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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피니언 오항녕의 독사관견 讀史管見 ‘반헌법행위자열전’이라는 선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7-21 13:00
조회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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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 전주대 명예교수

 

[오항녕의 독사관견 讀史管見]‘반헌법행위자열전’이라는 선물



‘반헌법행위자열전’은
“현실 법정엔 공소시효가 있을지 모르나
역사 법정엔 시효 없다”는 편찬위원회의 선언처럼
한 인간이 살았던 행적을 후대가
판단할 사료로 남기고자 한 것이다





대법원장까지 지내며 헌법을 배반한 행적이 차고 넘쳤던
민복기의 사례를 보며 이 땅의 역사를
감추고 싶었던 역사학의 진면목을 본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


역사학계에서 권위를 가지고 자주 인용되는 발언 중에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이탈리아 학자 베네데토 크로체의 말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역사에 취미가 있는 시민이 한글 창제나 예송(禮訟) 논쟁에 관심을 갖거나, 역사학도가 과거의 수많은 사실 중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찾아 탐구하는 것은 현재 자신의 문제의식이나 관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설사 재미로 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러하다. 아니 재미야말로 시대를 반영하지 않는가.


그래서 크로체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의 말은 우리에게 추가 과제를 제시한다.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주체는 ‘지금, 여기 사는 나’다. 그렇다면 역사 이해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는 말이 된다. 나의 문제의식이나 관심이 어떤 교육, 문화, 사회적 배경에서 형성되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과거 역사를 왜 이런저런 식으로 이해하는지 알 것 아닌가? 이런 까닭에 나는 크로체의 말보다 “역사 공부의 중심은 현대사, 당대사”라는 말이 우선권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당대인의 착각


하지만 이런 질문을 가로막는 장애가 있다. 우리들이 흔히 갖는 착각이다. 우리가 누구보다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그저 내 주변만 알 뿐이다. 조금 먼 데서 벌어지는 사건도, 작당도 알 수 없다.


지난 7월10일 김용옥 선생은 “분명히 내가 살아온 시대인데, 내가 이렇게 무식한 줄 몰랐다”고 한탄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 1차분 출간을 기념한 국민보고회의 강연에서였다. 여든 된 노학자가 당신이 살아온 당대사, 예를 들어 ‘조봉암이 죽었다’ ‘4·19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알았는데, 그 흐름, 배경, 전개를 몰랐다는 고백이었다.


역사학도의 입장에서 볼 때 대가(大家)도 피해갈 수 없던 탄식은 당연했다. 그 이유는 첫째, 이미 말한 대로 인간의 경험과 감각의 폭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무엇보다 내 살아생전에 겪은 현대사라도 기록을 보고 학습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역사 탐구의 아주 보편적 진실 때문이다. 모든 기억은 철저히 인간의 교육과 두뇌 활동을 통해 전수된다.


 

민복기 대법원장 키드


한홍구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반헌법행위자열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지만 내가 그 성과를 직접 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다. ‘민들레’에 실린 “‘경술국적’의 아들로 대법원장… 인혁당 사법살인 주도”라는 김성수 시민기자의 기사가 계기였다. 그 기사에는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에 실린 민복기(1913~2007)에 대한 내용이 요약되어 있었다.


기사를 읽으며 나는 지금도 대법원장 하면 민복기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는 걸 깨달았다. 내심 그 잠재의식이 놀라웠다. 민복기가 1968~1978년 10년 넘게 대법원장을 했다는 걸 확인하고 그 이유를 알았다. 감수성 깊은 청소년 시대, ‘대법원장’과 ‘민복기’는 같은 말이었다.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대법원장 조희대조차 그의 자리를 밀어내지 못했으니, 나는 정녕 ‘민복기 키드’였던 것이다.


 

이와모토 후쿠키


일제강점기에 민복기가 창씨개명한 이름은 이와모토 후쿠키. 이름인 ‘복기’를 그대로 두고 ‘민’씨 성을 이와모토로 바꾼 것이니, 정확히 말하면 창씨만 하고 개명은 하지 않은 셈이다. 그의 아버지는 민병석으로, ‘1910년 강제합방 때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庚戌國賊)’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의 부와 권력을 배경으로 민복기는 “1937년 일제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조선총독부 판사가 됐고, 독립운동가를 재판하는 법정에 배석판사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전쟁으로 서울이 폐허가 됐을 때조차 승마를 즐겼고, 1950년대 중반부터 골프를 쳤다는 건 넘어가자.




<반헌법행위자열전> 1차분.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노태우 정부까지 약 45년간 내란, 민간인 학살, 고문 조작 등 중대한 반헌법 행위에 관여한 공직자 312명의 행적을 12권에 걸쳐 기록한 프로젝트.

<반헌법행위자열전> 1차분.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노태우 정부까지 약 45년간 내란, 민간인 학살, 고문 조작 등 중대한 반헌법 행위에 관여한 공직자 312명의 행적을 12권에 걸쳐 기록한 프로젝트.





법관이었던 그가 헌법을 배반한 행적은 차고 넘쳤다. 대통령 박정희가 연루된 삼성재벌의 한국비료 밀수사건(1966년)도 그의 손을 거쳐 축소·은폐되었다. 1971년, 판사들이 사법부에 대한 정치권력의 간섭에 맞서 항의 성명을 냈을 때 이를 막은 것도 민복기였다. 1972년 박정희가 유신 쿠데타를 일으켜 국회를 해산하고 헌정을 중단시켰을 때도 그는 이를 ‘획기적인 헌법 개정’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1975년, 중앙정보부 등이 고문으로 조작한 간첩사건이었던 민청학련·인혁당재건위 사건 상고심에서 대법원장 민복기는 상고를 기각했다. 그 결과 도예종, 서도원 등 8명이 사형 판결을 받았고, 선고 18시간 만에 집행됐다.


내가 이때 사형이 집행된 8명 중 한 명인 우홍선이란 분을 알게 된 것은, 93세의 나이로 인터뷰에 나선 그의 부인 강순희의 구술(口述)인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민청학련 사건은 2007년 32년 만에 재심 재판부에서 무죄를 확정했다. 민복기가 죽던 해였다. ‘역사상 최악의 사법살인’에 대해, 민복기는 사과 한마디 남기지 않았다.


 

정작 감춘 역사들


‘민복기 키드’ ‘10월 유신 키드’인 내가 왜 이리도 민복기의 행적을 몰랐을까? 나의 게으름은 상수니까 논외로 하겠다. 나의 무지는 역사 학습과 교육 자체의 질곡에 그 이유가 있다. 우선 근대 역사학은 현대사를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법학 등에 미뤄놓고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학이 대학의 분과학문이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명색이 ‘국사(國史=국민국가사)’를 배우지 않는가? 국사에는 현대사가 당연히 들어가지 않는가? 이 지점에서 역사학계에서는 “역사학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과거를 탐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건이나 인물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평가할 수 있다고 핑계를 댔다.


실제로 내가 중고등학교, 대학을 다니던 1970~1980년대에 현대사 수업은 거의 없었다. 일제강점기도 잠깐, 6·25도 잠깐, 이후 역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 현대사는 놔두고 과거만 다루었다. 그리고 역사학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가르치고 탐구하면 드러날 ‘이 땅의 어떤 역사’를 감추고 싶었던 것뿐이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탄생


<반헌법행위자열전> 프로젝트는 2015년부터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과 평화박물관에서 진행한 편찬 사업이었다. 편찬위원회는 “현실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있을지 모르나 역사의 법정에 시효란 없다”고 선언했다. 열전(列傳)이 인물사를 서술하는 방법이니, 한 인간이 살았던 행적을 후대가 판단할 사료(史料)로 남기고자 한 것이다.


맹자(孟子)는 일찍이 “공자(孔子)가 춘추시대를 기록한 역사서 <춘추(春秋)>를 편찬한 뒤로,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두려워하였다”고 말한 바 있다. 맹자의 말은 “<반헌법행위자열전>은 내란·부정선거·학살·고문 및 조작·각종 인권유린 등으로 헌법 파괴를 일삼던 자들의 책임을 기록하여 후대에 남기는 일”이라는 편찬위원회의 말과 다르지 않다.


열전 편찬위원회는 7월10일 남양주시 마석에 있는 모란공원, 민주화운동으로 숨진 분들이 영면하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헌정식을 가졌다. 그곳에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홍세화 선생도 묻혀 계신다. 선생은 1979년 유신 말기 대표적인 간첩조작이었던 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민복기가 1978년 12월에 정년퇴임하지 않았으면 남민전 사건도 재판했을 것이다. 담배 끊으시라는 압력을 바람처럼 피하시며, 파리 코뮌 당시 처형된 시민들의 묘비가 있는 페르라셰즈 묘지 위치를 자상하게 일러주시던 선생의 생전 모습을 먹먹하게 다시 떠올린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의 출간을 계기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열전’도 읽고, 평화박물관 건립에 작으나마 후원도 했다. <친일인명사전>이 시민들의 관심으로 빠른 시일 내에 간행을 마쳤던 경험을 이번에도 해보고 싶다. 얼마 전 배운 대로, 위키를 활용해 제미나이와 클로드가 <반헌법행위자열전>을 학습하도록 해야겠다. 일단 오늘은 헌법을 다시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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