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지역화폐형 기본소득 단상(이재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1-24 11:49
조회
459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것도 3개월여 사이에 대선과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큰 장이다.


 여당과 제1야당 대선 후보가 선출되었고, 후보 모두 ‘기본소득’을 공약에 염두한 듯 보인다. 특히 여당 후보는 일찌감치 기본소득을 앞세우고 있다. 구체적으로 기본소득을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로 주는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을 제시한 바 있다.


 2년쯤 전에 이 지면에서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란 제목으로 기본소득의 지급 형태를 특정 지역의 특정 업종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로 할 경우의 단상을 살짝 끄적인 적이 있다. 한번 다시 펼쳐보자.(결코 지면을 메우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밝히며..)


 “… 물론 보편적 기본소득 적용이 현실화된다면 그 모두를 지역화폐로 전달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이다. 지역화폐는 말 그대로 지역 내 소비의 순환을 목적으로 하므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소비에 모두 대응할 수 없다. 기본소득 전체 비중에서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19는 꿈틀거리던 기본소득을 수면 위로 떠 오르게 했다. 미래 사회는 근로소득자와 기본소득자로 나뉠 것이라는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모를 전망도 나온다. 기본소득 그리고 지역화폐와 결합한 기본소득 논의가 향후 어떤 경로를 거쳐 무슨 결과물이 나올지 주목된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은 딱 그림이 안 보인다.


 이유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무릇 기본소득이라 함은 말 그대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 생활비라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사용처가 한정되어야 ‘만’ 하는 지역화폐와는 미스매치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통적인 기본소득의 조건 하에서의 가정이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으로 세금도 내고, 여행도 가고, 온라인쇼핑몰에서 당일배송 식품도 주문하고 싶다면 현재의 지역화폐로는 불가능하다. 세금은 물론 해당 지역 외 교통편은 지역화폐 사용처가 되기 힘들다. 온라인쇼핑몰은 말도 못 붙인다.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역외로 유출되는 지역의 소비를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만든 게 지역화폐이기 때문이다. 장보기 딱 좋은 대형마트도 물론 안된다.


 그렇다면 ‘지역 소비의 역외유출을 막고, 유입된 역내소비가 고루 순환되는’ 지역화폐와 ‘그냥 퍼주기가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는’ 기본소득이 조화롭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사진 출처 - freepik


 얼마 전 국민상생지원금(재난지원금)이 지급됐을 때의 일이다. 사용처가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으로 국한되자 시작 전부터 논란이 일었다. 대다수 국민(경기도는 모두)에게 지급되는 재난지원금인데 지역화폐 사용처 제한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나 사행성, 유흥업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뜩이나 지급지역 밖을 벗어나면 쓸 수도 없는데 경기도의 경우 매출 10억이 넘는 병원 등에서는 지역화폐 가맹점이 아니기 때문에 쓸 수 없는 상황을 맞아야 했다.


 결국 ‘간주가맹점’이란 이름으로 지역화폐 가맹점이 아닌 곳 상당수를 재난지원금 사용기한인 연말까지만 가맹점으로 허용했다. 이 기간 동안 지역화폐는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몰 등 일부를 제외하고 웬만하면 다 쓸 수 있는 소비쿠폰, 소비 바우처가 됐다.


 시흥시는 현재 대기업 프랜차이즈점(주로 다매체 광고에서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 40여 곳의 프랜차이즈 및 대리점)은 지역화폐 가맹점이 아니다. 뉴스에서 자주 듣던 ‘골목상권을 침투하여 초토화한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말한다.


 그래서 이곳 가맹점주들로부터 ‘우리도 소상공인’ 이라며 항의를 많이 받았다. 특히 코로나19 민생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마련한 지역화폐 구매 혜택(10% 할인) 때문에 지역화폐 발행액이 크게 높아지자 더욱 커졌다.


 그럴 때마다 지역화폐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양지와 혜량을 구했지만 결국 욕만 배부르게 먹었다. 그런데 재난지원금 사용처가 임시로 확대되자, 집중적인 항의 전화는 거짓말처럼 끊겼다.


 만일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지역화폐는 그 목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사용처의 범위는 넓어지고, 제한 업종은 온라인쇼핑몰, 대형마트 등만 남을지도 모른다.


 물론 온라인쇼핑몰, 대형마트만 지역화폐 가맹점 제한을 둬도 지역 소비의 역외유출이 매우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프랜차이즈, 대기업 상권은 점점 더 골목 곳곳에, 업종 깊숙이 범위를 넓혀 지금도 들어오고 있다.


 정책연계성과 사용자 편의성을 앞세워 이들이 속속 지역화폐 사용처가 된다면 골목상권 영세 자영업자들을 정책 우선 대상에 두고 있는 지역화폐는 그저 이름만 남게 될 공산이 크다.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융합이 가능할까? 상호보완? 아니면 양립? 과문한 탓에 이 딜레마를 풀 방법은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닌 채 모두 사라질 수도 있겠다. 묘수가 있다면 알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