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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불허는 죽으란 말'(한겨레 2005.04.2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15:05
조회
302

“난민 불허는 죽으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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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추방될 위기에 놓인 버마 ‘민주화 운동가’ 마웅저(36)가 25일 오후 서울 구로구 항동 성공회대학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가 열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는 지난해부터 청강생으로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종근기자


미얀마 ‘민주화 운동가’인 마웅저(36)는 요즘 곧 추방당할 것이라는 공포감에 떨고 있다. 2000년 동료와 함께 낸 난민인정 신청이 13일 법무부로부터 최종 기각됐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의 나의 행적을 정부가 상세히 파악하고 있을 텐데, 지금 상태로 돌아가라는 것은 죽으러 가라는 말이나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미얀마(이들은 미얀마라는 국호가 군사정권에서 임의로 고친 것이라며 버마라는 이름을 쓰고 있음)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11년 전인 1994년 군사정부의 탄압을 피해 한국에 왔다. 공장을 전전하던 그는 99년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창립을 주도했다. 회원이 21명인 한국지부는 달마다 두 차례씩 서울 한남동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에서 △아웅산 수치 가택연금 해제 △1400여명의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여 왔다. 매달 한 차례씩 군사독재 고발 사진전과 민주화 촉구 서명운동도 열었다.

미얀마 독재저항 9명 “야속한 코리아” 
추방위기…13명 중 4명은 허용 ‘기준 애매’

마웅저는 난민신청 때 자신의 활동이 담긴 신문기사와 사진 등을 ‘증거자료’로 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외비’라며 그가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조차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 고국으로 돌아가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데 문제가 될까봐 2003년에 민족민주동맹에서 탈퇴했는데, 이것이 영향을 준 것 같다”며 “그러나 탈퇴 이후에도 한국에서 반정부 집회를 계속해 왔다”고 말했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미얀마인은 그뿐만이 아니다. 법무부는 13일 난민신청을 한 미얀마인 13명 중 4명에 대해서는 난민으로 인정했으나 나머지 9명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또 이들 9명에게 5일 안에 출국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유예신청을 받아들여 3개월 출국 유예 조처를 내린 상태다.

모아(32)는 현재 민족민주동맹 회원인데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같은 민족민주동맹 회원인데 왜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서 군사독재 반대시위를 한 것이 무슨 큰 죄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군사정권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하소연했다. 르윈 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부회장은 “일본에서 민족민주동맹 지부원도 아닌 사람이 반독재 시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2003년 귀국했다가 14년형을 선고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결정에 대해 “이유가 무엇인지나 알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법무부 관계자는 “난민심사 절차 과정을 상세히 공개하면 외교 문제를 불러일으키거나, 불법 체류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어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관리들의 고압적인 태도도 이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마웅저는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가면 담당자들은 우리들의 이름을 불러 신원을 확인한 뒤에는 꼭 손짓이나 턱짓으로 오라 가라는 신호를 보낸다”며 “5일 안에 출국하라는 통보를 하면서도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는 ‘당신들 돌아가도 죽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르윈 부회장은 “식민지와 군부독재 정권의 경험 등 한국과 버마는 많은 점에서 비슷해서 기대를 걸었다”며 “각국에 흩어진 버마 민주화 활동가들에게 다 물어봤지만 난민인정 불허 5일 안에 출국하라고 통보한 나라는 코리아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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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인정 불허 통보를 받은 마웅저, 마웅마웅저, 쩌쩌르위, 모아, 튼튼윙(왼쪽부터)이 르윈 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부회장(맨 오른쪽)과 함께 22일 오전 경기 부천시 심곡2동 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사무실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것은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을 상징하는 깃발이다. 이순혁 기자 


■ 난민인정제 문제는

심사위 민간위원 4명 뿐…전문성 떨어져
두 위원회 중복 깊이 없고 시간만 끌어
불복때 결정당사자에이의제기 부적절

“신청인은 대한민국에 체류하면서 자국의 반정부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귀국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난민협약 제1조에 규정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가 있는 공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음.”

마웅저에 대한 법무부의 ‘난민인정 불허’ 통지서 내용이다. 한 사람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결정이지만, 불허 결정의 구체적인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난민 심사를 더욱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난민심사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청서 제출→난민인정실무협의회→난민인정협의회→법무부 장관 공표’의 과정을 거친다. 난민인정실무협의회의는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장을 위원장으로 국가정보원, 외교통상부, 교육인적자원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 과장급 8명과 국제법학회와 대한변호사협회,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로 된 민간위원 4명이 참여한다. 법무부 차관이 위원장인 난민인정협의회도 실무협의회와 같은 부처 국장급 공무원 8명과 민간위원 4명이 참여한다.

전문가들은 우선 공무원들이 다수인 위원회 구성을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또 직급만 다른 위원회의 중복도 문제이다. 황필규 변호사는 “참여하는 공무원들의 직급만 다를 뿐 같은 일을 처리하는 위원회를 두 개나 만들어 비효율적”이라며 “위원들도 자신들의 의사만 표시했을 뿐 어떻게 의견이 모아져 결정이 이뤄졌는지는 모르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마웅저 등에 대한 난민 심사 과정에서 실무협의회는 서면 회의로 대체됐다. 위원들은 법무부로부터 서류를 전달받아 개별적으로 난민 인정 가·부만을 적어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입국관리국 관계자는 “중복된 두 위원회의 문제는 내부적으로도 공감하는 부분”이라며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청인이 난민인정 불허 결정에 불복할 경우 결정을 내린 당사자인 법무부 장관에게 이의를 제기하도록 돼 있는 것도 고쳐야 할 점이다. 난민인정실무협의회 민간위원인 김병주 변호사는 “결정을 내린 당사자에게 이의제기를 신청하도록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행정심판의 경우처럼 결정을 내린 부처의 상급 기관에 이의를 제기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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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난민 처리를 위한 전담 인력을 양성하고 전담 부서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장복희 난민인정실무협의회 위원(가톨릭대 교수)은 “인권선진국이 되려면 난민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심사관을 늘리고, 난민업무를 전담하는 단독 부서를 따로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에서 23년 동안 망명 생활한 홍세화씨는 “불법체류자를 단속하고 관리하는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이 난민 문제를 다루는 것 자체가 제3세계 난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대변한다”며 “신청자와 신청자의 조국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제대로 알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처럼 외교부에서 난민 업무를 다루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난민 인정자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 정부가 난민 인정자에게 지원하는 것은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전부다. 한 변호사는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난민들의 기본적인 생존권 보장을 위해 내국인과 같은 수준의 사회안전보장 혜택을 배려한다”며 “우리나라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명시한 정도의 혜택을 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순혁 김태규 기자  

■ 난민신청 현황

10년간 안받다 2001년 물꼬…총 494명 신청 37명 승인받아

1951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서 정의한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특정 사회단체 참여 등의 이유로 인한 박해의 공포를 피해 조국을 떠난 뒤 귀환하지 못하거나 귀환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1992년에 유엔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가입했으나, 10년 가까이 단 한 명의 난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예 난민인정 신청을 받는 기관조차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2001년에야 에티오피아인 한 명이 첫 난민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듬해엔 콩고인 한 명이 추가됐다.

난민 신청과 허가는 2003년 들어 크게 늘어났다. 한해 20~30명에 머물던 난민 신청 건수가 2003년 84명으로, 2004년엔 145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4월1일 현재 99명이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 하지만 난민 인정 건수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03년에는 버마 민족민주동맹 회원 3명을 포함해 12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2004년 18명, 올해는 3월까지 5명이 난민으로 등록됐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난민 인정을 신청한 외국인 494명 가운데 129명이 난민 여부를 심사받았고 365명은 심사 대기 중이다. 난민 심사를 받은 129명 가운데 최종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37명으로 28.7%의 승인율을 보이고 있다. 이순혁 기자


■ 미얀마 민족민주동맹이란?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은 1988년 9월 미얀마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정부수립을 목표로 출범한 정당이다. 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가 이끌고 있다.

군사정권 맞선 아웅산수치 정당…탄압 심하자 국외서 반정부 활동

1990년 치러진 총선에서 전체 485석 가운데 392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하지만 군사정부는 즉시 선거 무효를 선언한 채 지금까지 정권이양을 거부하고 있다.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에 대한 가택연금, 민족민주동맹 소속 정치인들에 대한 체포 등 군사정권의 계속된 탄압으로 국내 활동이 여의치 않자 이들은 활동 무대를 국외로 옮겼다. 현재 미국 워싱턴에 망명정부 ‘버마연방국민연합정부’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민주화 관련 단체들과 연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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