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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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의 그림자(경향신문, 2022.04.2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5-02 17:53
조회
460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갇힐 위험에 놓인 가난한 시민을 돕기 위해 만든 장발장은행. 간단한 심사만으로 무담보, 무이자 대출을 해준다. 그러니 벌금 낼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이 쏟아져 들어온다. 최근 대출심사를 하면서 한 통의 약식명령서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여성이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렸지만 갚지 못했고, 이 때문에 ‘사기’죄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사건이었다. 빌린 돈만큼의 벌금을 받았다. 개인 사이의 민사는 이렇게 형사사건으로 둔갑하고, 단순 채무불이행은 사기범죄가 된다. 전과자를 양산하는 이상한 시스템이다. 법원은 피고인이 “빚을 갚을 의지나 능력이 없으면서도 공연히 돈을 빌렸다”며, 피고인의 저 깊은 속내까지 파악해 형사처벌을 한다.


 깜짝 놀랄 대목은 따로 있었다. 피고인의 약식명령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피고인은 유흥접객원으로 일하던 사람이다.”


 약식명령이든 판결문의 첫머리에는 이런 식의 인정신문 내용이 붙기도 한다. 피고인을 특정할 만한 표지를 꼽거나 범죄와 관련해 꼭 짚어야 할 사항을 적어두기도 한다. 그렇지만 ‘유흥접객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은 범죄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그저 혐오성 낙인에 불과하다. 판사는 왜 이렇게 오금 박듯 적어두었을까. 왜 과거에 종사했던 일이 유독 이 여성에게만 중요한 표지가 되었을까. 그 사람은 40대, 여성, 한부모 가정의 어머니, 어느 지역에서 어떤 직업에 종사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이것 말고도 그를 알려줄 표지는 훨씬 더 많을 거다. 그런데도 ‘유흥접객원’을 유일한 표지로 꼽은 건 왜일까.


 만약 그의 과거 이력이 범죄와 연관이 있다면 또 모르겠다. 과거에 전문적인 사기집단의 조직원으로 일했다거나, 돈 떼먹는 일을 직업적으로 했다면 그럴 수 있을 거다. 만약 피고인이 남성이라면 이런 식으로 함부로 낙인찍힐 일은 없었을 거다. 법원이 대놓고 판결문을 통해 인권을 침해하는 이런 식의 사례는 숱하게 많다.


 판사들이라고 변명할 말이 없지는 않을 거다. 인력은 적고 일은 많다는 흔한 이야기부터 적용 법률과 양형이 맞는지 살펴보는 게 급선무라 놓쳤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약식명령서를 판사들이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검찰에서 넘겨준 공소장을 그대로 옮긴다. 검사의 이름을 판사의 이름으로 바꾸는 게 전부다. 마찬가지로 검찰은 경찰이 작성한 서류를 그대로 옮긴다. 아무리 그래도 기껏해야 몇 줄 안 되는 약식명령을 쓰면서, 아니 검토하면서, 맨 앞줄에 적힌 ‘유흥접객원’ 운운을 챙기지 않았던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이런 잘못은 서류 작성의 맨 앞에 있었던 경찰관에게서 비롯되었을 거다. 그러나 우리의 형사사법시스템은 수사기관의 잘못을 기소기관이 걸러내고, 기소기관도 챙기지 못한 것은 법원이 바로잡으라는 차원에서 설계되었다. 사법절차는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마치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듯 기계적으로 돌아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밥그릇 싸움을 보면,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는 업자들만의 다툼을 확인할 수 있지만, 사법절차의 진짜배기 핵심은 서로 다른 기관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잡아서 잘못을 줄여보자는 거다.


 벌금형 선고가 예상되는 형사사건은 중요하지 않은 사건으로 취급하겠지만, 빌린 돈도 갚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벌금까지 매길 때는 판사의 고민이 담겨야 한다. 매년 수만명의 사람이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가는 현실을 고려하면, 가난한 사람에게 벌금형은 징역형과 별다르지 않다. 법원으로서야 크고 작은 사건이 따로 있는지 모르지만, 당사자 처지에서는 자기 사건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은 검사들이 국민을 위한 호민관 역할은 제쳐두고 오로지 제 잇속만 챙기며 생긴 반작용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틀어쥔 권한의 독점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오로지 국민만 쳐다보고 일해 왔다면, 민주주의 원리에는 맞지 않아도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그 정도 권한은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 높았을 거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법원에서 보통의 시민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가를 생각하면 아뜩해질 지경이다. 법원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자기 혁신의 노력부터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동안 벌금형에 대해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던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벌금형에 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