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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호] 삶의 채도(彩度)를 닦는 시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8-27 11:53
조회
321

신종환/ 공무원


 지자체 공무원으로서 코로나19에 대한 첫 기억은 2만 개가 넘는 KF94 마스크를 지역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개별포장을 하며 밤을 새던 날로 시작한다. 마스크 포장을 해야 하는 날이 줄어들 때 즈음에는 방역복을 입고 관할 동을 여기저기 소독했다. 물탱크에 물이 그렇게 많이 들어간다는 것과 몇 통 안 되는 소독약을 섞었는데도 토할 만큼 독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마스크값이 폭등했을 때는 주민센터에 마스크를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직원용 마스크를 꽁꽁 숨겨야 했고, 지내다 문득 핸드폰을 보니 일주일에 몇 명씩 담당해야 할 자가격리자 명단이 업로드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나나 어떤 이들은 늘어난 업무의 고충을 느꼈고, 어떤 이들은 시시각각 줄어가는 터전과 벌이에서 위기를 느꼈다.


 매체에선 지금 겪는 이 어려움이 얼마나 더 길고 힘들어질지를 말하거나 지원을 위해 선을 어디까지 그을지를 얘기하거나, 누가 누구를 얼마나 잔인하게 죽였는지에 대한 소식들이 이어졌다. 듣고 나서 얼마나 더 우울하고 화나고 슬픈지의 차이만이 남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소식들도 있지만 점차로 눈에 잘 띄지 않게 되었다.
머리에는 어려움의 증가를 알리는 것 같은 람다, 델타, 델타플러스와 같은 변이 바이러스의 이름과 더 강해진 그들의 특성들만 남았다.


 지인들과 정서를 교류하는 폭도 점점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생계의 고충이나 직업상의 고민, 사회적 사건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서로가 처한 상황이 달라도 서로를 생각하려는 시도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지인들은 일상적으로 생활의 불안함이, 또 나는 가중된 업무가 대화의 고정된 주제가 되다 보니, 감정과 대화의 흐름은 다소 일방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자가격리 키트와 식료품 키트를 만들기 위해 새벽에 퇴근하고 일찍 출근하는 일이 잦아진 일을 지인과의 통화 중 말했다. 지인은 그 말을 듣고는 “그래도 넌 다행이다, 잘릴 일은 없잖아”라는 말을 하고, 나는 “그렇지 뭐 내가 무슨 고생을 아나”하며 서로의 안부를 마무리했다.


 침묵을 피하려는 자조적인 농담은 서로의 연결이 약해지고 감각을 환기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 악순환되는 지표처럼 느껴졌다. 신경이 하나하나 무뎌지면서 그들에게 삶은 고통이 늘어나는 과정이 되다가 삶=고통이라는 등식으로 인식될까 무서웠다. 하지만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상황에 오래 처해 있는 이에게 이런 말과 생각이 배부르고 한가한 소리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무서움에 입 밖에 내지 못했고 고립을 해소하기 위한 징검다리를 놓는 시도를 하지 못했다.



사진 출처 - freepik


 거두어진 어휘와 시선을 다시 살펴보는 일은 잊어간 명도만 남은 삶에서 채도를 측정할 시선들도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2012년 출간된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나 각각 2014, 2015년 출간된 ‘섬과 섬을 잇다’ 1, 2권 같은 서적 또한 같은 취지의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관심을 환기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시도이기도 했지만, 책을 읽은 독자들은 책으로 만난 그들에게서 비치는 자신이 소중히 여겨야 할 것들을 느꼈을 것이다. 건강한 연대와 사랑은 상호적인 형태로 나타나므로. 다만 그때는 사회에서 특정 사람들만이 고립되어 있고 우리는 그렇지 않은 다수로서 다가서는 형태였기에 모두가 고립되어 가는 지금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 뿐.


 니체는 선악의 피안에서 “도덕적 현상은 없다. 그 현상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여러 의미로 받아들여질 문장이지만 요즘은 그 말이 살면서 견지한 여러 시선이 삶을 고통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도록 해준다고 읽힌다. 어떤 시선을 견지하는가가 삶을 지키는 건강성과 연관이 된다면 삶의 채도를 다시금 닦는 일이 잊은 건강성에 대한 감각을 제고 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같은 고통과 방황이라도 어디로 가야 하고 얼마나 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가의 유무의 차이는 적지 않으니까.


 인권연대에 기고하기 위한 글을 고민하면서 의도적으로 무례하게 위로와 연대를 시도하던 예전 일들을 떠올린다. 때때로 어떤 무례함은 그만큼 내가 당신을 알고 다가가고 싶으며, 나아가 다가가는 스스로의 잊고 있는 소중한 부분을 다시금 느끼게 하려는 용기였다는 것을 그때는 알았는데 어느 순간 잊고 있었다. 신영복 선생님은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하셨다. 고난을 줄여주기보다 같이 겪어주는 일을 더 중요시하는 까닭은 ‘있어 줌’이라는 존재의 증여가 구체적이고 퇴색되지 않는 굳건한 마음의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기고하며 내 주변 일부터 세계적인 일까지 곱씹으며 ‘있어 줌’의 흔적을 찾아내고 닦아보는 한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한가한 말을 쓰는 이 무례함이 우리의 삶의 터전만큼 상실해가는 감각의 터전을 다지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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