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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어느 한 여자의 광기와 미신(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1-18 17:50
조회
574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한겨울 밤중에 늑대울음이 들리면 불길함이 온몸을 파고들어 으스스한 감정에 사로잡힌다고 말하듯이, 울음은 동물들에게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웃음은 오로지 인간만의 반응이다. 일어나는 사건의 규모가 크건 작건, 사건이 실제 현실에서의 것이건 가상적인 상상에 의한 것이건, 이미지에 의한 것이건, 언어에 의한 것이건, 각종 사건에 대해 각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나타내는 특이한 반응이 웃음이다.


 그러하기에 웃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오매불망 바라던 일이 성취되었을 때, 기쁨에 넘쳐 주먹을 불끈 쥐고서 허공을 때려잡을 듯 아래위로 내려치면서 ‘오케이!’ 하고 혼자 춤을 추기도 하고 주변에 누구라도 있으면 부둥켜안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좋아하고서 더없이 즐거워하며 온몸으로 웃는 파안대소(破顔大笑)랄까 하는 웃음이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부마항쟁 때 진압군이 아스팔트 바닥에 총을 쏘며 다가오는 지척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다 도망친 뒤 특공대에 의해 장악된 도시 공포의 상황에서 다락방에 숨어 있다가 아침 라디오에서 박정희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런 위대한 웃음이 찾아온 적이 있다. 그 뒤, 세월이 많이 흘러 스무 번 이상의 촛불 시위에 참여한 끝에 그 독재자의 딸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는 헌재의 최종 판결이 알려졌을 때도 그에 못지않은 위대한 웃음이 온몸을 관통하며 넘쳐 흘렀다.


 광대놀음을 덧붙인 판소리 마당극을 보면서 너무나 통쾌 유쾌한 나머지 죽으라고 손뼉을 치면서 아랫배를 끌어안고 심지어 숨이 넘어갈 듯 신나게 웃어젖히는 박장대소(拍掌大笑) 역시 대표적인 웃음이다. 거짓으로 위장된 권위의 껍데기를 벗겨내자 그 속에서 드러나는 비천한 알몸이 훤히 드러났을 때, 그 알량한 모습을 보고서 박장대소 숨이 넘어갈 듯 깔깔대면서 한껏 즐거워하는 민중의 그 미련없는 웃음이야말로 누구나 자유로운 존재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별달리 잘난 데도 없으면서 유난히 남들을 무시하면서 저 잘난 체 자랑질을 하는 꼬락서니를 목격했을 때 내놓고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은근슬쩍 비난의 염을 내보이는 흔히 냉소(冷笑)라 부르기도 하는 비웃음에는 그런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는 의지가 작동한다. 하지만, 아차 그 의지의 끈을 놓쳐 풀리게 되면 실소(失笑)를 금치 못해 씩 웃게 되면 상대로부터 ‘너, 날 비웃는 거야?’ 하는 반응을 유발하여 예기치 않은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그리하여 그동안 쌓아온 우정이 깨지기도 하고, 심지어 원한과 복수심에 치를 떠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습지도 않은데 높은 놈이 웃으니 억지로라도 따라 웃지 않을 수 없어 웃는 선웃음이 있는가 하면, 선웃음의 효과가 좌중에 전염되듯 넘쳐 흘러 드디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너나 할 것 없이 그 높은 놈이 웃은 것보다 더 크게 입을 벌려 높은 소리를 내는 홍소(哄笑)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장면이야말로 소극(笑劇)이 아닐 수 없고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2.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당치 않은 일을 일방적으로 당했을 때 짓게 되는 고소(苦笑)라 일컫기도 하는 쓴웃음이 있다. 적당한 수준에서 마땅치 않거나 씁쓸한 느낌이 들면 그저 입가에 씩 입술연지를 바르듯이 쩝쩝거리는 시늉으로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어이없음은 일정한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나 원 참!’ 하는 식으로 하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는 때도 있고, ‘차라리 죽고 말지.’ 하는 식으로 너무나 어이가 없는데도 도무지 어쩔 방도가 없어 가슴이 먹먹한 나머지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 목숨을 유지하는 것조차 창피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 정도쯤 되면, 쓴웃음을 지을 여유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욕지기가 있는 대로 치밀면서 원한과 분노가 솟아올라 견딜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 욕지기와 원한과 분노는 그저 상대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이 말도 안 되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어처구니가 없고, 그 어처구니가 없음이 겹겹이 쌓여 황당함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급기야 심중(心中)이 무너져내려 무슨 돌 하나를 삼킨 듯 말 그대로 가슴이 먹먹하면서 심지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게 되는 것이다.


 김건희-이명수 전화 녹취록을 통해 전국에 알려진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 그러하다. 농락을 당해도 유분수지 너무나 어이가 없어 쓴웃음조차 지을 수 없다. 통화를 통해 들려오는 김건희라는 여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물론이고 그 목소리조차 너무나, 하도 어이가 없다. “내가 정권 잡으면 그것들 그냥 두지 않을 거야.” ― “너도 양다리 걸쳐. 세상이 어찌 될지 누가 알아? 권력이란 게 무서운 거잖아.” ― “보수는 대가를 정확하게 지급하잖아. 진보는 말이야, 바람은 피우고 싶고 돈은 없고, 그러니까 미투를 당하는 거야.” ― “조국 사건도 그렇게 크게 갈 일이 아니었어. 구속할 필요도 없었는데, 유시민이니 김어준이니 무슨 유투버니 하는 것들이 하도 검찰을 욕을 해대니까, 희생된 것뿐이야. 조국도 안 됐지 뭐.” ― “내가 뭐가 아쉬워서 유부남을 만났겠어? 우리 어머니처럼 돈 많은 사람이 어떻게 딸을 팔아먹어? ― “나는 영적인 사람이야.”


 많은 뛰어난 논객들이 이 한마디 한마디에 새겨져 있는 정치 사회적인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으니, 필자로서는 더는 덧붙일 말이 없다. 필자로서는 맨 먼저 그저, 미쳤구나!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변의 사람들을 제 뜻대로 마음껏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정의나 불의, 선악이나 미추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구나.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특히 그녀와 꼭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숭배한다고 확신하고 그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역이용하면 되지 않을 일이 없다고 믿고 있구나. 반(反)사회적이건 몰(沒)사회적이건 아무런 상관도 없이 자신만의 영달을 중심으로 가치 체계와 그에 따른 판단 체계를 정확하게 형성했구나. 그러한 자신의 가치와 판단의 체계가 옳다는 것을 자신이 획득한(또는 타고난) 배타적 지배의 ‘영적인’ 힘이 뒷받침한다고 정확하게 오인하여 믿고 있구나. 그리하여 자신의 그러한 가치와 판단 체계가 옳다는 것을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돈과 권력의 확보를 통해 실제로 입증해 보임으로써 자신의 그 ‘영적인’ 탁월함과 배타적인 지배력의 위력을 자타가 공인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고 있구나. 남편이 대검중수부장과 검찰총장을 거쳐 바야흐로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지지율 선두로 달리도록 한 것은 바로 자신의 능력이고 따라서 남편은 자신이 부리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구나. 이런 정도로 자신의 영적인 역량을 발휘해 성공했으니, 이야말로 진짜 최고의 정치적인 수완이고 능력이 아니라면 뭐겠어? 하고 생각하겠구나.


 저런 미친 여자가 “(내가) 정권을 잡아” 대통령이 되면 도대체 이 나라는 무슨 꼴로 어떻게 나락에 빠져들 것인가? “최순실보다 더한 제2의 최순실”이 등장했다고들 한탄한다. 지금 필자는 하도 너무나 어이가 없어 쓴웃음조차 짓지 못하고 얼굴이 화석처럼 굳어버린 상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필자의 심경이 이렇게까지 한 덩어리 돌이 되다시피 뭉치고 만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사실상 이러한 김건희의 폭로된 광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여자가 미쳤구나 하는 생각은 다른 일은 제쳐두고라도 부지기수로 반복해서 학력과 경력을 위조하는 것을 보고 이미 생각한 바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렇게 안 하면 바보가 아니냐, 하는 식의 그 여자의 삶의 태도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화 녹취록의 폭로를 통해 그 광기의 본색을 확인했을 뿐이다. 이른바 ‘본부장’의 숱하게 드러난 범죄와 거의 입증되다시피 한 의혹은 물론이고 그녀의 남편 윤석열 후보가 창피해 고개조차 들 수 없는 손바닥 ‘王’자 사건과 그 외 어처구니없는 발언과 핑계의 태도에서 드러난 그 무능력은 우리 모두의 ‘공정과 상식’에 입각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진정 필자가 하도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원한과 분노에 휩싸이는 것은 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광기가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과 수구 언론 권력’을 관통하고 휘감아 나라의 정치판을 이전투구의 장으로 만들고 그리하여 수많은 유권자 국민의 눈과 귀를 오랜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여 판단력을 납작하게 뭉개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잖아도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1위 운운하면서 언론에서 발표될 때마다 견딜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지곤 했는데, 그 지지율이 실현되는 바탕의 한 축에 심지어 후보자의 아내라는 여자가 ‘발휘하는’ 무속적인 영적 자기도취의 광기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니 이 어찌 하도,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누군들 마음과 얼굴이 돌처럼 굳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사건을 확인하고서 같은 당의 유명 정치인인 홍준표 씨조차 “가슴이 먹먹하다.”라는 글을 올렸으니, 하물며 ‘공정과 상식’을 믿는 집단지성의 국민은 오죽하겠는가.


3.
 참으로 다행이다. <서울의 소리> 유튜브 방송과 그 이명수 기자가 큰일을 했다. 이제 이재명 후보가 늘 말하듯 ‘국민의 집단지성’이 크게 발휘되어 광기와 미신의 정치적인 굿판을 확실히 작파(斫破)하여 그 뿌리를 아예 불살라버리는 기회로 삼아 합리적인 공론장을 통한 민주주의 정당 정치의 토대를 제대로 구축하는 데 모두가 힘을 모아 발휘했으면 한다. 그리하여 사회 정치의 파안대소를 맘껏 누렸으면 하고 바란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새삼 신동엽 시인(1930∼1969)의 외침이 뇌리에 사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