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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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당신을 보고 있다(경향신문, 2004.10.22)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11:25
조회
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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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퇴근길에 술이 거나하게 취한 회사원 김아무개는 어두컴컴한 동네 골목길 한 귀퉁이에서 노상방뇨를 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을 나선 그는 화들짝 놀랐다. 어젯밤 자신이 노상방뇨를 하는 모습과 함께 얼굴이 선명하게 찍힌 사진들이 가지런히 담벼락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지나가는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CCTV로 촬영해서 전시함”

성북구 정릉동의 한 동네에 붙은 이같은 경고문대로라면 그가 당한 수치심은 어쩔 수 없다. 상습적으로 피해를 입은 집 주인이 미리 경고를 했기 때문이다. 목격자는 CCTV이며 확실한 증거물도 확보했다. 경고문을 붙인 집주인에게 이런 권리가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죄가 있다면 김씨가 노상방뇨를 한 것이며 그 경고문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경고문이 붙은 곳 주위를 샅샅이 뒤져보아도 CCTV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CCTV가 죄에 대한 심판을 내릴 주체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시 구청장 협의회는 지난 14일 강서구와 도봉구를 제외한 22개 자치구에 CCTV를 설치한다는 데 합의했다. CCTV 설치에 소요될 예상비용은 대략 100억원 가량. 구청장협의회는 CCTV 설치로 범죄예방 효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면 서울시에 교부금을 요청해 방범용 CCTV를 늘려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CCTV, 과연 대안일까-

경찰은 지난해 CCTV를 시범운영한 강남구 지역의 경우 5대 범죄가 전년대비 37% 감소했고 강·절도 사건은 41%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강남구는 2002년 논현동에 CCTV 5대를 시범설치한 데 이어 올해 8월부터 구 전역 골목길에 272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CCTV 설치로 범죄율이 감소했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CCTV 설치 확대=범죄율 감소’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CCTV는 범죄예방에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지금도 현금인출기 등 CCTV가 설치된 곳에서 버젓이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지하 주차장에서 CCTV를 의식하여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대범하게 차창을 깨고 금품을 빼내가기도 한다. 이런 경우 CCTV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얼마전에는 역삼동 CCTV 관제센터 인근의 한 빌라에서 예물시계 등이 털리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아직까지 범인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역에 사는 한 주부는 “범인도 바보가 아닌 이상 CCTV 위치 정도는 다 파악하고 들어오지 않겠냐”며 “경제사정이 어려워 범죄가 늘면 늘지 CCTV 때문에 줄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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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들이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으로 옮겨가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만일 구청장협의회가 이런 이유로 CCTV 설치 확대를 결정한 것이라면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 전역에 CCTV를 설치해야 마땅하다. 설치비를 포함해 감시 요원의 확충에 국고 지원을 예상하더라도 지역주민의 쌈짓돈이 나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이는 범인과 CCTV간의 술래잡기 놀이에 그치는 수박 겉핥기식 범죄예방책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범인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자연스레 CCTV를 의식하게 되어 사생활 침해 논란이 불가피하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강남의 한 아파트에 사는 주부 김모씨(31)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다듬고 옷 매무시를 다듬기 위해 한바퀴 돌아보기도 한다. 이 사이에 고춧가루는 없는지 거울에 얼굴을 갖다대기도 했다”며 “갑자기 내 머리 위에 카메라가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는 아무도 없었지만 수치심에 어쩔줄 몰랐다. 경비실에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이제 어딜 가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저절로 카메라를 의식하게 된다”며 “시끄러운 수다도 다 들리는게 아니냐는 생각에 옆집 아줌마와의 대화도 조심스럽게 된다”고 CCTV에 강한 불쾌감을 표했다.

CCTV 설치로 인해 범죄가 줄었다는 단순한 논리는 자칫 CCTV 만능주의에 빠트릴 우려가 있다. 결과적으로 CCTV 설치는 확대될 것이며 시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그대로 노출되어 버린다. 결국 집을 나서는 순간 CCTV를 의식하게 되어 자신의 사생활을 포기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아야 한다.

‘인권실천시민연대’의 오창익 사무국장은 “학계연구와 사례 등 CCTV가 범죄예방에 효과적이라고 검증된 바 없으며 더욱이 CCTV 설치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사생활 침해를 우려했다. 오 사무국장은 또 “수백개의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주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한다’는 지자체의 전시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며 “설치를 확대하자는 강남구민의 여론도 강남구청 홈페이지를 통한 조사였기 때문에 그 신뢰성에 의문이 간다”고 지적했다.

CCTV를 통한 범죄현장 색출도 결국 감시요원들의 눈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들이 모든 범죄 현장을 포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CCTV 설치 확대는 재고되어야 한다. 범죄의 원인이 인간에게 있다면 범죄예방책 또한 인간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오 사무국장은 “100억원대의 예산을 투입해서 CCTV를 설치해 인권침해의 소지를 낳는 것보다 출소자 재활 등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그의 작품 ‘1984년’에서 사상통제와 개인생활의 감시 등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전체주의적 정신풍토를 경고했다. 또 자신의 일상 생활이 생방송되는 줄도 모른 채 30년을 살아온 주인공이, 거짓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에서 진실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 ‘트루먼 쇼’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디어칸 고영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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