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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하여(홍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6-08 14:35
조회
403

홍세화/ 대학생


 [죽음] :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을 이르는 말.


 그저 현생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나는, 최근 단편 단편의 경험들로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얼마 전, 나 또한 ‘손석구 신드롬’을 피해 가지 못하고 한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다.
 바로, [나의 해방일지]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해방’, ‘추앙’ 등 평소에 잘 활용하지 않던 단어들을 이 드라마에서는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그 의미를 조금 더 명확히 알고자 처음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국어사전도 함께 들여다보게 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여주인공의 대사 중 ‘나를 사랑해줘요’라는 상투적 표현이 아닌, ‘나를 추앙해요’라고 표현한 부분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충격적이고 신선한 표현이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총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나오는데, 주된 주인공으로 비치는 인물은 배우 손석구(극중 ‘구씨’)와 김지원(극중 ‘염미정’)이지만, 내게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끔 하고,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 인물은 배우 이민기가 연기한 ‘염창희’이다.


 극중 창희는 살면서 뜻하지 않게 자꾸만 가까운 사람들의 임종을 지키게 된다. 자신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줄 계약까지 포기해가며 홀로 여자사람친구의 전 남자친구 임종까지 지키다 뱉는 대사가 나의 마음을 울렸다.



사진 출처 - JTBC


 “형, 내가 세 명 보내봐서 아는 데 갈 때 엄청 편해진다. 얼굴들이 그래... 그러니까 형, 겁먹지 말고 편하게 가. 가볍게... 나 여기 있어.”


 한 사람 인생의 마지막을 창희는 손을 꼭 잡아주며 추앙한다. 이 장면에서 문득 죽음이란 뭘까 생각이 들었다. 정말 눈을 감으면 편안해지는 것일까.


 지난 4월, 우리 가족 귀촌 생활의 시작부터 오랜 세월 함께했던 강아지 은비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몇 달 전 골수암 선고를 받고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지 않으면 제대로 걷지도 못해 힘겹게 살아가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서울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며칠간 펑펑 울었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함께 산책하던 은비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마냥 슬퍼하던 중 이제는 고통받지 않고, 죽음으로써 無의 상태로 돌아갔으니 오히려 은비에게는 편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겨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앞선 두 가지의 경험을 하고 나니 작년 11월에 아빠가 해주신 말씀도 떠올랐다.
 연희동 우리 집 건널목 너머에 살던, 한때 대통령을 역임한 주민이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듣고 저녁에 나와 술 한잔하시던 아빠는 내게 언젠가 자신에게도 죽음이 닥칠 것을 깨닫는 인간은 탐욕을 부리지 않고 살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일깨우는 자는 아등바등하며 부와 권력, 명예 등에 탐욕을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위와 같은 일련의 경험을 통한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을 떠다니다가 깨우친 사실은 ‘죽음을 두려워할 것 없다.’ 와 ‘내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편히 즐기자’이다.


 그동안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들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던 내게 이와 같은 깨우침은 삶을 조금은 초연히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