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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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오징어 중학교 이야기 1. - 헤드락 혹은 어깨동무(이회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1-06 11:05
조회
622

이회림/ 경찰관


 #오전 9시경 오징어 중학교 3학년 1반 복도 앞
 남학생 네 명이 체구가 작아 보이는 남학생 한 명을 빙 둘러싸고 있다.


 “야~~성기훈(가명)~ 너 일로 좀 와 봐”
 “왜 뭔데?”
 “아니 그냥, 너 잠깐 여기 좀 들어가 보라고~”
 “여기? 내가 여길 왜 들어가?”
 “야! 애들이 다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들어가라니까 뭔 말이 이렇게 많아? 들어가! 들어가라고!”
 “아~ 싫어. 내가 왜 들어가! 밀지 마~”


 #한 달 후, 오징어 중학교 상담실 안
 cctv 화면 위로 학교전담경찰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자~~ 여러분~ 지금 기훈이를 어디에 밀어 넣고 있는 거죠?”
 “청소도구함요.”
 “청소도구함에 왜 사람을 밀어 넣고 있는 거죠? 기훈이는 안 들어가려고 버티는 모습이 확연히 보이는데요…. 계속 버 티니 발로 마구 차기도 하고…. 이런….
 근데 지금 기훈이한테 로우킥하는 사람, 여러분들 중 누구예요?”
 “아~ 그건 전데요. 걍 장난이에요. 장난~~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요? 그냥 장난이면 학생도 기훈이처럼 갇히는 역할을 한번 해보면 어때요? 발로 막 차여가면서요.”
 “싫은데요.”
 “왜 싫은가요?”
 “.....”
 “장난이라면서 갇히는 역할은 싫고 때리면서 가두는 건 괜찮나요?”
 “아~~ 답답해. 기훈이는 원래 갈굼 당하는 애거든요. 우리만 그러는 거 아니거든요. 1반 애들 다 갈군다고요~~”
 “원래 갈굼 당한다...? 도대체 기훈이가 갈굼 당하는 이유가 뭔가요?”
 “아~ 이유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처음부터 그랬다고요. 1학년 때부터요.”


 위의 내용은 최근 오징어 중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대화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저는 피해 학생 기훈이에 대해 가해 학생들이 입을 모아 ‘원래 갈굼 당하는 애’라고 말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 없이 처음부터 갈굼 당하는 애'라니.. 마치 기훈이는 우리 반 전체가 갖고 놀아도 되는 장난감인데요, 처음부터요' 이러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cctv 화면으로 돌아가 봅니다. 평범한 학교 복도의 풍경이 보입니다. 창문 아래에 붙박이로 붙은 하얀색 청소도구함도 보이구요.
 그 앞에서 기훈이에게 헤드락을 건 채 웃으며 계속 무언가를 말하는 학생이 있네요. cctv 화면이라 선명하지는 않아도 웃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구분됩니다. 기훈이를 청소도구함으로 억지로 밀어 넣고 있는 다른 학생 두 명도 보입니다. 가해 학생 중 가까스로 탈출해 나온 기훈이에게 재빨리 로우킥을 날리는 학생이 가장 눈에 띕니다. 그리고 그들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또 다른 많은 아이들도요.


 “저는 여러분들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요. 자~~먼저 이 장면에서 기훈이에게 헤드락 걸면서 웃고 있는 이 학생이 누구죠?”


 cctv 영상을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멈춰가며 각자의 행동을 직접 말로 설명해 달라고 하자 가해 학생 모두 반색을 합니다. 헤드락을 걸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어깨동무’를 한 것이라고 항변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요? 제가 보기엔 헤드락인데요...”
 “그럼 학생이 말하는 어깨동무를 나한테 한번 해 봐 줄래요? 여기 녹화된 것처럼요. 어깨동무는 쉽게 풀 수 있지만 헤드락은 푸는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거든요. 저는 태권도, 유도, 합기도를 배우면서 헤드락 푸는 법을 제대로 배웠으니 맘껏 해봐도 됩니다. 자~~”


 헤드락을 어깨동무라고 우기던 학생에게 다가가 어깨를 내밀었더니 마지못해 어깨동무를 합니다.


 “잠깐! 이 상태로 여기 영상 다시 보세요. 다시 물을게요. 이거 어깨동무인가요? 헤드락인가요”
 “헤..헤드,,락이요...”
 “그런데 조금 전에는 왜 어깨동무라고 말한 거죠?”
 “......”


 학생은 책상 위로 고개를 떨군 채 대답이 없습니다.


 십 수년간 경찰 일을 해 오면서 잔인한 범죄 현장을 적지 않게 봐 왔음에도 저는 이날 본 cctv 영상이 가장 자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네 명이 한 명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많은 아이들이 무심하게 지나쳐 가는 모습이 너무나 잔인해 보이고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가해 학생들을 말린다거나 선생님을 부르러 뛰어가는 학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2021년 학교폭력실태조사(※조사 기간 :2020학년도 2학기부터 2021년 4월)에 따르면 피해 경험 장소는 교실> 복도> 운동장 순, 학교 내> 학교 밖 피해 시간은 쉬는 시간> 하교 이후> 점심시간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오징어 중학교의 학교폭력 사안은, 112나 117 즉 경찰에 신고된 건이 아니었고 피해 학생이 직접 담임선생님에게 알린 경우입니다. 통계 결과에서 보이듯이 피해가 빈번히 일어나는 장소인 ‘학교 내’, ‘복도’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시간상으로도 가장 빈도가 높은 ‘쉬는 시간’에 범행이 이루어졌습니다.


 피해 학생 기훈이는 그날 괴롭힘을 당한 직후 담임교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고 담임교사는 지체없이 cctv를 확보했습니다. 기훈이의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해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 수 있고, 경찰에 신고도 가능함을 안내하였습니다. 기훈이가 경찰에 신고는 원치 않는다고 하자 학교장께서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학교전담경찰관의 자문을 받아 재차 신고 의사를 확인해보라고 조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상담실에서 가•피해 학생 전부와 장시간 대면 면담을 한 결과, 이 사건을 여성청소년 수사팀에 사건 의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 피해 학생의 가족분들과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가족분들은 지금이라도 경찰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고 기훈이의 마음도 같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 기훈이와 부모님이 함께 경찰서를 방문해 부모님과 함께 피해자 진술조서를 작성하였고 이로써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학교폭력 피해가 3학년이 되어서 그 고리를 끊어내는 첫발을 떼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pngtree


 피해 학생 기훈이는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보육시설에 맡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중1 때부터 복싱을 배웠다는 얘기를 하길래 기훈이 눈앞에 펀치를 날리면서 ‘“이게 잽인 거지? 이건 훅이고?” 하면서 어쭙잖게 아는 척을 해 보았습니다.


 “아뇨~ 그건 원투예요. 잽은 이거구요.”하면서 허공에 제대로 한 방 날려 주었습니다.
 “아니~ 너는 마음만 먹으면 네 명 모두 충분히 날려버릴 수 있었겠는데. 혹시 그동안 그 네 명 때리고 싶어도 참은 거 아냐?"


 기훈이가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CCTV 영상을 보며 서늘해졌던 제 마음이 기훈이 얼굴에 피어난 옅은 미소 덕분에 온기를 되찾는 듯했습니다.


 상담실에서 기훈이와 단둘이 편안하게 앉아 서로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이유 없이 원래 갈굼 당하는 애’로 낙인찍혀 괴롭힘당하던 기훈이가 알고 보니 복싱을 되게 잘 하는데도 과시하지 않는 ‘짱 멋진 애’로 불리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