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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119’ 필요하지 않나요(윤요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7-06 11:49
조회
756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요즘 주변에서 자주 들리는 단어들이 있다. 주민자치, 마을돌봄, 돌봄공동체 등이 그것이다. 하고 있는 일과 위치가 그렇다보니 원하지 않아도 부르기도 하고 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귀가 자꾸 향하는 듯도 하다. 예전에는(물론 아직도 그렇지만) 정부-광역시. 도-지방자치단체-읍면동사무소-마을로 내려오는 일관된 하향식 정책과 제도, 사업들이 정보로 전해져오고 할지 말지 선택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았다. 체계화하고 조직화해야 효율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제대로 실현된다고 생각한 행정 중심의, 중앙중심의 시스템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정부나 행정이 어렵거나 부족한 부분을 위탁이나 공모방식으로 기관, 단체 또는 국민들이 수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복지’ 부분에서 대표적으로 구조화된 현실을 보게 되었다. 보건복지부에서 내리면 현장에서는 읍면동 복지팀이나 복지관, 자생 봉사단체가 그 일을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몇 년간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은 나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복지전달체계 개편’이라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심심찮게 가게 되었다. 복지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모든 복지대상자를 위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다 감당하기 힘들어서인지 현 정부 들어서서 생활권 단위(마을)를 중심으로 주민 스스로 돌보는 커뮤니티 케어, 마을돌봄체계 구축 등 새로운 복지정책을 모색해보는 듯하다. 이 얼마나 괜찮고 좋은 소식인가. 예전 마을공동체가 살아있던 시절 이웃을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선한 마을생활을 다시 복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계획은 그럴싸하고 취지도 좋고 기관, 단체들도 모이고 하는데 뭔가 삐그덕대는 모습이 보이고 원래 목적대로 현장에 잘 실현되는지는 의문이다.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초보 농군 딱지를 떼고 마을 이장이 되었을 무렵인 2010년 어느 날로 기억된다. 이장의 중요 임무 중 하나는 면이나 농협 등에서 마을주민들에게 공지해야 할 일을 마을방송을 통해 알리는 일이었다. 감자 종자 신청하신 분들에게 몇월 며칠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가져가시라는 방송을 막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이른 아침 마을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도로에 나와 손짓을 하시며 내 트럭을 세우셨다. 할머니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집 불이 나간지 일주일이 넘었고 배달시켜야 하는 가스도 끊어진 지 열흘이 넘었다 하신다. 가스는 보통 두 통이 있는데 한 통을 열어보니 가스가 공급되었고, 전기는 누전차단기가 고장나 시내에 나가 사다가 교체해 드렸다. 내게는 이 간단한 일이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는 도시에 사는 아들내미에게 전화를 해 놓고 이제나 저제나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마을에 들어와 산지 5년이나 지났는데 마을의 이런 사정을 미처 몰랐던 내가 한심스럽고 안타까웠다. 젊은 사람들이 없는 농촌에서, 이런 간단한 생활의 어려움을 이웃에게 부탁하고 서로 도우며 살았던 마을공동체는 옛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진 출처 - 필자


 고민이 되었고 마을 젊은 작목반, 별빛 교육센터 선생님들과 이런 문제를 얘기했고 해결할 고민 끝에 나온 것이 ‘긴급출동! 우리마을 119’다. 전기, 가스, 보일러, 수도 등 기본적인 생활의 불편함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요청할 수 있는 구조를 마을에 만들자는 것이었다. 일단은 별빛 사회적 협동조합에 젊은 친구들이 일하고 있으니 스티커를 만들어 마을 어르신들 댁에 전화기 옆, 냉장고, TV 등 눈에 잘 띄는 곳에 일일이 방문하여 붙여드렸다. 그렇게 마을 스스로 돌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복지관이나 행정 읍면동사무소에서는 할 수 없거나 어려운 일을 마을은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기어이 2018년 별빛 사회적 협동조합에 ‘나이 들기 좋은 마을 팀’(노인복지팀)도 만들고 마을 119 활동을 기본으로 어르신들과 함께 나누고 살아가는 일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우리마을 119 두 번째 센터는 우리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에 생겼으면 하는 바램과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정부의 정책방향도 bottom up(아래로부터) 방식으로 바꾸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멀기만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색하고 낯설다. 더디고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하는 주장도 일면 타당성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마을일은 마을스스로 특히 우선적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도움은 우리사회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춘천시는 ‘우리마을 119 설치 및 지원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에는 곳곳에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각 종 봉사단체, 주민자치회 그리고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 정부는 자치단체는 행정은 이 주민들이, 시민들이 스스로 서로 돌봄을 잘 할 수 있도록 필요한 환경과 제도와 예산을 지원해주면 된다. 그렇게 될 때 마을돌봄은 곳곳에 풀뿌리처럼 정착할 것이고 공동체가 회복되는 ‘마을’로 진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