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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정치의 오빠 중독자들(이라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5-12 10:07
조회
470
이라영/ 문화평론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외국 여성에게 예외 없이 들은 단어가 있다. 오빠. K-드라마는 ‘오빠’를 빠르게 수출했다. 드라마 밖의 한국 남성들은 젊은 외국 여성들에게 ‘오빠’를 가르쳐주지 못해 안달한다. ‘오빠’에는 한국 남성의 정체성이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K-오빠’라고 이름이라도 붙여줘야 하나 싶다. K-오빠란 여성에게 연상의 남성으로 자리하여 성적 위계질서에서 주도권을 가지려 하나 정서적으로는 여성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미성숙한 남성. 남성 동맹의 피로감을 여성의 응원과 지지로 해소하고 여성의 추앙을 받으며 자존감을 충전하려는 젠더 권력 중독에 빠진 남성. K-언어 사전이 있다면 이렇게 정리되지 않을까.
민주당 대표 정청래와 부산 보궐선거에 출마한 하정우가 선거 유세 도중 만난 여덟 살 여아에게 “오빠 해 봐.”라는 발언을 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 대표 정청래의 ‘오빠’ 타령은 처음도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그는 여성 유권자와 사진을 찍으며 집요하게 ‘오빠’라 불러주기를 요구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어떤 세계에서 살아가는 걸까 궁금해진다. 한번 비판받았음에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개선의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공적 일은 남자와 하지만 정서적 돌봄은 여자에게 맡겨진 분업 체제에 갇혀 있는 이들이다. 그래서 ‘오빠 서비스’를 받으며 자존감을 충천하고 남성 동맹 속에서 정치를 한다. 성인 여성에게 요구하는 ‘오빠’도 기가 막힌 노릇인데, 어린아이를 보고 중장년 남성 정치인이 ‘오빠’를 요구하는 걸 보면 오빠 중독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난 생명체가 꾸준히 요구받는 태도가 무엇인지 자명하게 보여준다. 여성들이 연예인에게 자발적으로 오빠라 부르며 환호할 때는 ‘빠순이’로 비하하던 남성들은 실은 누구보다 오빠를 갈망한다.
옥스퍼드 사전에 aegyo라는 단어가 2021년에 한국 단어로 공식 등재되었다. 여성들에게, 젊을수록 애교를 강요하는 문화는 여성에게 남성의 기분 서비스를 하도록 강요한다. 이는 매우 한국적이고 나아가 동북아시아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여성들은 귀엽고 절대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고 분위기를 맞추는 존재로 길러진다. 미디어에서는 서슴없이 젊은 여성 연예인들에게 애교를 ‘시킨다’.
이처럼 여성에게 ‘어림’을 연기하도록 만드는 문화 속에서 ‘오빠’는 결코 중립적인 호칭이 아니다. 연상의 이성을 부르는 호칭에서 오빠와 누나는 사회적으로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누나’라고 부르던 사람과 연인이 되면 더는 누나라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대중가요의 “누난 내 여자니까 너는 내 여자니까 너라고 부를게”라는 이 환장할 가사는 현실적이다. 소위 연상연하 커플은 여성이 연상인 경우를 말한다. 남성의 연상을 보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남성이 연인 관계의 여성을 누나라고 부르면 젠더 권력의 법칙에 부합하지 않기에 ‘내 여자’는 누나가 될 수 없다.

윤석열은 대선을 앞두고 2021년 집사부일체 출연했다. “석열이 형이라 불러”라고 출연자들에게 요청했다. 심지어 당시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은 ’형, 어디 가?…석열이 형 일일 통신’을 만들어서 담당 기자들에게 공지했다. 권위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평등한 관계에서 소탈한 소통을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형’은 남성 간의 열린 동맹을 추구하는 한편 여성 유권자를 배제한다. 한숨 나오는 작명 실력이다.
이처럼 남성들은 ‘형’이라 부르며 동맹을 과시한다. 그러나 여성에게 ‘오빠라고 불러’는 이러한 동맹의 성격을 갖지 않는다. 여성이 남성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관계가 되는 순간은 매우 사적인 감정, 남성이 성적으로 여성을 지배할 수 있는 판이 깔리는 시작점이다. 젠더 권력이 개입하는 순간이다. 형님 정치는 남성 간에 인맥을 쌓아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잘못도 덮어주는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왔다. 이들의 돈독함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을 꾸준히 배제해 왔다. 전혀 다른 사안으로 보이지만 국민의힘 김재섭이 여성 공무원 출장을 두고 질이 나쁜 공격을 한 것도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시각을 반영한다. 여성을 공적 영역에서 존중하지 않는 아주 오래된 천박한 방식이다.
오빠 중독에는 좌우도, 여야도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형님 정치를 꾸준히 이어간다. 남성과의 사적 관계에 여성을 가두려는 발악 속에서 이번 선거에서도 여성 후보 비율은 처참한 수준이다.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여성 광역단체장이 없었다. 당선 이전에 후보만이라도 30%를 목표로 했으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이 남성 정치인들에게 여성이란 과연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