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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는 모래성인가(시사인, 2021.05.10)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5-12 17:06
조회
567

정치권과 여론은 물론 군까지 모병제를 말하고 있다. ‘징병제냐 모병제냐’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는 군이라는 나무를 보지 못한다. 적정 군 병력에 대한 논의를 뺀 모병제는 모래성이다.



대한민국은 징병제 국가인가, 모병제 국가인가. 너무 당연한 질문이어서 이상한가? 모두가 아는 것처럼 모병제란 군대에 가고 싶은 사람만 자원해서 병사가 되는 제도다. 그 반대가 한국처럼 강제로 군대에 보내는 징병제다. 그러나 한국의 군사제도에도 모병제적 요소가 있다.


한국의 전체 병력 55만명 가운데 1만2600명이 병역의무가 없는데도 자원입대한 여성이다. 장교와 부사관(병사와 장교 사이의 중간 간부)으로 이루어진 여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반 병사 가운데서도 의무복무 기간을 마친 뒤 직업군인에 준하는 급료를 받는 임기제 부사관(옛 유급지원병, 하사)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근무한 뒤 자기 의사에 따라 하사로 연장 근무할 수 있다. 임기제부사관 제도는 복무 기간 단축으로, 숙달된 병사들이 일찍 빠져나가면서 병력 공백을 막기 위해 2008년 도입됐다. 이처럼 큰 틀의 징병제 밑엔 스스로 병사의 길을 선택한 직업군인들이 존재한다. 이 시스템을 딱 잘라서 징병제라고 부를 수 있을까.


미국이 모병제 국가일까


미국은 대표적인 모병제 국가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정예화된 소규모 군대를 보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 아래 1973년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했다. 그러나 미국은 모병제 국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18~25세 이상의 모든 미국인 남성은 ‘SSS(Selective Service System)’라는 시스템에 등록해야 하고 유사시에 징병이 가능하다. 1917년부터 시행된 ‘SSS’는 ‘의무 징병 등록제’ 또는 ‘선발 징병 시스템’으로 해석되는데 중요한 점은 ‘강제’다. SSS를 따르지 않으면 학자금 대출, 취업, 공직 진출 기회 등에서 여러 불이익을 당한다. 2020년 초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가능성이 커지자 전쟁 공포에 빠진 미국 청년들의 징집 문의가 쇄도하면서 SSS 웹사이트가 마비되기도 했다. 이런 미국을 딱 잘라 모병제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모병제는 개인이 강제로 군인이 되지 않는 제도라고 했다. 그렇다면 모병제 아래에서 민간인은 강제로 총을 들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타이완, 프랑스처럼 모병제를 시행하는 나라에서도 몇 개월씩 군사훈련을 받는다. 최근 모병제 논의에 불을 지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남녀 모두 최대 100일 정도 기초군사훈련을 받자고 제안했다. 유사시 후방 안전을 책임질 예비군 양성 때문이다. 모병제가 되더라도 축구계의 월드 스타 손흥민이 군사훈련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민간인이 의무적으로 군사훈련을 받는 체제를 모병제라 불러도 괜찮은 것일까.


‘모병제냐 징병제냐’는 일도양단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병제가 자원한 사람만 총을 들게 하는 제도도 아니다. 징병제 아래에서도 여러 대체복무 제도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군대에 가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20년 전 징병제를 폐지했지만 2018년 마크롱 정부가 모든 청년 남녀로 하여금 매년 한 달간 기초군사훈련을 받도록 하는 징병제 일부 부활 정책을 추진했다. 단, 사격 등 살상훈련은 제외했다. 다양한 인종끼리 합숙 생활을 통해 공동체 통합을 꾀하는 것이 군사훈련의 목적이었다. 이 제도는 논란 끝에 이듬해 16세 남녀 청소년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군사교육 체험, 소방훈련 등으로 수정됐다. 이처럼 나라마다 형편에 맞게 징병과 모병을 넘나들며 다종다양하게 제도를 변주해왔다.


과거 모병제와 징병제는 진보-보수 사이의 대립각이 뚜렷한 이념 이슈로 여겨졌다. 대체로 강제징집에 비판적인 진보 진영에서는 모병제를,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군사력 확보를 중시하는 보수는 징병제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구도는 사실 허상에 가까웠다. 1980년대 말부터 군대 내 인권, 열악한 처우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현행 징병제의 대안으로 막연하게 모병제가 거론된 것에 불과했다. 당시 모병제 담론은 ‘강제징병 반대 대 신성한 국방의 의무’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2000년대 이후 대립구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만원씨 같은 보수 논객과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이 모병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념이 아니라 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출산율 감소로 인한 인구절벽으로 군 병력이 급속히 줄어들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징병제(양)로 국방력 유지가 어려워졌으니 모병제(질)로 전환하자는 주장이었다. 2000년대 초반 군 가산점 논란 이후 남녀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모병제는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 민주당 계열 정당과 진보정당에서도 각종 모병제·징병제 혼합형 모델이 거론되었다.


모병제가 진보와 보수의 틀을 넘어선 지는 오래됐다. 최근 박용진 의원의 제안 이전에도 정치권의 논의는 진영을 넘나들었다. 2012년 대선 경선에 나섰던 김두관 후보(현재 여권), 2016년 남경필 경기도지사(현재 야권)가 모병제의 필요성을 밝혔다.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 수장을 지낸 이주호 전 장관도 모병제론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017년 대선 경선 당시 전문 병사 10만명을 모집하자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9년,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모병제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보고서를 발표해 ‘모병제가 민주당의 당론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북한과 맞설 군사력 유지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요 몇 년 사이 육군사관학교 등 군 내부에서도 모병제 전환을 검토하는 연구논문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논문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 역시 인구절벽을 맞아 모병제 도입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치권과 여론은 물론 군까지 모병제를 말하는 시간이다. 모병제는 이미 ‘다가온 미래’처럼 보인다.


2020년 10월 KBS 〈시사기획 창〉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61.5%가 모병제에 찬성했다. 반대(28.8%)보다 2배 이상 높았다. 30·40대, 그리고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인 경우 찬성 비율이 높았다. 모병제 찬성 이유로는 전문성을 높여 국방력을 강화한다는 답변이 32.9%로 가장 많았고, 인구감소에 대비한 병력 구조 개편의 필요성(21.8%)은 그다음이었다.


이 모든 논의에는 대전제가 있다. 군 병력을 지금처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방부에서 발간한 〈2020 국방백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군인 수는 장교와 부사관 및 사병을 포함해 55만5000명이다. 전체 인구 대비 1.1% 수준이다. 그런데 이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다. 대다수 국가의 인구 대비 군인 비율은 0.3~0.8% 정도다. 1%를 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왜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을 유지해야 하는 걸까. 휴전선을 맞대고 북한이 있다. 북한은 인구 대비 군인 비율이 4%를 넘는다. 세계 1위다. 북한은 남녀 모두 군대에 간다. 최근 국정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남자는 7~8년, 여자는 5년간 복무한다. 실제 군사훈련에 투입되는 기간은 훨씬 짧고, 준민간인 신분으로 생활하는 경우도 많다고 알려졌으나 어찌 됐든 한국 처지에선 위협적이다. 북한과 맞설 수 있는 군사력을 유지(군사력의 대칭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그 결과 한국 군대의 징집률은 계속 높아져 최근엔 약 90%다. 남성 10명 중 9명이 현역 판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국가의 징집률 40~50%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대표적 병영국가인 이스라엘보다 높다. 여성 징병을 요구한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징집률이 거론된다. 청원인은 “줄어드는 출산율로 남성의 징집률이 9할에 육박하고 있다”라며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했다.


북한의 존재는 물론 위협적이다. 그러나 현행 군 병력을 유지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70년 전 한국전쟁 때와 비교해 남북 간의 전력은 전쟁 양상, 국방비 지출, 첨단무기 규모 등을 감안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러시아·중국 등에 이어 군사력 세계 6위다. 북한은 28위다. 이라크 전쟁 때와 달리 한국은 산악지형이 많아서 보병이 많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리는 있지만 불충분하다. 그래서 군 병력이 얼마나 필요하다는 말인가.


적정 군 병력이 얼마인지 우리 사회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1990년대부터 30만~40만명 정도면 충분하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파편적 논의로 그쳤다. 문제는 방향이다. 병력 축소든 유지든, 어떤 목표와 방향에 맞춰 군 병력을 정할지 컨센서스가 형성되지 못했다. 오랫동안 군 인권 관련 활동을 해온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현재 공군이나 해군의 경우 병사의 필요성이 ‘제로’에 가깝다. 육군도 첨단 기계화로 소총수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 병사가 필요하지 않은데 왜 모병제를 해야 하느냐”라고 말했다. 상시 전투 준비는 부사관·장교 등 직업군인에게 맡기고 기초군사훈련으로 양성한 예비군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면 된다는 것이 오창익 사무국장의 생각이다.


징병제 전문가인 백승덕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적정 군 병력과 관련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징집을 담당하는 병무청 관계자조차 동상이몽이다. 어떤 이는 북한을, 어떤 이는 중국을 적국으로 놓고 병력을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을 잠재적 적국으로 봐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어떤 안보 목표 아래 어느 정도 군인이 필요한지 생각이 다르다.”


적정 군 병력에 대한 논의를 뺀 모병제는 모래성이다. 장교·부사관 대 병사의 비율, 육군 장군 숫자가 미군보다 많을 정도로 기형적인 군 조직 문제, 예비군 편제 등 하나하나가 모병제와 연관된 계획 수립 없이는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들이다.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군인연금도 걸림돌이다. 모병제 아래 들어온 병사들이 기존 군인연금에 편입될 수 있을까? 골치 아픈 사회적 논란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러니까 여론은 어느 부위를 어떻게 수술할지 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군대를 모병제라는 수술대 위에 올리려 하는 셈이다. 그 와중에 국방부는 현재 55만명인 군인을 2022년까지 50만명으로 줄이겠다고 올해 초 업무보고에서 밝혔다. 급한 대로 숫자부터 줄이는 판국이다.


껍데기만 남은 논의는 결국 돈 문제로 흘러간다. “얼마 주면 군대 갈래?”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앞선 〈시사기획 창〉 여론조사에서 모병제 아래에서 적정한 월급이 얼마인지 물은 결과 41.6%가 200만원 미만, 39.3%는 250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반면 박용진 의원은 대기업 초봉 수준의 급여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국회예산정책처는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 의뢰로 ‘모병제 전환에 따른 관련 비용 전망 분석’ 보고서를 작성했다. 현행 부사관 급여(하사 1호봉)의 90%를 지급하고, 약 30만명인 병사(장교와 부사관 제외)를 절반으로 줄여 15만명을 모집할 경우 5년간 6조원이 더 드는 것으로 추계했다. 비용에 대한 접근으로는 이 정도가 가장 나아간 내용이다. 차라리 간부가 되고 말지, 간부보다 적은 급여를 받고 부하로 복무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점점 떨어지는 병사 충원율


이런 현실은 결국 모병제가 ‘빈민의 군대’를 양성하는 것 아니냐는 논쟁으로 이어진다. 모병제 자체를 두고 벌이는 논쟁 가운데 가장 뜨겁다. 나경원·유승민 같은 보수 정치인과 일부 시민사회 운동가들은 ‘군인=가난한 집 자식’이라는 낙인찍기가 될 것이라고 염려한다. 반면 국방 문제 전문가인 김종대 전 의원은 가난한 집 청년이 군대를 통해서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게 왜 나쁘냐고 반박한다.


분명한 흐름은 세계적으로 모병제 국가의 병사 충원율이 점점 떨어진다는 점이다. 일본 자위대의 병사 충원율은 75% 수준이고, 2011년 징병제를 폐지한 독일은 병력난에 시달리다가 유럽연합(EU) 시민이면 누구나 독일군이 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2018년 징병제를 폐지한 타이완도 벌써 병력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최근 모병제 전환한 타이완의 상황은? 기사 참조). 한국도 마찬가지다. 모병제 도입 여부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는 임기제 부사관 충원율이 50%를 밑돈다. 처우 때문인지 군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해석이 분분하지만, 청년들이 군인을 매력적인 직업으로 여기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모병제는 군대를 다루는 하나의 방법이다. 인구절벽 시대의 유일한 해법이 아니며, 올바른 해법인지에 대해서도 의문 부호가 남는다. 군사력 세계 6위, 국방비 규모 세계 8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징병제냐 모병제냐’라는 이분법적 토론으로는 군이라는 나무를 보지 못한다. 군을 둘러싼 숱한 과제가 해일처럼 밀려오는데 한국인들은 모병제라는 모래성만 쌓고 있는 게 아닐까.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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