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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폭력이 아니다. ‘남성의 여성 대상 폭력’ 이다(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9-15 15:05
조회
783

신하영옥/ 여성활동가


 지난 7일 여성가족부는 “2021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발표했다. ‘97년 이후 매년 양성평등주간(2020년부터 9월 1일~9월 7일로 변경)에 발표되는 본 통계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여성들의 삶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여성 가구주와 여성 1인 가구 수가 증가했고, 정치 및 경제영역의 격차는 미약하나마 감소율을 보여준다. 이를 마치 여성들의 정치, 경제적 권리가 커져서 여성들이 독립 가구를 형성하는 것처럼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차별의 극단적 형태인 여성폭력을 보자. 십 년 전에 비해 가정폭력 검거 건수는 7.3배(50,277건), 성폭력은 1.7배(33,171건), 불법촬영은 3.8배(1,354건 이중 남성 94.1%), 데이트폭력 및 스토킹 검거 건수는 1.4배(9,858건 및 312건)에 달한다. 연일 뉴스에 보도된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살해, 20개월 딸 성폭력, 데이트폭력 살해 등은 이러한 통계를 현실로 증명한다. 검거 건수가 늘어난 것은 사건 발생 건수 역시 많이 증가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1% 정도만 신고를 하고, 가정폭력 피해자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 신고를 포기하고, 불법촬영 역시 재유포에 대한 두려움에 포기하고, 데이트폭력 및 스토킹의 경우 처벌할 법이 없다. 이는 실제 사건은 훨씬 더 많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이 결과는 그동안 법과 제도로는 여성 폭력을 제대로 예방·방지할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검거는 사전 예방이 아니라 사후 대책에 불과하다. 남성에비해 여성들이 사회 안전에 대해 낮게 평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남성 32.1%, 여성 21.6%). 여성가장 및 여성 단독 가구수가 증가는 위험요소를 가중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근절하거나 예방이 불가한 것일까?



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인 지난해 5월1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나와 자매의 안녕을 바라는 여자들 모임’ 소속 회원들이 쓴 희생자 추모 글들이 붙어 있다.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여성들의 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양성평등 강국으로 인정되는 스웨덴은 2014년에 ‘페미니스트 정부’를 선언하였다. 세계일보가 스웨덴의 성평등 정책을 취재한 것을 보면 시사점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성평등 과제의 초점을 “남성의 여성 대상 폭력(Men’s violence against women)”에 두고 있다. 이를 위해 10개년 계획에 따라 40가지의 강력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가해자의 강도 높은 처벌과 피해자의 강력한 보호제도를 담고 있다고 한다. “젠더 기반 폭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용어가 너무 모호하며, 이것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관련된 것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고,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젠더 기반 폭력의 대부분이 남성이 가해자이고 여성이 피해자인 점”이라는 이유이다. 나아가 “국가 전략의 제목으로 명시 함으로써 이 문제의 ‘사회 구조적 측면’ 즉, 여성과 남성 간의 권력 관계에서 남성의 권력이 파괴적으로 사용되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강력한 정부의 뒷받침과 그동안 이루어 놓은 정치, 경제적 성평등으로 인해 정책 결정에 여성들의 관점이 반영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국가 차원에서 폭력 예방의 다양한 측면에 점수를 매기도록 해 관료를 규제하는 한편, 학교에서 폭력 예방의 가치를 다루도록 해서 규범과 인식을 바꿔나가고 있다. 또한, 여성폭력이 구조적 측면-남성과 여성의 위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치적, 경제적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다양한 정책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르게 구조화한다. 시사인이 조사한 20대 여자 현상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강하게 생각하는 여성집단과 페미니스트를 남성혐오로 생각하는 남성집단이 사회적 관점에서 반대의 경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한 여성들의 공통 특징은 이들이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미투운동, 낙태죄 폐지, 강남역사건 등 일련의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페미니즘적 관점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성범죄로 인한 피해’이다. 이에 비해 20대 남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성범죄 무고’이고, 한국여성들이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에 전체 남성 평균이 ‘크다’에 64.1%를 답했으나 이들은 50%만 ‘크다’고 답했다. 또한, 52.4%는 ‘한국여성들이 성범죄를 당할 위험을 실제보다 과장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페미니즘과 다른 사회적 성향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도 있다. 20대에서 강한 페미니즘적 경향을 보이는 집단이 진보 지수가 강한 경향을 보이는데 소수자와의 연대, 사회 제도와 사람에 대한 신뢰 등에서 높은 지수를 보인다. 반대로 소수자에 대한 반감과 제도와 사회에 대한 불신이 높은 20대 남자들은 포퓰리즘 성향이 강하고, 사회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페미니즘을 제도권의 주류라는 인식으로 이어질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20대들은 사회적 박탈감으로 소수자와 일체감이 낮으며,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경향을 보임을 알 수 있다. 반대로 강한 페미니즘 성향의 20대 여성들은 자존감이 높고, 여성의 차별적 지위를 사회 구조적 책임으로 생각하며, 차별에 대한 경험은 소수자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지고, 따라서 이들이 선호하는 정치세력은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 금지와 다양성을 우선하는 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들의 관점과 인식을 페미니스트로 구조화하였다. 그리고 강한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한 집단은 정치적 진보성향을 보인다. 성차별을 넘어 소수자의 차별과 배제 등 사회적 자원의 분배와 노동 등 사회적 차별구조에 관심이 높다. 이들은 차별의 극복을 위한 정치참여의 필요성을 느끼며, 참여할 의지가 높은 집단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이 지지하는 현실 정당이 없다는 점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당이 없음을 나타낸다. 20대 남성들이 ‘국민의 힘’ 이라는 보수정당을 선택한 것과 달리 20대 여성들은 이들의 선명한 진보성을 감당할 만한 정당의 부재앞에서 부유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정책은 ‘아무도 위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억압이 존재하는 곳에서 우선 고려될 대상은 피억압 집단이다. 이들이 억압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이들에 대한 고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이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 이유이다. 20대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젠더’로 퉁치는 모호한 평등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별에 의한 권력관계의 평등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페미니스트가 된 것은 구체적인 남자에 의한 구체적인 여자에 대한 폭력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는 ‘젠더 기반 폭력’을 기각하고 ‘남성의 여성 대상 폭력’의 근절이라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 진보정치의 핵심 세력인 20대 페미니즘 집단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