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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검찰제를 바란다(이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2-23 10:36
조회
840

이윤/ 경찰관


 자치검찰제는 검찰개혁 이슈 중 상대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적게 받고 있다. 검찰로부터 경찰과 공수처에 수사권 일부를 넘겨준 것으로 충분하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불완전하나마 지금의 수사권조정에 이르기까지 험난했던 여정을 감안하면 자치검찰제는 언감생심이긴 하다. 그래도 나는 완전한 형태의 자치경찰제를 바라는 만큼이나 완전한 형태의 자치검찰제가 시행되기를 바란다.


 형사소송법을 처음 공부할 때 접한 ‘검사 동일체의 원칙’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웅동체’라는 말도 동물의 왕국에서 달팽이의 연애를 목격하기 전까지는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검사 동일체’는 새로운 생물종도 아니고 뭘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네이버에 검색하니 ‘검찰권의 행사에 있어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하복종 관계에 있다는 원칙’이라고 한다. 상명하복이라면 군인이 끝판왕인데 ‘군인 동일체의 원칙’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상하복종 관계 외에 뭔가 더 있는 것 같다. 도대체 그 특별한 것이 무엇인지 검사를 안 해봐서 모르겠다. 2003년에 검사 동일체 원칙을 ‘일부’ 폐지하여 '검찰사무에 관한 지휘·감독 관계'로 변경했다고 하는데, 뭐가 달라진 것인지 역시 모르겠다.


 수사, 기소, 영장청구, 형집행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조직이 하나의 몸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중앙집권적 조직은 일사불란한 의사결정과 행동력으로 큰 힘을 가진다. 게다가 검사는 선출직이 아니라서 정년까지 권력을 사용할 수 있다. 오죽하면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은 영원하다’는 말을 한 검사 출신 정치인도 있지 않은가. 거대하고 영속적 생명을 가진 리바이어던을 눈앞에 둔 두려움에 몸이 덜덜 떨릴 지경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형사사법기관은 생명, 신체, 재산을 박탈할 수 있는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는다. 국민은 그 권한의 수여자이면서 동시에 대상자인데, 통제 수단이 변변치 않으면 자신이 수여자였음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처분 대상자로만 인식한다. 그래서 리바이어던의 압도적 힘 앞에 굴복하게 된다. 이런 거대한 힘에 대해 국민이 주권자로서 통제할 수단은 분권, 다원화, 민주화다. 이 세 가지는 자치검찰제와 잘 어울린다.


 검찰이 굳이 중앙집권적 조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범죄는 각각이 별개의 사건이다. 사건별로 범죄사실이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위법성과 책임성을 검토한 후 실체적 판단 근거인 증거가 충분하고 형식적 요건에 맞으면 기소하고 공소유지하는 것이 검사의 임무다. 전문성을 갖춘 수사관과 검사에게 중앙집권적 조직에 의한 명령체계 및 통일성과 효율성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자치검찰제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외국의 자치검찰 사례를 보자. 독일은 연방대검찰청, 주고등검찰청, 주지방검찰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연방대검찰청이 주검찰청에 대하여 지휘감독권을 갖고 있지 않아서 16개의 주검찰청이 각기 분리/독립하여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대부분의 형사사건이 주 관할(95%)인데, 주 아래 자치단위인 카운티별로 검찰청이 조직되어 있고, 카운티 검사장(District Attorney)은 대부분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 연방검찰, 주검찰, 지방검찰은 상호 견제를 통해 권력분립의 이상인 ‘견제와 균형’을 실현한다.


 2005년 베를린의 한 경찰서에 방문했을 때 마침 그 경찰서 담당 검사도 들렀기에 잠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검사는 거의 매일 경찰서에 방문하여 경찰에서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법률적 자문을 하고, 경찰이 수집한 증거의 증거능력과 증명력에 대해 조언하며, 수사 방향을 논의한다고 했다. 부러웠다. 한국 검사는 개별 사건에 대해 수사관들과 머리를 맞대고 그런 논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지휘권이 있을 때에도 경찰이 보낸 수사서류만 보고 서면으로만 지휘할 뿐이었다. 글로만 하는 의사소통은 일방적이고 얕다. 진정한 협력 관계는 서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때 가능하다. 자치검찰제를 하면 자치경찰과 함께 지역 주민을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검사업무의 주된 목적이 될 것이다. 그런 검사는 주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영웅이 된다. 배트맨 시리즈 ‘다크나이트’ 속 정의로운 지방검사 하비 덴트처럼.


 ‘더 킹’이라는 영화에 보면 1%의 정치검사들이 부정부패에 눈 감고, 수사 정보로 협박하여 부와 권력을 탐하는 모습이 나온다.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긴 하지만 현실로 구현될 위험성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정적을 정치적·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 의혹만으로 많은 검사들이 달려들어 전방위적 수사를 할 위험도 자치검찰제에서는 적어질 것이다. 하이에나가 사자보다 무서운 이유는 상대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아가서 다수 집단의 힘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자치검찰제와 관련된 논의는 이미 여러 번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2016년 검사장 직선제가 포함된 검찰청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적이 있고, 2019년 6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도 미국의 검사장 선출방식이 자치검찰제라며 도입에 찬성한 바 있다. 검찰개혁 과정에 검찰이 요구한 자치경찰제가 2021년에 첫발을 떼었다. 경찰은 엉뚱하게 뒤통수 맞은 격이긴 하나 그래도 자치경찰이 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이니 불만은 없다. 이제는 조건이 갖추어졌으니 자치경찰의 파트너가 될 자치검찰제 논의도 본격화되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