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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호] 왜 인류본사인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7-21 17:15
조회
298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오늘날 ‘역사’라는 개념을 관성적으로 구분하면 누구나 자연스레 ‘서양사’와 ‘동양사’로 나누고 만다. ‘서양사’는 그리스-로마에서 출발해 중세-대항해시대-르네상스-종교개혁을 거쳐 산업혁명과 근대 문명으로 귀결되면서 ‘세계사(世界史)’라는 이름을 독점했고, 동서양의 균형을 내세우며 인위적으로 육성된 ‘동양사’는 중국사 일변도였다. 나머지 세상은 지역사, 변방사, 비주류 역사로 치부되었으며, 서양사와 동양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엄격히 분리된 채 이어져 오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서양이 동양을 개화시키며’ 융합되었다는 식으로 말해져 왔다.


 그러나 이는 속속들이 잘못된 역사 인식이다. 서양의 문명과 문물은 서양에서 기원하지 않았고, 동서양은 인류사의 모든 순간을 통틀어 교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지구는 동전처럼 평평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서양과 동양을 촘촘히 이어준 ‘중간문명’이, 더 거슬러 올라가 ‘인류문명’이라는 것 자체를 탄생시킨 ‘중심문명’이 분명하게 존재해왔다. 그저 틀에 박힌 동/서양 이분법에 의해 외면되었을 뿐이다. 문명의 본향은 바로 ‘오리엔트-중동’이었다. 세계 4대 고대문명 중 3개(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더스)가 이곳에서 발아되었고, 인류의 영성적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세계 3대 일신교인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이 지역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한치의 빈틈 없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가 이어져 왔다.


 《인류 본사》는 오리엔트-중동 지역을 바탕으로 인류사를 다시 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인류의 뿌리 역사, 즉 ‘본사(本史)’로 선언하며 1만 2,000년 전 초고대 아나톨리아 문명부터 히타이트·프리기아 등 고대 오리엔트 문명과 7세기 이후 이슬람 왕국들의 역사를 거쳐 근대 오스만·무굴 제국의 성쇠까지, 오리엔트-중동의 인류사적 궤적을 서로 관통하는 15개 제국의 역사를 통해 재정립한 책이다. 이러한 역사읽기 시도가 새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잃어버린 역사의 제자리를 되찾는 일이다. ‘해가 뜨는 곳’이란 의미의 라틴어 ‘오리엔스(Oriens)’에서 유래한 ‘오리엔트(Orient)’는 오늘날 터키 공화국의 영토인 아나톨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문명을 발아시킨 역사의 본토였다. 중동(中東)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기반으로 신화·문자·정치·기술 등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온갖 문물을 창조해낸 문명의 요람이었다.


 나아가 오리엔트-중동은 인간사회가 등장하고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만 2,000년 동안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온 지구상에서 가장 선진적인 중심지였고, 6,400킬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과 서양의 정치·경제·문화를 이어주며 교류 발전을 주도한 문명의 핵심 기지였다. 그러므로 오리엔트-중동을 모른 채 문명사를 논하는 것은 곧 문명 없이 문명사를 외치는 아이러니와 다름없다. ‘중양(中洋)’의 눈으로 역사를 다시 읽는 것이야말로 인류문명의 완전판을 탐독하는 획기적 사건이며, 동/서양 이분법이 유발한 역사 왜곡과 인식 단절을 뛰어넘어 잃어버린 인류문명의 뿌리를 되찾는 위대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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