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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출신이라는 낙인 (경향신문, 2021.01.2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1-29 10:42
조회
941

출처 - 서울신문


소년원 출신. 이건 낙인 아니면 철없는 훈장이다. 소년원 출신이라면 골목에서 놀기 편할 수도 있다. 남다른 경험을 했다며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다. 그래 봤자 잠깐, 철없는 시절의 골목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소년원 출신이라는 건 대개 낙인이다.


소년원은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소년법’ 제1조) 곳이다. 소년의 잘못은 소년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부모의 잘못이고 교사 등 어른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아직 성장 중이니 기회를 주자는 뜻도 있다. 비행 때문에 소년원에 간다지만, 같은 비행을 저질러도 가난하거나 한부모 또는 조손 가정 아이라면 소년원에 갈 확률이 엄청나게 높다. 그러니 일반적인 형사처분과는 다른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거다. 2년 동안 소년원에 가두든, 수강명령이나 사회봉사명령을 내리거나 보호관찰을 하든 모든 소년보호 활동은 법률의 요구처럼 건전한 성장을 돕는 차원에서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소년원은 감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감옥보다 훨씬 큰 고통을 견뎌야 한다. 소년원 한 끼 급식비는 고작 2080원에 불과하다. 간식도 없고 매점도 없는 소년원에서 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 밥만 잔뜩 먹어야 하는 현실, 청소년들이 탄수화물 과다섭취로 인한 고도비만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감옥에서는 돈만 있으면 과일, 달걀, 반찬에다 과자까지 사 먹을 수 있다. 가난해도 강제노역으로 받는 작업보상금으로 반찬 정도는 마련할 수 있다.


당장 고통도 심각하지만, 소년원에서 나간 다음도 문제다. 어떤 보호처분을 받아도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소년법’ 제32조) 않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소년에 대한 낙인은 청년이 된 다음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소년원에 갔다 왔어도 장교가 될 수 있어요.” 법무부 공식 블로그에 실린 기사다. 소년원 출신이라고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하면 안 된다며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겠단다. ‘임용결격 사유’가 아니면 누구나 시험 볼 자격이 있다는 거다. 여기까지는 맞다. 소년원 출신도 누구나 시험을 볼 자격을 준다. 하지만 소년원 이력을 문제 삼아 탈락시키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해병대 부사관 시험에 응시한 청년도 그랬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필기시험, 신체검사, 인성검사까지 통과했지만 소년원 출신이라는 낙인은 피하지 못했다. 소년보호 처분을 이유로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소년법’ 규정과 달리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은 “각 군 사관생도의 입학 및 장교·준사관·부사관·군무원의 임용과 그 후보자의 선발에 필요한 경우” 소년보호 처분 이력을 조회하고 회보할 수 있도록 규정(제7조)하고 있다.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사람은 걸러내겠다는 거다. 지원자에게 소년보호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거나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 동의서’를 받아 관련 정보를 들여다보는 방법도 있다.


제출하라는 서류를 내지 않을 취업준비생은 없다. 서류를 내지 않으면 탈락할 것이 뻔한데, 달라는 서류를 내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정보 이용에 동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로만 동의일 뿐 강제와 다를 바 없다.


법률끼리 서로 충돌하고, 법무부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사실상의 거짓말을 홍보하고, 국방부는 소년보호 처분을 받았다고 낙인을 찍으며, 젊은이들의 직업선택 자유는 물론 생계마저 박탈하고 있다. 앞뒤도 맞지 않고 법률 원칙도 저버리는 이상한 행태다. 마치 무정부 상태에서나 가능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소년원 출신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오히려 사회생활에 적응하도록 도와야 한다.


누구라도 소년보호 처분 기록을 들여다볼 수 없게 법률을 바꿔야 한다. 본인 동의를 받았다고 해도 본인이 아니면 기록을 볼 수 없게 해야 한다. 또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아예 기록을 삭제해야 한다.


앞길이 막힌, 그래서 희망을 빼앗긴 삶은 비참하다. 청소년 시기의 잘못 때문에 젊은이의 앞길을 막는 건 가혹하다. 그 젊은이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할지 걱정이다. 사람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소년 시절의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사람을 돕지는 못할망정, 자기 실력으로 취업하려는 걸 막으면 안 된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 소년원 경력을 이유로 차별받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