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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화난 어른들의 ‘처벌 외주화’,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한영선)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2-26 10:23
조회
701
한영선/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전 서울소년원장
“촉법소년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어리다는 이유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엄벌해야 한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 헤드라인만 보면 대한민국은 무법천지의 소년 범죄 공화국이 된 것만 같다. 실제로 통계 수치는 이러한 공포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법원행정처의 사법연감에 따르면 소년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2015년 34,075건에서 2024년 50,848건으로 많이 증가했다. 특히 경찰서장이 송치하는 촉법소년 사건은 2015년 6,756명에서 2024년 21,887명으로 3배 이상 폭증했다. 이 숫자 앞에서 대중은 분노하고, 정치권은 연령 하향이라는 칼을 빼 들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통계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싶다. 과연 아이들이 더 악해진 것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더 많이 법정으로 내던지고 있는 것일까?
통계의 착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경찰서장이 촉법소년으로 송치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소년이 촉법소년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찰은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에 대해서는 수사할 수 있는 권한도 없고, 사법적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제상 촉법소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소년법원 판사뿐이다. 소년법원 판사는 사건을 조사한 후에 사안을 따져서 심리불개시, 불처분 또는 보호처분 등의 결정을 하게 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소년부 판사가 내린 결정의 내용이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4년 심리불개시와 불처분 결정은 18,206건으로 35.7%에 이른다. 심리 불개시 또는 불처분이란 사안이 경미하거나, 굳이 보호처분을 할 필요조차 없다고 판사가 판단한 사실을 의미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과거 같으면 학교나 가정, 혹은 지역사회에서 훈육하고 타이르며 해결했을 사소한 다툼이나 일탈 행위들이 지금은 무차별적으로 법원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다. 경찰은 규정에 따라 기계적으로 아이들을 송치하고, 학교와 피해자는 교육적 해결보다는 “법대로 하자”며 아이들을 사법 절차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는다. 통계적으로 범죄가 폭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이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처벌의 외주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나는 이 현상을 화가 난 어른들의 ‘처벌의 외주화’라고 부르고 싶다. 갈등은 우리 사회 어디에나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건강한 공동체라면 갈등 발생 초기 단계에서 대화와 화해, 협상과 같은 자율적인 해결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갈등 해결 기술을 이미 잃어버렸고, 갈등 상황이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갈등을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승패(Win-Lose)’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아이 간의 사소한 다툼이나 비행을 목격했을 때, 어른들은 교육적 지도를 포기하고 가장 손쉽고 강력한 수단인 ‘경찰 신고’와 ‘법적 처벌’을 선택한다. 이는 갈등 해결에 드는 시간과 감정적 비용을 지급하기 싫어하는 ‘게으름’이자, 훈육의 책임을 국가라는 공권력에 떠넘기는 비겁한 태도다. 아이를 가르치고 길러야 할 어른들이, 화가 난다는 이유로 그 역할을 판사에게 외주를 주고 있는 셈이다.

EBS 뉴스 갈무리
‘즉각적인 처벌’이 망치는 미래
이러한 ‘엄벌주의’와 ‘즉각적인 사법 처리’는 공동체의 사회적 자본을 파괴한다. 갈등 해결의 스펙트럼에서 대화와 조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물리적 강제력이나 사법적 결정에 의존할수록 공동체는 해체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아이들을 망친다는 점이다. 발달범죄학적으로 전체 범죄 소년의 93.2%는 청소년기에 일시적으로 비행을 저지르다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범죄를 중단하는 ‘청소년기 한정형 범죄자’이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과자’라는 낙인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깨닫고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회복의 기회’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이들을 무조건 사회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들이 감정적으로 소년원 또는 소년교도소와 같은 격리 시설로 보내진다면, 10년 후에는 진짜 범죄자가 되어서 사회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반항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의 호소
갓난아이가 울 때, 우리는 아이가 부모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고픔이나 불편함을 호소하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욕구를 해결해 준다.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도와주세요”라는 말 대신에 반항을 선택한다. 그들의 행동은 결핍된 환경과 사랑의 부재를 알리는 신호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신, “시끄럽다”라며 처벌의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다.
어른의 품격
통계의 숫자에 속지 말자. 아이들이 흉포해진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관용이 사라진 것이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국가와 사회가 져야 할 ‘교육과 보호’의 책임을 아이들에게 전가하는 가장 나쁜 선택이다.
진정한 어른의 행위는 아이들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을 돕고 가해 소년에게 ‘범죄 중단’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화가 난다고 해서 아이들을 법정으로 내몰지 말자. 차가운 수갑 대신 따뜻한 관심으로, 판사의 판결문 대신 어른의 지혜로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진짜 어른의 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