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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시즌2)는 불온했다(오항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5-11 15:30
조회
1065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며느라기 시즌1’을 보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몇 달 전인 줄 알았더니 1년이 넘었다. 그사이 나는 ‘며느라기’의 주적(主敵)인 시아버지가 되었다. 선 자리가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지는 법이라던가? 며느라기-시즌2를 보면서 시아버지로서 심각한 판단의 변화를 거쳐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즌1에서 희망의 불온함을 느꼈다면, 시즌2에서는 그냥 불온함을 느꼈다.


장면①
딸 : 남은 밥 있어? 배가 고프네.
엄마 : 어, 김치찌개하고 있으니 먹어.
(딸이 부엌으로 간 사이 아버지가 나온다. 어머니와 얘기하던 중 밥 먹고 있는 딸을 보며)
아버지 : 에휴, 애 낳고 살다 보면 다 지나갈 일을. 하여간 헛똑똑이라니까.
(시즌1에서 딸은 남편과 불화 끝에 폭력까지 당하고 집에 와있다. 아버지의 푸념을 듣고 딸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밥으로 울음을 막고 있다. 결국 그 밥을 다 먹지 못하고 부엌을 나선다.)


장면②
딸 : 엄마는 나 임신했을 때 어땠어?
엄마 : 한없이 기뻐서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어.
딸 : 나는 나쁜 엄만가 봐. 힘들 때마다 배 속의 아기가 원망스러워.

 드라마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야 하기에 인물의 성격이 조금 과장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시즌2는 두 가지 점에서 불온하다. 아마 이 불온함 때문에 시즌2는 시청률도 시즌1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첫째, 특정 사람만을 이상한 사람을 만든다는 거다.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대표적이다. 장면①은 그렇지 않아도 명절날 술만 마시고 거드는 거 없던 기존 시아버지의 캐릭터에다가, 이혼하려는 딸에게 모진 말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까지 덧씌웠다. ‘속상하니까 그렇지’라는 탈출구를 만들어놓기는 했지만, 그게 탈출구가 되기보다는 올가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며느리가 임신한 뒤 직장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자기 아들 밥 차려주는지 걱정하는 시어머니 캐릭터도 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 시어머니는 장면②의 따뜻한 친정어머니와 대비되면서 밉상의 성격을 완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누구를 밉상으로 만드는 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시아버지가 되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의 왜곡된 감정이나 남자 중심의 사유 중 어떤 부분은 그의 인격이나 도덕성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사회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둘째 불온함이 나온다. 생각 없는 관찰이 통상 그러하듯 문제나 갈등의 원인을 누군가의 품성으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원래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을 가지고 달리 생각하는 법이다. 피라밋의 낙서에도, 조선실록 곳곳에도 ‘요즘 젊은 것들’에 대한 불안감이 적혀있다. 그뿐이랴. 《논어》에서부터 ‘나이 먹고 죽지도 않는 늙은이’에 대한 불만도 그만큼 회자되어 왔다. 늙음이 지혜와 연결되지 않는 현대사회에 이르러 이 골이 더 깊어졌을 뿐이다. 이 때문에 아내 대신 남편이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탁월한 선택조차 드라마에서는 거칠게 묘사되고 말았다. 하지만 왜 새로운 삶의 창조가 상처를 주고 싸워야지만 이룰 수 있는 듯 형상화되어야 하는가.


 장면②로 다시 가보자. 직장생활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축복이 아닌 두려움이 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저건 나쁜 사람이라서 갖는 두려움이 아니다. 요즘 같은 현실에서는 누구나 두려운 것이다.


 이 장면과 관련해서 나는 새삼 내 경험이 떠올랐다. 큰아이 혼인날 내가 축사를 하면서 ‘서넛은 낳는 게 좋겠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언뜻 형제 많은 게 참 좋다는 생각에서 대본에 없이 한 말이었다. 물론 신중한 큰아이와 맏며느리는 내 말에 확답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반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당시 했던 말을 거의 거두어들였다. 이 사안 역시 큰아이와 며느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판단에는 아이를 낳아야 종족이 보존되던 시절이 아니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인구는 이미 차고 넘칠 만큼 많다. 출생률 저하는 기실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만 아니라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적게 생산하면 적게 쓰고 살면 된다. 아이를 낳을 자신들의 계획, 직장, 인생관에 따라 판단할 문제다.



사진 출처 - 며느라기 웹툰, 신지수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


 아직 생각 중인 이슈가 있다. 명절날 처신이다. 며느라기 시즌1, 2에서도 단골주제가 명절, 제사였다. 우선 요즘 사람들은 거처가 가까이 모여 살기보다 떨어져 살고, 그 거처도 자주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한 직장에 오래 있어도 본사, 지사 근무에 따라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명절날 만나는 것도 맘 먹고 계획해야 한다. 삶에 지친 몸을 쉬어야 할 시간에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건 못 할 짓이다. 차로 한 시간 정도 이동하면 볼 수 있을 거리가 아니면 오지 말라고 할 생각이다. 보고 싶으면 시간 되는 나와 집사람이 가서 볼 요량이다.


 사돈댁은 부산인데, 아이들이 명절마다 우리집으로 오면 사돈 내외는 사위와 딸을 명절 내내 쭉 만나지 못하게 된다. 같은 부모인데 서운한 건 마찬가지일 터, 추석과 설을 나누어 아이들이 편한대로 가게 하면 어떨까 싶다. 분명한 거는 어느 부모나 자식 보고 싶은 건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그나저나 새 식구가 늘어나는 건 흥미로운 일인 듯하다. 5월 8일, 뜻하지 않았는데 큰아이가 선물과 봉투를 내밀었다. 선물은 집사람과 고모 화장품이었다.(내 것은 없었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인간관계는 조국과 민족 때문에 금 가는 게 아니다) 봉투는 며느리가 준비했단다. 적지 않은 용돈이 들어있었다. 직장생활이 고된지 더 야윈 듯한 며느리의 얼굴이 겹쳤다. 문자를 보냈다.


장면③
시아버지 : 바쁜 중에 용돈까지 챙기니 고맙구나. 담부터는 내가 밥 사는 걸로 하자. 용돈은 우리가 늙어 버는 게 없을 때 많이 다오. ^^
맏며느리 : 네 아버님. ^^. 제가 더 잘 모셨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었습니다. 어버이날이라 식사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다음엔 꼭 함께 만나 뵈어 시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큰아이 답장은 늘 한 문장을 넘거나 이모티콘을 넣는 적이 없다. 맏며느리는 좀 지성적이라 문장이 꽤 길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혼인한 뒤 시어머니가 권하자 바로 인권연대의 회원이 되었다. 하지만 내 문자의 방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당할 때 점검해야겠다. 아무튼, 우리의 일상에는 장면①, ②보다 장면③ 쪽이 훨씬 많을 거라고 믿는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