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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아픔과 모순을 비춰보는 밤(신종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1-24 14:22
조회
635

신종환/ 공무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한 이용자가 맛있는 소고기집을 다녀온 후기를 게시했다. 댓글에는 눈물을 흘리는 황소 사진이 이어졌고 그 아래에는 하나하나 열거할 수는 없지만, 소의 감정을 가능한 거칠게 무시하고 소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유머화 할 수 없는 대상을 침범하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느껴지는 파격을 가능한 새롭게 표현하여 성립되는 커뮤니티 사이트의 유머구조에 기반한 댓글문화의 한 풍경이었다.


 다음은 사육되던 소가 도살 직전 구매희망자에게 구매되어 넓은 사유지에 방목되어 한참을 뛰어오르곤 붉게 상기된 눈으로 구매자에게 얼굴을 부비는 영상이 게시되었다. 뒤따라서는 자신이 받은 감동을 서술하거나 감정이 있는 소를 가둔다는 것이 불쌍하다는 댓글들이 몇 개, 그 뒤에는 처음 본 게시물의 댓글처럼 무시를 기반한 유머가 몇줄 적히고 호응을 받았지만 바로 뒤이어 이렇게 유머화 하지 않으면 너무 슬프지 않냐는 변명 반 설명 반의 부연이 이어졌다.


 다음 글은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이 본인의 SNS 계정에 올린 음식 게시글에 딸린 글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귀에서 고의로 차용하여 조롱조로 올렸다는 내용이었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그의 언행과 행보가 옳지 못하다며 비난했다.


 온라인상의 의사 교환을 넘어 현실적 만남이 없다는 대전제로 이루어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큰 가치관과 감정의 낙차가 자주 보인다. 커뮤니티 사이트별로 관찰‧통계를 내지는 않았지만 가벼운 목적의 사이트에서는 대체로 윤리관, 도덕관과 그 표현방식이 마치 다른 집단이 쓴 것처럼 빠르게 돌변하고 순식간에 적대감과 동질감이 교차한다. 게시글마다 나타나는 표현 양상이 그들의 일상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는 없다. 종종 들곤 하는 이질감은 그들이 악인이거나 선인이나 어리숙하다 등이 아니라 가치판단의 기준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자신의 의견이 어디서 나왔으며 어떤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지 등의 구조를 형성하기보다는 피아를 식별하고 난 후 적대 대상으로 판별되면 높은 수위의 조롱과 비난을 가한다는 느낌. 좀 더 말하자면 삶을 가르는 가치관이 자랄 곳이 소거되어 표현의 기준이 피아, 고통과 기쁨의 이진법적 기준으로 나뉘고 그 느낌이 웹에서든 현실에서든 강화된다는 느낌을 나날이 받는다.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복잡하고 자주 고통스럽고 타인은 물론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의 연속이다. 그러나 너와 나의 고통을 비교하며 더 작은 고통을 겪었다고 판단되는 이를 비난하고 나의 고통을 훈장 삼아 그의 고통을 멸시하는 것은 비난하는 사람에게도 비난받는 사람에게도 고통의 결을 이해하는 시선을 앗아갈 거란 짐작은 어렵지 않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 명의 동기는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며 공직을 그만두었고, 한 명은 폭언을 날리는 민원인들을 대하다 못해 휴직에 들어갔다. 다른 한 명은 더 이상 지자체 공무원으로서는 살 수 없다며 도청 전출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의 동기이자 친구로서 같이 생활했기에 그들이 겪었을 고통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수급비를 받지 못해 악에 받친 민원인이 혐오스러워지는 것도 안다. 하지만 끝내 지울 수 없는 건 고통이 적다고 여겨지는 곳으로 가면 거기서는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이 없어질까 하는 의구심이다.


 앞에서 나열한 커뮤니티 사이트의 이용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삶이 버거운 것도 타인의 악에 받친 목소리와 악의와 비명이 모두 피아 식별의 기호로 들려서 그들을 향한 적대감으로만 보이진 않았을까. 아침에 일터의 문을 열고 자신을 찾아올 사람들이 모두 적개심에 가득 찬 사람인 풍경이라면 더욱 견디기 힘들 테니.



사진 출처 - adobe stock


 임용 후 초반에 동 주민센터 사회복지 업무를 보면서 선배들이 하지 말란 일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거동할 수 없는 어르신이 장애진단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얼핏 봐도 여건이 되지 않았다. 선배들 몰래 주말에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몰래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을 드리고 주말에 차로 병원에 모시고 갔다. 아픈 사람이 어찌나 많고 장애진단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어르신과 3시간 정도 얘기를 나누었다. 말귀 어두운 할아버지가 한때는 목사를 꿈꾸는 신학생이었고 지금 타고 있는 전동차량은 실은 친구가 죽으며 준 것이라 장애 서류는 필요 없지만 구비하면 보조금을 친구 부인에게라도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잠재적 진상이 복잡한 사람으로 전환되는 그 하루는 지금도 기억난다. 어르신에게도 맨날 “안 돼요. 다시 하세요. 여기로 가세요.”만 반복하던 공무원이 손주뻘 청년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좋으셨던지 점심을 같이 먹고 싶어하셨지만 어쩐지 마지막 선을 넘는 것 같아 음료수만 얻어 마시고 댁으로 모셔다 드렸다. 그 때와 그 이후의 몇 번의 순간으로 사회복지 업무를 고통스럽지만은 않게 담당했었다.


 도축되는 소의 운명을 조롱하는 사람들을 째려보면서 탕수육을 씹는 것이 삶을 사는 모순의 연속이지만 그 염치 없음과 미안함이 마음의 흔들림을 잡아주는 닻이기도 하지 않을까. 수급자를 떠올리며 육두문자를 쏟아내고 자기 집 강아지를 자랑하고는 도축될 소의 눈물에 군침을 비추는 사람들은 어디서 닻을 얻을 수 있을까. 그들과 그들이 남기고 간 것들이 눈에 밟히며 밤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