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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에 대하여(염운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3-30 14:22
조회
854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유인원(類人猿)은 사람을 닮은 대형 원숭이를 말한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보노보 등이 유인원에 속한다. 전통적 동물원이든 사파리라 불리는 개방형 동물원이든 동물을 서식지로부터 분리해 가두어 사육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갇혀 있는 동물을 구경하러 가는 일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지만, 기린 같은 이국 동물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열광했다. 하지만 원숭이 우리 앞에서는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쳐다보기 민망하고 불편했다. 유인원이라는 이름처럼, 사람과 닮아도 너무 닮은 비인간 동물이 나를 쳐다본다. 특히 침팬지의 손, 특히 손바닥은 사람 손바닥과 똑 닮았다. 그 응시 앞에서 내 눈은 어디를 응시해야 할지 모르고 흔들렸다.


 가둔 자와 갇힌 자의 위치가 역전되는 착시현상은 사람과 닮은 동물일 때 더 극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갇힌 쪽이고 갇힌 나를 고릴라가 바라보는 것이라면? 털 없는 원숭이 사람을 고릴라가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이라면? 으스스하고 묘한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원숭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은 발달이 늦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동물이다. 타잔을 보는 원숭이 엄마 카라의 눈길이 그러했다. 타잔은 미국 소설가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Edgar Rice Burroughs)가 창조한 인물이다. 소설 『타잔(Tarzan of the Apes)』이 1914년 출간되고 모두 26권의 시리즈가 나왔고, 수많은 영화와 TV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타잔의 부모는 아프리카 식민지에 부임한 영국 귀족이었다. 부모를 잃은 타잔을 카라는 정성으로 돌보지만 1년이 지나도 제대로 걷지도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털도 나지 않는 하얀 피부라니! 원숭이 형제들과 물을 마시러 간 호수에서 처음으로 자기 얼굴을 본 타잔은 충격에 휩싸였다. “어째서 내게는 굳센 입술과 날카로운 송곳니가 없는가, 형제들의 넓적한 코에 비해 내 코는 어딘가 뜯겨나간 것처럼 작았다. … 그들의 코가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고 부러웠다.” 1) 타잔의 독백이다.


 으스스한 기분을 억누르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본다. 그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이빨을 드러내고 웃기도 하고, 입술을 주욱 내밀고 먼 곳을 보기도 한다. 끽끽 소리를 내고 머리통을 두드리며 항의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누구보다도 자연을 사랑하고 관찰하기를 좋아했다. 따개비, 지렁이, 비둘기, 개는 다윈이 특별히 사랑했던 동물들이다. 다윈은 동물원에 가서 유인원을 관찰하는 일에도 열심이었는데, 1872년 출판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The Expres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에서 원숭이의 감정 표현에 대해 썼다. 다윈은 다양한 종과 속의 원숭이들의 감정 표현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인간의 감정 표현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쁨, 즐거움, 애정을 표현할 때면 인간도 원숭이도 입술을 내밀고, 웃는 소리 내고 눈이 반짝인다. 고통, 슬픔, 고민, 질투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의 표현도 유사하다고 했다. 회색손올빼미원숭이가 슬픔에 빠졌을 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는 주인과 사육사의 증언에 대해서는 자신이 동물원에서 동종의 원숭이를 면밀히 관찰했지만, 비명은 질러도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도 원숭이도 사람처럼 슬픔을 느끼는 것은 틀림없다고 했다.


 다윈은 “어린 오랑우탄과 침팬지가 건강이 좋지 않아 실의에 빠진 모습은 아이들 못지않게 뚜렷하고, 아이들과 거의 다를 바 없이 애처롭다. 그들이 이와 같은 심신 상태에 놓여 있음은 그들의 힘없는 동작, 낙담한 표정, 흐린 눈, 그리고 변한 안색 등을 통해 드러난다” 2) 면서 어린 원숭이와 사람 아이의 감정 표현의 공통점을 찾아내 서술했다. 또한 “그림 18은 오렌지를 받았다가 빼앗긴 침팬지가 부루퉁해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침팬지와 유사한 입 내밀기 혹은 입술 샐쭉거리기를 부루퉁한 아이들에게서도 살펴볼 수 있다” 3) 고 적기도 했다. 오늘날 동물학자들은 인간의 감정을 동물에 곧바로 적용하는 지나친 의인화를 비판할지 모르지만, 다윈의 시대에 동물이 느끼는 감정을 인간과 같은 수준에서 논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시도였다. 다윈은 인간을 동물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이 아니라 동물을 인간과 같은 존재로 끌어 올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림1: 실망해서 부루퉁해진 침팬지, 우드 씨의 그림
출처: Darwin, C. R. 1872. The expres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 London: John Murray. First edition. (darwin-online.org.uk)​


 유인원은 사람과 유전자가 거의 같다. 사람과 침팬지는 98%, 오랑우탄은 97%의 DNA를 공유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지능이 높고, 사람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있고 자아가 있는 유인원의 동물실험을 2015년부터 금지하고 있다. 유인원의 실험은 금기시되고 있지만, 영장류는 여전히 실험에 쓰이고 있다. 신약 개발에서 쥐나 돼지가 아니라 영장류를 쓰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유혹 때문에 금지법이 없는 중국에서 실험용 영장류의 90% 이상을 사육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8년 11월 6일 전북 정읍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가 준공됐다. 원숭이 3천여 마리를 집단사육할 수 있는 규모로 필리핀원숭이·붉은털원숭이 590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난치병 치료 임상 연구에 활용할 실험용 원숭이 집단 사육시설이다. 준공식 당일 중국 윈난성이 고향인 붉은털원숭이 한 마리가 높이 7m, 상단에 최대 1만2000V의 전류가 1초 간격으로 흐르는 울타리를 넘어 사라졌다. 나이는 4살. 무게 4~5㎏, 키 60~70㎝의 이 원숭이는 탈출 13일 만에 생포됐다. 4)


 최근에는 유인원에게 비인간 인격체의 지위를 부여하는 판결이 아르헨티나에서 나와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14년 오랑우탄 산드라에게 비인간 인격체로서의 지위를 인정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에서 20년간 갇혀 지낸 수마트라 오랑우탄 산드라를 대리해 아르헨티나동물권변호사협회(AFDA)가 인신보호영장을 청구했고 승소했다. 두 번째 사례가 멘도사 동물원의 침팬지 세실리아였다. 세실리아는 동물원의 작은 콘크리트 우리에서 브라질의 소로카바 침팬지 보호구역으로 이주했다. 세실리아의 승소에 힘을 실어주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의 영장류학자 알도 히우디세는 “인간과의 엄청난 유사성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 그들이 억류돼 있다는 사실은 부조리하다” 5)고 말했다.


그림2: 오랑우탄 산드라
출처: Orangutan Granted Legal Personhood, Moves to Florida, Becomes Florida Woman (newsweek.com)



그림3: 침팬지 세실리아
출처: Cecilia, first chimpanzee released by Habeas Corpus - GAP Project (projetogap.org.br)


 동물의 법적 인격성을 인정한 두 판례는 동물은 단지 동물복지법 같은 보호법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동등하게 보통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제기한다. 이런 소송들이 동물이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이고, 동물은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가 다양한 종의 생명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동물은 비인간 외계 영토의 ‘저쪽’에 사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 행사가 불가피한 다종 공동체 안에 살고 있다. 6) 인간은 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다종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동물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를 물어야 하고,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는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2021년 7월 19일, 동물권에 관한 주목할만한 법 개정안이 발표된 것이다. 민법 98조 물건의 정의를 다룬 조항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명시하는 법 개정안이 발표된 것이다. 민법 98조 개정안이 확정되면, 앞으로 관련 법이 개정될 예정이고 여러 변화가 예상된다. 동물보호법은 30년 전에 제정되었지만 7) , 현재 반려동물은 민법상 물건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상해를 입혀도 주민의 물건에 대한 재물손괴가 되고, 사체는 재활용 불가 폐기물로 취급되어 쓰레기봉투에 담겨 버려진다. 법 개정안은 동물을 생명체로 존중하고 공생해야 한다는 사회적 감수성이 어느 정도 높아진 것의 반영이 틀림없지만, 4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다는 한국의 현실에 비춰보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다윈 진화론 이후 인간은 다른 생명체에 비해 특별함을 주장할 근거를 상실했다. 진화론은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로서 다른 생명을 활용하도록 신으로부터 허락받았다는 기독교 사상의 오랜 도그마에 균열을 가져왔다.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뒤얽힌 강둑(Entangled Bank)’의 묘사에서 함축적으로 말해 주듯이, 인간은 다양한 종들이 이루는 생태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연의 요소에 의해 가지치기하듯 생물 종이 변형하고 분화되고, 그렇게 변화한 종들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생태계를 다윈은 뒤얽힌 강둑이라고 표현했다. 다윈의 혜안은 인간종(種)중심주의(Anthropocetrism)를 넘어서, 인간-비인간동물이 이루는 다종 공동체를 어떻게 일궈나가야 하는지 실마리를 제시해 준다.


1)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 안재진 옮김, 『타잔』 (다우, 2002), 58쪽.
2) 찰스 다윈, 김성한 옮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사이언스북스, 2020), 206쪽.
3) 위의 책, 210~211쪽.
4) 허정원, 「1만2000V 넘어 탈출한 원숭이, 살아 있다는데...일주일째 행방 묘연」, 『중앙일보』, 2018년 11월 13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119015#home ; 송경은, 「실험용원숭이는 왜 고압전류 위험 무릅쓰고 사육장을 탈출했나」, 『동아사이언스』, 2018년 11월 21일.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25212
5) 데이비드 보이드, 이지원 옮김, 『자연의 권리: 세계의 운명이 걸린 법률 혁명』 (교유서가, 2020), 94쪽.
6) 앨러스데어 코르런 지음, 박진영, 오창룡 옮김,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창비, 2021), 11쪽
7) 시사기획 창, 개는 죄가 없다. https://news.v.daum.net/v/20210829225327190 2021년 8월 29일 방영. ‘시사기획 창’은 동물보호법 제정 30주년을 맞아 학대와 방치의 대상이 된 동물, 특히 그중에서도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 개가 처한 현실을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