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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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짬밥’은 그만 (경향신문, 2022.04.0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4-01 11:48
조회
602





 군대는 불편한 것투성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당장 의식주부터 불편하다. 언제나 제복을 입어야 한다. 쉴 때도 똑같은 운동복을 입어야 한다. 머리카락 길이도 스타일도 통제한다. 늘 ‘용모단정’을 요구한다. 여럿이 함께 자는 것도 불편하다. 입고 자는 거야 단체생활이 으레 그렇겠니 싶을 수도 있지만, 먹는 것은 좀체 적응이 어렵다. 세끼를 모두 부대에서 제공하는 급식을 먹어야 한다. 메뉴를 선택할 수도 없고, 먹고 싶을 때를 고를 수도 없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없다.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없다. PX에서 컵라면이나 냉동식품 등 간편식을 먹을 수 있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진짜 곤혹스러운 건 밥을 짓는 일이다. 군인들이 먹는 밥은 군인들이 만든다. 그런 법이 있는 것도, 작전상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래전부터 내려온 관성으로 그리한다. 조리병들은 하루에 세 번씩 전투를 치른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아침밥을 지으려면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야 한다. 보통 6시30분부터 아침을 먹는 군대식 일과에 맞추려면 새벽잠은 포기해야 한다.


 군대의 세끼는 사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맞춰져 있다. 장병들의 아침 식사가 끝나면 조리병들도 밥을 먹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한숨 돌릴 겨를은 없다. 설거지에다 식당과 주방을 청소하고 음식물쓰레기까지 처리해야 한다. 점심용 재료를 다듬고 나서야 겨우 30분 남짓 짬을 낼 수 있지만, 곧바로 점심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병영식당은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 ‘격전의 공간’이다. 언제나 밥과 국,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 내야 한다. 똑같은 과정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반복한다. 남들 다 쉬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일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날이든 세끼 밥을 먹는다는 철칙은 바뀌지 않는다. 잠은 늘 부족하고 남들처럼 쉴 수도 없다. 인력은 늘 부족하니 외출과 휴가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일은 고되지만, 보람이나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입맛이 제각각인 데다 선호하는 메뉴도 다른 사람들의 입맛을 다 맞춰줄 수도 없다.

 종일 병영식당에서 지내다 보니, 음식물 냄새, 흔히 ‘짬내’라 부르는 고약한 냄새가 몸에 밴다.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고 동료 병사들마저 싫은 티를 낸다. ‘짬내’ 때문에 조리병끼리 생활실을 쓰게 하는 경우도 많다.

 병영식당은 모두가 꺼리는 곳이다. 조리병들의 불만은 쌓여만 간다. 그러니 군대와 관련한 가장 빈번한 민원은 바로 병영식당에서 근무하지 않게 해달라는 거다. 이건 의경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병영식당 책임을 맡은 직업군인도 날마다 전전긍긍이다. 오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명령’을 반복해야 한다. 일단 병영식당에 오면 어르고 달래고 때론 윽박지르며 병영식당 인력을 유지하지만, 병영식당은 늘 일촉즉발의 현장이다. 아무리 군인이어도 실시간으로 쌓여만 가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명령만으로 잠재울 수는 없다. 다만 사고만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싸워서 이기는 게 임무인 군대가 먹는 문제로 온통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의 징병제도를 그대로 운용할 수 없다는 건 명백하다. 청년들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으니 대책이 시급하다. 징병제와 모병제를 섞자거나 복무기간을 늘리자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어떤 길을 가든 군대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장 불필요한 인력을 줄이고, 꼭 필요한 곳에 합리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그건 의무 복무를 하는 젊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니 당장 조리 인력부터 없애자. 줄이는 게 아니라, 아예 밥하는 군인 자체가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그건 국방부도 이미 알고 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에는 밥 짓는 군인이 한 명도 없다. 미군 식당은 민간이 운영한다. 대개 뷔페식으로 운영한다. 게다가 부대 안에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 등이 다양하게 들어와 있다. 치킨, 빵, 피자 가게들이다. 뷔페 식사 말고 따로 먹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다. 미군이 아주 오래전부터 해온 일을 왜 우리 군대만 하지 않는 걸까. 급식은 경쟁력 있는 급식업체들이 잘 차려내면 되고, 군인들은 오로지 본연의 임무에만 집중해야 한다. 전투상황에는 어떻게 대응하냐고? 그땐 전투식량을 먹으면 된다.

 2만명쯤으로 추정되는 조리병 문제를 풀면, 2만명의 군인을 새로 얻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국방개혁은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고칠 수 있고, 효과가 분명한 일부터 챙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