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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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도재형(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짓는 일(강대중)
강대중 /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건축주가 되어 집을 지어보는 게 오래된 꿈이다. 집 책꽂이에 관련 책도 여러 권 있고, 집 짓는 동영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기도 한다. 지방 소도시와 인근 농촌에 사시는 아버지와 친척 어른들이 집 짓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여러 차례 본 탓인지 집 짓기는 살면서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땅도 없고, 천정부지 오르는 건축비를 감당할 재력도 없어 집 짓기는 인생 희망 목록의 한참 뒷순위로 밀려나 있다.
집은 아니라도 무엇이든 짓는 일에는 자꾸 마음이 간다. 어느 도시의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동네 어르신이 손수 지은 개량 한복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서슴없이 구입해 즐겨 입는다. 서울시청에서 명동 가는 길목 여러 곳에 아직 남아 있는 양복 짓는 집 앞을 가끔 지날 때도 옷 짓는 분들을 힐끗힐끗 바라본다. 그래서일까, 셔츠 단추가 덜렁거리면 내 손으로 직접 꿰매기도 한다.
직업이 연구인지라, 연구를 핑계로 옹기를 짓는 분도 오랫동안 만나고 있다. 손재주가 모자라 내 손으로 장독을 짓는 날은 오지 않겠지만, 무릎 높이 항아리와 커다란 냉면 사발을 직접 만들어도 보았다. 항아리는 집 현관 근처에 두고 매일 바라본다. 냉면 사발은 비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사용한다. 설거지할 때 그릇 안쪽에서 내 집게손가락의 마디가 지나간 느낌을 마주칠 때 남모르는 행복도 누린다.
‘짓다’ 혹은 ‘짓는다’는 우리 말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우리의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밥을 짓는다고 하고, 농사도 짓는다고 쓴다. 입는 옷, 먹는 밥, 사는 집, 즉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를 책임지는 말이 ‘짓는다’인 셈이다. ‘짓다’는 자기를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미소를 짓고, 눈물를 짓고, 한숨을 짓고, 얼굴빛과 표정을 짓는다. 글을 짓고, 시를 짓고, 말을 짓는다.

사회적인 삶, 정치적인 삶에서도 짓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일의 매듭을 짓고, 결론을 짓는다. 함께 무리를 짓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기도 한다. 짓는 일로 점철된 게 인생이지만, 이름을 짓는 일 또한 인생의 거사이다. 사람의 이름을 지어 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이름에 담긴 뜻처럼 인생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간절한 마음이 또 있을까. 이름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바꾼 이름처럼 인생도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묘지 앞 작은 비석이나 모두가 기리는 기념물에 새겨진 이름을 볼 때, 이름 없는 용사를 기리는 전쟁 조형물 앞에서 섰을 때, 그 이름 주인의 (이름도 남기지 못했던) 인생이 마음으로 밀려 들어와 숙연해 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짓는 일은 계획하는 일과 밀접하다. 계획한 대로 다 되면 좋겠지만 제대로 계획하지 못하면 틀림없이 나중에 어려워진다. 흔한 말로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백 년짜리 계획이 교육이란 말이다. 교육과 관련한 제도나 정책이 자주 바뀌면 곤란하다고 주장할 때 인용하는 사람도 많다. 적어도 백 년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세워야 하는 게 교육계획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 말은 교육의 성과가 단기간에 나타나기 어려우니 오래 두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임기 반환점을 맞았지만 잘하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는 야박한 평가를 받는 윤석열 정부에서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10년짜리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백년지대계라고 말은 하면서도 10년 앞을 내다보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계획도 없었던 게 그동안 국가의 교육정책이었다. 중요한 교육정책은 정권과 무관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대통령 임기의 두 배나 되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도록 입법했다.
이 일을 맡은 국가교육위원회는 2년 전 출범을 하며 2026년부터 시행할 계획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교육위원회는 2025년 3월 31일까지 10년 계획을 확정해야 한다. 8월 31일까지는 교육부 등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하는 지침을 통보해야 한다. 그 지침을 받은 행정기관과 지자체는 12월 31일까지 시행계획을 완성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10년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이 오리무중이다. 설익은 내용이 언론에 조각조각 보도된 적이 있지만, 어떤 내용도 아직 공론에 붙여지지 않았다. 답답한 노릇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백 년을 살지 못한다. 백 년 전과 비교하면 수명이 많이 늘어났지만, 그래도 백 년을 건강하게 사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한 사람의 인생에 교육의 영향이 매우 크다면, 그 교육의 성과도 백 년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생애에서 반드시 나타난다.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그래서 어폐가 있다. 농사 중에 자식 농사가 가장 짓기 어렵다고 한다. 자식 농사의 결과를 살면서 결국은 다 확인할 수 있으니 생겨난 말일 것이다.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하는 윤석열 정부가 교육이 가장 큰 고통인 이 나라의 미래 세대에게까지 죄를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름을 다시 지었다는 대통령 영부인의 현재 이름에 담긴 뜻이 적어도 10년짜리 이 계획에는 부디 실현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