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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노동’이란 이름 붙이기(도재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3-17 10:46
조회
161
도재형/ 이화여자대학교 법전원 교수
2025년 12월 고용노동부의 업무보고에서 장관은 “모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나라”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 존중 입법 패키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세부 과제로서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이하 ‘일하는 사람 기본법’ 또는 ‘기본법’이라 한다) 제정을 통해 공정한 계약을 체결할 권리,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등을 법률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권리 행사 과정에서 갈등 발생 시 국가가 조정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발표하였다. 고용노동부의 계획대로라면, 올해 5월경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후속 사업이 시행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하여 22대 국회에선 김주영 의원, 장철민 의원, 이용우 의원, 김태선 의원, 박홍배 의원, 임이자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여러 법률안이 계류되어 있다. 고용노동부의 설명에 따르면, 기본법 제정안은 일하는 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은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인격을 존중받고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공정한 계약 체결 및 적정 보수 등을 보장받을 권리, 사회보장 제도를 향유할 권리, 일과 양육․돌봄․휴식․여가 등 개인 생활과의 조화를 향유할 권리, 직업능력 개발 관련 교육․훈련을 받을 권리, 본인의 일 또는 경력 정보에 관한 권리, 노무 제공 조건 및 지위 개선 등을 위해 단체를 결성하거나 이에 가입할 권리 등(고용노동부, 2026. 1. 19.자 「권리 밖 노동 보호를 위한 패키지 입법 설명자료」).
기본법의 보호 대상인 ‘일하는 사람’은 노동법상 근로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지위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즉 기본법은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법 등 노동관계 법령이 정한 근로자인지를 따지지 않고,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종사자, 특고, 프리랜서 등 많은 일하는 사람이 노동법의 문턱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4년 현재 자신의 소득 가운데 3.3%(사업소득세)가 원청징수되는 1인 자영업자의 규모가 약 870만 명에 이르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보호 범위로 포섭될 것으로 예상된다(2026. 2. 17.자 시사인).
정부와 여당의 기본법 제정 움직임에 대해 노동계 일부는 반대한다. 그 이유로선 ‘별도의 기본법 제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의 확대 적용을 통해 근로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거나 ‘권고나 노력 의무만 열거해선 안 되고 더 많은 금지 규정과 처벌 조항이 필요하다’는 이유 등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제정 취지와 내용을 오해하거나 그 효과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갈무리
먼저, 그 주장처럼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여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모든 일하는 사람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포함하여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노동 과정의 현실에 맞지 않다. 예컨대 배달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더라도 이들에게 1일 8시간, 1주 40시간의 근로시간제를 적용하는 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앞에서 설명한 870만 명의 일하는 사람의 노무 제공 모습이 다양하다는 점도 무시해선 안 된다. 이들 중 배달 플랫폼 종사자나 보험설계사, 대리기사 등과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은 1, 200만 명 내외이다. 나머지 6, 700만 명의 사람들은 SNS, 숨고, 크몽 등과 같은 플랫폼이나 전통적인 일감 알선 과정을 통해 일하고 있다. 기본법은 이러한 대다수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이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제정을 근로기준법의 적용 확대라는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사안을 연결하려는 무리한 시도이다.
다음으로,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권고 및 노력 규정만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은 그 제정의 의미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기본법 제정의 첫 번째 의의는 일하는 사람에게 ‘노동자’란 이름을 붙여 이들의 권익을 노동법적 시각에서 보호함을 명문화한다는 것이다. 과거 특고, 프리랜서 등 새로운 고용에 관한 보호 정책을 논의할 때 항상 걸림돌이 된 것이 주무 부처를 정하는 문제였다. 이들을 자영업자로 볼 경우 경제부처가 담당해 경제법을 적용하고, 노동자로 보면 고용노동부가 관장하며 노동법을 살펴보게 되기 때문이다. 즉 관할 부처를 어디로 할 것인지는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기본법의 제정 취지는 일하는 사람의 권익 보호 책무를 고용노동부와 노동위원회에 맡김으로써 일하는 사람들이 첫 관문을 통과할 열쇠를 제공하려는 것이다(이 점이 경영계가 기본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아가 비록 일부 조항이 권고 규정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성문법 국가에서 일하는 사람의 권리가 실정 법규에 명시된다는 점은, 비록 그 내용이 근로기준법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결코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비가 오던 2026년 2월 10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노동법학회와 고용노동부의 공동 주최로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및 「근로자 추정 제도」 입법 토론회”가 열린 바 있다. 그런데 그 회의실엔 입법안을 제출한 국회의원들이나 노동계의 대표자 중 누구도 있지 않았다. 870만 명의 일하는 사람들의 처지가 그러한 듯하다. 조직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엔 찬성하지만, 실제 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첫 번째 실마리를 풀기 위해 나서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모습의 일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는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안은 늘 당위론과 원칙에 막혀 연구자들의 토론회에서 맴돌고 있다. 때때로 나는 산업혁명 이후 봉건제가 끝나고 새로운 생산 체제가 등장할 무렵, 그 시대의 사람들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와 비슷한 고민 속에서 가지 않은 길을 모색했을 거라고 상상하곤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새로운 정책과 법제를 마련하는 데 주저했을 수 있으나, 결국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용기 덕분에 ‘노동법’이란 사회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제정 역시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지만, 그 방향이 옳은 이상 지금 용기를 내어 일하는 사람들에게 노동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첫걸음을 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