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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무게 < 간병의 무게(정한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2-10 10:20
조회
313
정한별/ 사회복지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026년 1월 24일.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 만이었다. 93년을 살아내신 할아버지였기에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실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2025년 11월의 마지막 월요일 아침. 큰고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전화가 울릴 일이 없는데, 불안한 마음에 평소였으면 받지 않았을 전화를 급하게 받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고모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슬픔을 눌러 담는 느낌이 들었다. 자세한 것은 묻지 않고, 알겠다고 답을 한 뒤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갈 준비를 하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돌아가신 건 아니란다. 수로에 떨어졌는데 의식은 있단다. 일단 상황을 보고 다시 연락할게.”
할아버지는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들어가셨다. 뇌출혈과 저체온증이 있어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급하게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가 계신 경상북도 문경시로 향했다. 의식은 있었으나, 할아버지는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했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마른 얼굴에 눈빛만은 형형했던 할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병상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에 아버지의 모습이 겹쳤다.
같은 해 봄. 할아버지는 감나무에서 떨어졌다. 두 달에 한 번꼴로 문경에 가곤 했던 토요일 낮. 할아버지 집 근처 골목에서 얼굴에 피떡이 덕지덕지 붙은 채로 절뚝이며 걷고 있던 할아버지를 만났다. 깜짝 놀라 할아버지를 모시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미라처럼 얼굴에 붕대를 친친 감은 할아버지가 ‘자신은 멀쩡하고 밭에 할 일이 많아, 바로 퇴원하겠다’라며 몽니를 부리는 통에 하루만 입원해서 상태를 보자고 설득하는 데 애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만큼 건강했던 할아버지였건만 이번만은 불안했다. 자꾸 할아버지의 얼굴이 아버지의 얼굴로 보였다.
며칠 뒤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할아버지는 내 이름을 불렀고, 차를 가져왔냐며 집에 가자고 자신의 휴대전화를 달라고 다그칠 정도로 정신이 맑아졌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날 기억한 날은.
정신은 온전치 않았으나 기력은 있었던 할아버지는 입원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폐렴에 걸렸다. 병원에선 다른 환자에게 폐렴을 옮길 위험이 크니, 1인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다인실로 올라와 병실 생활을 하던 할아버지가 1인실로 가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병원비도 커졌지만 돌봄에 대한 부담이 달라졌다. 다인실에서 공동간병을 받을 때는 고모들과 함께 병원비와 간병비를 감당할 수 있겠다는 묘한 안도감이 있었지만, 1인실에서 생활하면서부터는 상황이 180도 변했다. 간병비의 규모가 너무 달라졌다. 90대의 할아버지를 70대의 할머니가 간병했는데, 간병비만 한 달에 500만 원 이상 필요했다. 할아버지의 섬망증세와 과격한 행동이 반복되자 병원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며 할아버지의 손과 발을 묶었다. 묶인 손과 발은 피가 통하지 않아 부어올랐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 가족들은 묶인 손발을 풀고 주무르기에 바빴다. 사실을 알면서도 보통의 일상을 잠시 중단하고 할아버지를 직접 간병할 수 있는 가족은 그 누구도 없었다. 대신 간병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의 대화만이 오고 갔다.
병원에서 더는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며, 요양병원으로의 전원을 제안했고, 요양병원으로 간 할아버지는 다음날 돌아가셨다. 고작 2달 동안의 일이었다. 10년이 넘게 투병했던 아버지에 비하면, 돌봄의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돌볼 수 있는 가족들이 여러 명이 있었고, 간병 기간이 매우 짧았다. 그럼에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가족 간 대화의 가장 큰 주제는 돌봄 부담이었다.
자신이 하던 일을 중단하면서 할아버지를 돌볼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간병비가 부담이 되지 않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족도 없었던 우리에게 돌봄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긴 시간 가족들을 돌봤고, 돌아가시기 전 5년간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의 묘도 돌봤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남은 자식들에게 가벼운 돌봄의 무게라는 선물까지 안겨주고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할아버지를 그렇게 좋아했고,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했던 가족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짧은 투병 생활 끝에 생을 마감한 할아버지를 그리며 남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지는 않았을까.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간병비는 한 달 평균 370만 원 수준이며, 이는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의 1.7배에 달하는 액수라고 한다. 간병에 지쳐 환자를 살해하는 간병살인은 2006년 3건에서 2019년 26건까지 늘었다. 간병살인 가해자의 대다수는 가족이며, 가해자의 94%가 피해자와 같이 살면서 범행을 저질렀고, 74%는 경제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돌봄의 끝에서…“간병살인은 사회적 타살”, KBS, 2025.10.16.).
과연 사랑의 무게는 간병의 무게보다 클 수 있을까. 간병의 무게가 죄책감의 무게로 바뀌지 않게 사회적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