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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형님, 노인의 지혜 좀 빌려주세요!(오항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1-24 15:17
조회
982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침 출근길에 바람이 차다 보니 눈가에 눈물이 흐릅니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봅니다. 죄송합니다. 일흔 넘은 형님 앞에서 갓 환갑 지난 제가 외람되이…. 요즘 저는 젊은 사람들을 집 안팎에서 보면서 나이 든다는 게 뭔지, 자식이나 학생들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자꾸 묻게 됩니다.


1.
 학과 강의는 지금 막 19세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과 대혁명을 거친 시기인데, 실은 가장 전쟁이 많은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셈입니다. 형이 잘 알다시피 20세기는 1, 2차 제국주의 전쟁(세계대전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으로 현대 문명은 말 그대로 좌절과 회의를 던졌지요. 6.25도 그 연장에서 벌어진 참극이었고.


 형님 어머니도 피난 다니셨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진저리난다고 하셨다지요. 제 장모님께서도 황해도에서 인천-서산-전주-남원-진주를 홑옷으로 신발 바닥이 닳아 없어지도록 걸어 피난 갔다고 하셨어요. 장모님은 영화로라도 전쟁을 다루는 걸 싫어하세요. 사내아이들이 대개 총쌈, 칼쌈 좋아하게 길들여지지 않습니까? 저도 전쟁 영화를 좋아했는데, 조금 달라졌습니다.


 입대한 작은 아이 훈련소를 마쳤을 때 면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한 달 여 만에 얼굴을 보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훈련소 청년들의 뽀송뽀송한 얼굴에는 고유의 생명이 느껴지는 발그레함이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영화 ‘고지전’이든 ‘1917’에 나오는 군인들이 바로 저 청년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뒤로 군대는 나이 든 사람들이 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젊은 사람은 공부하고 일하고 말이지요. 찰리 채플린이 군대는 40대 이상으로 보내자고 했다고 합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전쟁에 안 가니까 쉽게 전쟁을 결정해서 젊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는 겁니다. 저는 50대 이상이 갔으면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저는 현대의 장군들이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트로이 전쟁의 아킬레스, 적벽대전의 관우, 장비는 모두 자기들이 앞장서서 싸우잖아요? 요즘 장군들은 뒤에서 입만 벙긋거리지요. 평소에도 사병들과 구보는커녕, 골프나 치고. 정작 군 사기와 전력에 영향을 미치는 성폭력 사건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아마 인류가 아무리 선해진다고 해도 우리 같은 늙은이를 군대로 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단 늙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있을 겁니다. 자식, 손주 생각해서 전쟁을 결정하지 않는 것, 전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가능한 전쟁으로부터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 말입니다. 적어도 그런 노력에 어깃장 놓는 늙은이는 되지 않는 것이 제 소박한 바램입니다.


1.
 노쇠를 경험하고 죽음을 앞두면 꼭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도 두렵고 무거운 마음을 갖지 않을까요? 키케로가 지혜와 체력의 증진, 마음의 즐거움 추구, 죽음의 평범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슬기로운 노인 생활’을 충고했지만, 이 말은 사실 노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닙니다. 키케로의 충고는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적합합니다. 슬기로운 청년 생활을 위해서 말입니다.


1.
 큰아이 혼인으로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 요즘은 아이들이 결혼하겠다고 하는 것만도 복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사회와 문명이 복잡해지면서 혼인 연령이 지체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의 지체 현상은 그보다 단기적, 정책적 차원의 오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富)의 편중을 낳게 방치하는 정책 말입니다. 그것도 부당한 편중입니다. 최근 확인된 화천대유라는 회사가 추진한 공공용지의 민간개발이 그 증거입니다. 공공용지가 민간회사의 손으로 넘어가 몇몇 개인이 이익을 독식하는 구조가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비싼 아파트를 산 겁니다. 몇몇 법조-언론-정치꾼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면서 우리 주머니를 털어간 토건업자들의 거품 낀 아파트 말입니다.


 제 친구도 그 아파트 샀지 않습니까? 아파트값 올랐다고 좋아하면서 제게 술까지 샀거든요. 그러면서 자식 걱정이랍시고 요즘 애들은 10년을 모아도 못 산다며, 무슨 정부 정책이 이러냐고 짐짓 개탄하였고. 좋아하면서 개탄하는 이중성 사이에서 토건업자들과 그 커넥션들은 챙길 거 다 챙겨가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실은 저희 동네 재개발된다고 좋아했어요. 이렇게 현혹되지 않고 늙는 게 저의 바램 중 하나입니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1.
 오늘은 유난히 외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저에게 깡통 들리고 당신은 그물 들고 동네 개천으로 붕어 잡으러 다니시던 때가 딱 지금 제 나이셨습니다. 평범한 농사꾼이셨던 당신의 말씀은 늘 손자가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정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술 드시고 자꾸 볼을 비비셔서 그게 싫었지만요. 장날이면 약주에 취하신 채 동네 방죽에 누워계시곤 해서 동네 형들과 저희가 어렵게 모셔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저희가 할아버지께 도움 되는 게 있다는 게 좋았으니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외할아버지의 말씀은 ‘그럼 못써’입니다. 제게 했던 유일한 금지-명령어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무슨 대단한 잘못을 했겠어요? 기껏해야 동생들 괴롭히는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유독 당신의 ‘그럼 못써’는 단순한 금지가 아니라, 제게 제 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혼날까 봐 하는 반성이 아니라, 제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힘 말입니다. 형도 손주들에게 그런 권위가 있나요?


 한번은 외할아버지가 당신 따님, 그러니까 저의 어머니와 다투신 적이 있어요.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도 없고 알 수도 없었지만, 외할아버지의 말씀만은 기억이 남아요. “내가 호랭이 새끼 데려다가 사람 새끼 만들어 놨어!” 우리 형제들을 가리키며 하신 말씀입니다. 철없는 야만의 어린이들을 문명화시켰다는 주장이신데, 그런 점이 있었지요. 그 응축이 ‘그럼 못써’의 교육학인 듯합니다. 그런 마음과 권위를 조금이나마 갖는 것이 제 바램 중 하나입니다.


 저의 희망 사항이 너무 많은가요? 형님은 도움을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도 저보다 몇 살은 더 먹었잖습니까. 어떤 어르신이 “늙은이가 할 게 칭찬밖에 더 있나!” 하며 껄껄 웃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지갑 열고 입 닫으라는 속언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열 지갑 없고 입 열어도 보기 좋은 괜찮은 늙은이로 살게끔, 이미 괜찮은 노인네이신 형님이 살펴주세요.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