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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팔레스타인 땅의 날(Palestine Land Day)‘을 아시나요?(이동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4-07 14:35
조회
605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원인이 땅?


 최근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 프로그램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사를 다뤘다. 기원전 수십 세기를 거슬러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왜 싸우는지를 역사적으로 되짚으며 그 이유를 결국 ‘땅’이라고 결론지었다. 이-팔 분쟁의 원인이 양측이 믿는 종교 때문이거나 하마스(Hamas)의 테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인 국내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방송의 결론은 분명 진일보하고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방송을 보고 난 후 마음 한켠에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7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분쟁원인이 ‘땅’이라는 결론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폭력과 차별을 감춘 채 분쟁의 종식을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사실관계를 희석했다. 다분히 강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풀어내고 승자의 논리로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을 해석하는 오류를 낳게 했다.


 #1976년 3월 30일


 1976년 3월 11일, 3차 중동 전쟁(1967년)을 통해 팔레스타인 전역과 골론고원, 시나이반도까지 삼킨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 정착지 확장을 위해 팔레스타인 북부 갈릴리 지역의 아랍인 토지 약 2000 헥타(ha)를 강제수용하겠다고 발표한다.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거주지역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은 크게 반발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스라엘 점령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의 주민들, 해외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총파업과 함께 시위에 합류하였다. 위기감을 느낀 이스라엘 정부는 수천 명의 경찰과 군 헬기를 동원하여 주민들의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하였다. 3월 30일 시위대를 향한 이스라엘의 발포로 시위대 6명이 숨졌고, 100여 명이 부상당했으며 수백 명이 연행당했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지만 다양한 지역에서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최초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점령에 맞서 한마음으로 저항하였기에 이날을 ‘팔레스타인 땅의 날(Palestine Land Day)’로 지정하였고, 국제적으로 최초의 ‘인티파다(민중봉기)’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매년 3월 30일에는 이스라엘의 불법점령에 항의하는 크고 작은 시위가 점령지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유대 정착민에 의해 방화된 차량, 나블루스 자루드 마을,
사진출처: Middle East Monitor, Nedal Eshtayah- Anadolu Agency


 #2022년 3월 30일

 아디의 여성지원센터가 위치한 팔레스타인 중북부의 대표적인 도시 나블루스(Nablus), 이 도시 주변 마을주민들은 수천 년 전부터 올리브나무를 재배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2년 3월 30일 나블루스 남부의 알 루반 마을(Al-Lubban ash-Sharqiya)의 170그루의 올리브 나무는 인근에 거주하는 유대인 정착촌(국제사회는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의 유대인 정착촌을 불법이라 규정함) 주민에 의해 파헤쳐 졌다. 또한, 같은 날 나블루스의 자루드(Jalud) 마을에서는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에 의해 4대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차가 불에 탔고, 주민들 집 담벼락에 혐오 글귀가 남겨졌다. 근처의 부린(Burin), 부르카(Burqa)마을에서 유사한 일이 발생하여 수십 대의 차량이 파괴되었다. 이 피해 마을들의 공통점은 모두 마을 인근에 유대인 정착 마을이 있고 지속적으로 정착촌 주민들과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 물리적 언어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대인 정착촌의 폭력을 단속하고 처벌하는 기관은 없다. 이스라엘 군인은 유대 정착촌 주민들의 폭력을 방조하거나 폭력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연행하고 처벌한다. 이것이 2022년 ‘땅의 날’ 팔레스타인의 현실이다.


 #‘아파르트헤이트’와 ‘반인도적 범죄’


 올해 2월 국제적인 인권단체인 ‘국제 앰네스티’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관련 대응은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분리정책)에 해당한다”는 28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한, 미국의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 역시 작년 4월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스라엘 정책이 국제법상 아파르트헤이트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러한 주장을 ‘반유대주의(Anti-semitism)’라고 하며 강력하게 반발하지만, 현지에 여러 차례 방문한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아주 정확한 지적이다. 현재의 이-팔 분쟁의 원인은 ‘땅’에서 시작하지만, 현실 분쟁의 원인은 그 땅을 불법적이고 부정의하게 빼앗기 위한 폭력이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차별하기 위해 만든 이스라엘의 법과 제도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법과 제도를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정만 할 뿐 별다른 제재나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국제적인 언론 역시 이스라엘 정부의 일상적 차별과 범죄에는 시선을 두지 않은 채 팔레스타인 측에 의한 범죄와 폭력에 대해서는 대서특필한다. 그리고 지금도 ‘현재’의 이-팔 분쟁의 원인을 설명할 때 기원전 수십 세기 전 유대 민족의 역사 속 이야기들로 인용하며 결국에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두 민족과 종교’라며 현실을 퉁친다. 현재의 이-팔 분쟁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기원전 수 세기 전부터 살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원주민의 역사에는 관심이 없는지? 오늘도 벌어지는 유대 정착촌 주민들과 이스라엘 군인들의 폭력이 이-팔 분쟁의 원인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