤트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57만 시흥시 인구 가운데 32만 명이 사용하는 지역화폐 모바일시루가 모객과 마케팅의 첨병으로 서게 된다.


 지역 소비자들이 대기업 플랫폼에서 소비량 중 다만 10% 만이라도 동키마켓이란 채널을 이용한다면 지금도 시나브로 시들어가는 골목상권과 지역경제를 되살리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분 좋은 소식도 들린다. 오프라인 동키마켓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단속민원을 요청하는 시민이 위치를 묻는 시청 직원에서 ‘동키마켓 건너 편’이라고 일러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9개 오프라인 동키마켓이 간판을 건 지 보름도 안 지났음에도 눈에 띄다 보니 자연스럽게 앵커스토어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키마켓의 PB상품인 동키맥주와 두부도 맛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3차례 걸쳐 보낸 ‘동네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려 한다. 지역화폐 시루를 매개로 시흥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역 경제활성화+공동체 강화 정책을 소개 했다. 과거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지역과 동네로 눈길과 관심을 쏟기 마련이었다. 지역화폐 역시 지난 200여 년 간 경제가 어려워질 때 등장했다.


 물가는 오르고 돈은 돌지 않는 스태그플래이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동네에 관심을 가져보자. 파랑새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