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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와 엔진의 사주풀이 - 배우 하영 논란이 남긴 것(김성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9-22 14:52
조회
224

김성은/ 서울신문 기자


 

필자가 대학원 시절, 사주 보는 족족 척척 맞추는 명리가를 찾았다며 호들갑을 떠는 친구 손에 이끌려 대학교 앞 사주집을 찾은 날이 있었다. 을지로 일대를 거쳐 대학가로 오기까지 십수 년간 수천 명의 팔자를 짚어주었다는 나이 지긋한 명리가였다.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꼬치꼬치 질문을 퍼붓는 필자를 상대로, 그는 길고 긴 사주 풀이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복채 값을 다 털어 넣은 긴 이야기의 끝자락. 그는 내게 반드시 명심하라며 묘하게 재밌는 비유 하나를 던졌다.

“사주라는 건 결국 자신이 경차로 태어났는지, 아니면 잘 빠진 고급 중형차로 태어났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에 불과하오. 하지만 그 차 앞에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가 놓일지, 날카로운 돌멩이가 굴러다니는 자갈밭이 깔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경차라도 운 좋게 고속도로를 만나면 제 분수와 능력을 넘어서서 쌩쌩 달릴 것이고, 아무리 강력한 고급 중형차라도 자갈밭을 만나면 사정없이 덜컹거리며 경차만도 못한 속도로 겨우겨우 기어가게 되는 법이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건 말입니다. 사람이 쏟아붓는 노력이 그 길의 모양새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거요. 경차라도 나태해지면 고속도로가 순식간에 자갈밭으로 바뀔 것이고, 고급 중형차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그 자갈밭을 매끄러운 고속도로로 바꿀 수 있는 법이지.”

주야장천 사주 풀이를 늘어놓던 그가 막판에 이런 운명 개척론을 피력하자, 필자는 “그럴 거면 사주는 뭣 하러 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허허 웃으며 “어찌 보면 그 말도 틀린 게 없네” 하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사주팔자 맹신하지 말고, 자신의 운명은 피땀 어린 노력으로 개척하며 살아야 한다”라는 묵직한 지론을 덧붙였다. 타고난 배경이 휘황찬란하게 좋아도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모래성과 같다는 일침이었다.

최근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며 문득 그 명리가가 남긴 비유가 다시금 떠올랐다. 온갖 군상을 상대하며 쌓아 올린 그의 혜안이 태생의 그늘과 노력으로 얽히고설킨, 한 인간의 복잡한 삶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가 내게 진짜 전하고자 했던 것은 뭐였을까. 타고난 배경이라는 불평등한 도로, 그리고 그 위를 달리는 개인의 노력이라는 엔진. 이 두 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통찰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영에게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빛나는 이력은 한동안 세상이 깔아준 매끄러운 고속도로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가 방송에서 그와 같은 배경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후광의 학습 효과가 아니었을까. 이는 가문으로부터 세습된 ‘상징 자본’이 만들어낸 달콤한 환상이었다. 그러나 증조부의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이 수면 위로 올라오자 탄탄대로라 믿었던 길은 일순간에 사정없이 덜컹거리는 자갈밭으로 변해버렸다.

 


하영 증조부 친일파 논란 이후 접속이 폭주한 ‘뿌리를 찾아서’ 홈페이지 갈무리


 

이 반전을 두고 누군가는 친일파 후손을 향한 통쾌한 응징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현대판 연좌제라며 혀를 찬다.

물론 친일 행적에 대한 역사적 청산과 책임 규명은 그 자체로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사회적 과제다.

그러나 이 소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화두는 한 연예인의 수난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는 타인을 평가할 때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애초에 하영이 집안 배경을 앞세워 후광 효과를 누리려 했던 것도, 이제 와 비난받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누구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배경, 즉 ‘어떤 도로에서 출발했는가’를 그 사람 자체의 가치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배경에 열광했던 시선과 그 이면에 등을 돌리는 시선은 방향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시선은 ‘그가 어떤 도로에서 출발했는가’라는 껍데기를 내려놓고 노력과 인성이라는 그 본연의 엔진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냉정하게 살펴보는 일이다. 4대째 내려오는 의사 집안이든 아니든, 유복하게 자랐든 지독한 가난을 버텼든, 어떤 지역에 살든, 얼마나 비싼 집에 살든, 부모가 있든 없든, 누구 손에서 자랐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지금 그가 어떤 힘으로 달리고 있느냐다. 오롯이 자신의 실력과 됨됨이라는 엔진만으로 자갈밭을 뚫고 나아가려는 이에게, 우리는 선입견을 거두고 그 본연의 진가를 가늠해 줘야 한다.

세습된 후광에 기댈 필요도, 선택할 수 없었던 배경 때문에 억울하게 재단당할 이유도 없다. ‘개인의 엔진’만을 온전히 바라볼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참된 공정의 길목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