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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계속 가자지구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이동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2-02 10:45
조회
117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지난 2주간(1월 14일~27일) 가자지구 관련 뉴스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소식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평화위원회’ 출범과 이스라엘 인질의 시신 수습이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가자지구에서는 혹한 속에서 땔감을 줍던 소년들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등 총 215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들은 휴전 발표 이후, 주요 뉴스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트럼프가 주도하는 이 ‘평화위원회’는 가자지구 재건과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약 60개국을 초대했고, 현재까지 19개국과 코소보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한국 역시 초대받았으며, 외교부는 이를 검토 중이라고 공식 논평했다. 그러나 이 명단에 이스라엘은 있어도,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은 없다. 평화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팔레스타인이 배제된다는 사실은 이 논의가 무엇을 전제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가자지구 임시 난민캠프에서 추위에 불을 쬐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


(출처: 가자지구 사진사 Hosny Salah)


 

국제사회의 최고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미 가자지구 상황과 관련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개연성을 인정하고 잠정조치를 명령했다. 이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국제법적 판단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휴전 이후에도 공습과 군사작전을 멈추지 않았고, 민간인 사망은 계속 보고되고 있다. 국제인도법은 민간인 보호, 비례성 원칙, 집단 처벌 금지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만, 가자지구에서는 이 원칙들이 반복적으로 무시되어 왔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늘 예외로 취급받아 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평화위원회’가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집단학살의 책임을 흐리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임을 묻지 않는 평화와 가해자를 중심에 둔 협상은 정의를 삭제한 채 폭력을 관리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이것이 오늘날 국제질서의 민낯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이 배제된 평화위원회에 참가하는 것은 결코 중립적인 선택이 아니다. 이는 국제법 위반과 집단학살 의혹이 제기된 사안을 ‘관리 가능한 분쟁’으로 축소하고, 책임을 묻지 않는 평화 프레임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를 인권과 국제규범을 중시하는 국가로 규정해 온 한국이, 피해 당사자가 배제된 협상에 참여하는 일은 그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우리가 가자지구 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자지구의 참상은 단지 중동 지역의 비극이 아니라, 현재의 세계질서가 어떤 생명은 보호하고 어떤 생명은 쉽게 포기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국제법은 늘 조건부였고, 인권은 유보되었으며, 평화는 언제나 타인의 언어로 결정되어 왔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야기는 동정이 아니라 저항의 방식이다. 이름 없는 숫자로 지워지지 않게 하는 일, “이미 끝난 일”로 봉인되지 않게 하는 일은 집단학살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평화는 위로부터 선언되지 않는다. 가해자의 면죄부 위에 세워진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진정한 평화는 아래로부터의 기억, 책임을 묻는 목소리, 그리고 자결권을 부정당해 온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가자지구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스라엘에 의한 집단학살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국제사회의 이중적인 인권 담론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더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침묵 역시 정당화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