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경향신문 정동칼럼] 소년범에게도 열려 있는 사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5-12-26 09:55
조회
132

강도강간. 무서운 악질범죄다. 당연히 범죄자에 대한 처분도 단호하다. 무기징역 아니면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살인보다 무겁게 처벌한다. 범죄가 끔찍한 만큼, 범죄자의 책임도 엄히 묻겠다는 거다. 강도강간은 형량 자체가 무겁기에 별도의 가중처벌도 하지 않는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으로 더 무겁게 처벌하기 위해 꼽아둔 범죄 중에 강도강간은 없다. 누범만 예외일 뿐이다.


범죄자는 반드시 검거하고 엄하게 처벌한다는 국가의 의지와 일관된 노력 덕분에, 강도강간의 실제 발생 건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2023년엔 5건, 지난해엔 3건밖에 없었다. 그런 범죄가 아예 없었으면 좋겠지만, 5000만명 넘게 사는 제법 큰 규모의 국가에서 1년 내내 3건밖에 없었다는 건 놀라운 실적이다.


최근 어떤 인터넷 연예매체는 조진웅 배우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특가법상 강도강간’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 결과 소년원에 갔다는 거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도 주장은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특가법상 강도강간’이라고 몰아붙이는 장면은 놀랍기만 하다. 게다가 형사재판을 받았다면, 소년원에 갈 수는 없다. 형사재판에 넘기냐 가정법원 소년부로 넘기냐에 따라 교도소냐 소년원이냐가 갈리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생이 강도강간 같은 악질범죄를 저질렀는데, 소년원에 갈 확률은 매우 낮다. 적어도 징역 10년 이상으로 응징하는 범죄인 데다, 고2면 성인과 별 차이 없는 체격과 인지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제보자’가 있다지만, 이 연예매체의 기사는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않은 엉터리였고, 근거도 없는 뒤죽박죽이었다. 그저 흥미를 끄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이 보도가 남긴 상처는 꽤 깊었다. 당장 조진웅이라는 역량 있는 배우가 생업을 포기하며 은퇴선언을 했고, 그의 인생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30년도 넘은 청소년 시절에 저질렀던 범죄 때문에 모든 걸 잃어버리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강도강간처럼 아주 심각한 범죄는 아니었을 테니, 소년원에 갔을 거다. 소년원에 다녀왔다는 건, 자신의 범죄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졌다는 거다. 아무리 소년이어도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에 맞는 책임 추궁을 당한다. 소년보호처분도 교도소가 아닌 소년원에 갔다는 것만 다를 뿐, 일정 기간 신체의 자유를 제한당하며 갇혀 지내야 하는 구금의 고통을 받는 것은 똑같다.


조진웅 배우도 문제지만, 우리나라 소년보호 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 것은 정말 뼈아픈 대목이다. 소년보호는 미성년의 범죄에 대해서는 성인과 달리 판단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했다. 소년의 범죄라도 그 소년 자신의 탓이지만, 아직 사리판단이 부족한 미성년자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그 소년에게만 묻는 것은 문제라는 거다. 소년을 키운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 나아가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거다.


또한 아직 변화할 가능성이 크니 따끔하게 혼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잘 가르치면서 기회를 줘보자는 거다. 소년보호에서 말하는 보호는 범죄 소년으로부터 그 주변이나 사회를 보호하는 것은 물론, 범죄로부터 그 소년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다행히 조진웅 배우는 소년 시절의 범행에서 벗어나 역량 있는 배우가 되었고, 제법 인기도 끌게 되었다. 소년범 출신 중에서 손꼽힐 만큼 성공한 사례인 셈이다. 부족한 데다 고칠 것도 많지만, 그래도 소년보호 시스템이 작동했기에, 범죄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소년법’의 목적은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소년법’이 소년의 범행에 대한 일체의 사항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고 규정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범죄를 저질렀어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게 우리의 원칙이다.


그 연예매체는 법률로 정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원칙을 깨트렸다. 소년원에 갇힌 소년들은 어땠을까. 조진웅 배우처럼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도 소년원에 간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단박에 무너지는 상황, 이 살벌한 사례를 확인한 심정은 어떨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소년 시절의 범죄가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는 족쇄가 될 거란 공포를 느꼈을 거다. 그래서 자포자기하고, 진짜 범죄꾼이 된다면, 그 소년은 물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얻을 건 뭔가. 소년원 출신은 주목받는 일, 근사해 보이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이상한 교훈이라도 얻는 건가. 유명 배우를 두고 벌인 흥미 위주의 기사 놀음은 때로 이렇게 심각한 사태를 일으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