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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와 기소처럼 재판도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이동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4-07 15:45
조회
274

이동우/ 변호사


 

원래도 다양한 일이 쉴새없이 일어나는 대한민국이지만, 근래에는 세계적인 사건들까지 겹치면서 정말 하루하루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벅차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만 4년을 넘어 5년 차에 접어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이 전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고, 초등학생들도 유가에 관해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큰 파급력을 갖는 사건들이 반짝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가 금방 사라져갔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허용된 것과 검찰개혁의 일환인 공소청과 중수청 설립을 위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허용은 재판도 수사와 기소처럼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공권력의 행사이므로 헌법에 부합하는지를 판단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 사건이다.

 

검찰개혁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국민적 관심은 작게 받았으나,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 헌법소원이 허용된 것은 우리나라 사법 역사에 비추어볼 때 엄청난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상 헌법재판소의 시초라고 여겨지는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 헌법재판이 도입된 큰 이유 중 하나는 법원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법원의 강력한 반대로 헌법재판소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헌법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 헌법소원을 허용하지 않았다. 도입하려는 제도의 가장 큰 목적을 배제하고 도입하는 실로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랬던 우리나라에서 여러 상황이 맞물리면서 재판에 대해서도 헌법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 헌법소원이 허용된 것이다. 헌법재판소 제도의 가장 큰 도입 목적이 제도 도입 약 38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니 실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도입이 실질적인 4심제로 기능해 국민에게 불편만을 가중할 것이란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앞서 언급한 대로 법원이 내린 재판이라고 해서 감시와 통제의 대상에서 제외될 순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원칙을 현실화했다는 점에 있다.

 


사진: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재판소원’시행 관련 안내 페이지) 갈무리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격언처럼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 제도적 권력은 그 자체로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법원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확정 짓는 판결에 대한 권리를 독점한 채 그 어떤 외부적 감시와 통제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법원은 스스로 국민주권주의를 규정한 헌법 위에 군림하면서 법원의 결정이 곧 이 사회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절대적 철칙이라는 독선적 모습이 점차 강해졌다. 중간중간 독재정권 시절 내려진 판결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도 보이며 국민의 법원으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그러한 변화는 큰 흐름이 되지 못했다. 법원이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변모하지 못했다는 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은 바로 대통령선거를 불과 33일 앞둔 2025년 5월 1일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을 뒤집은 판결이다. 국민의 대표는 국민이 선출한다는 민주주의 원리와 국민주권이라는 헌법 제1조의 규정을 철저하고 무시하고, 내가 인정하지 않는 후보는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독선과 오만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실로 엄청난 사법 권력의 독점이자 남용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재판도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이 제기됐고, 급기야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이 허용된 것이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허용은 국민을 위한 법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법원은 과거사 사과와 같이 검찰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적 요구와 눈높이에 부합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법원이 스스로 천명하는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기 위해서도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법원의 변화가 곧 법원 구성원을 포함한 국민 모두의 행복과 소중한 인권을 보호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