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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란 : 취준생(홍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2-24 15:01
조회
640

홍세화/ 대학생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이제는 말로만 듣던 취업 시장에 몸을 던져야 할 때가 왔다. 더 이상 숨을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부모님께서 취업과 관련하여 걱정 어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실 때면 나는 덩달아 불안해지는 마음을 감추려 괜스레 짜증 섞인 어투로 “알아서 할게.” 하고 대꾸만 할 따름이다.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도 자연스레 달라졌다. 대학 1, 2학년 당시에는 대학 캠퍼스 내에서 벌어진 사랑과 전쟁, 다양한 행사와 인근 대학의 이번 축제 연예인 라인업, 미팅과 과팅에 다녀온 가슴 떨리는 이야기 등이 대화 내용의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서는 코로나로 인한 취업 시장의 변화와 위축, 꿈꿔왔던 ‘워라밸’ 실현의 어려움, 불분명한 미래로 인한 진로 걱정 등이 주로 하는 이야기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어린 시절과 달리 취준을 목전에 둔 지금은 꿈이고 뭐고, 그냥 나를 써주겠다는 회사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앞구르기를 세 번 하며 그 회사에 들어가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하기도 한다.


 취업 준비에 발을 담그며 느낀 또 한 가지는 돈이 없으면 취업 준비를 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갖추고 있다는 스펙을 쌓으려 해도 학원비, 교재비, 시험응시 비용 등이 만만치 않았고,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각 기업의 인적성검사, NCS 등을 공부해야 하는데 이 또한 모두 돈이다. 때문에,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가 필수이다. 이러한 와중에 최근 유력한 대선후보 한 명은 ‘최저임금제를 폐지하겠다’, ‘구직앱을 제작하여 청년들의 취업난을 해결하겠다.’라는 등의 망언을 듣고 ‘정말 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어쩌지...’ 하는 암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최근엔 민정수석의 아들이 입사지원서에 본인이 민정수석의 아들이며, 자신을 채용하면 아버지께서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내용만을 써넣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일었다. 민정수석의 아들도 취업난에 저런 행동을 저지르는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동질감을 찰나에 느꼈으나, 이는 곧 상대적 박탈감으로 바뀌며 이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혹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몇몇 사람들은 실제로 이러한 경로로 편히 취업을 했겠다는 씁쓸함과 화가 치밀었다.


 현재 취업 시장의 취준생들은 90년대생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IMF 이전 경기 호황에 태어난 90년대생들은 해마다 그 인구만 60~70만을 훌쩍훌쩍 뛰어넘었었다. 그들이 자라나 지금 흔히 말하는 ‘청년’세대가 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경기 호황 때와는 정반대인 저성장 시대 속에서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을 일삼으며 바늘구멍의 취업 시장을 통과해야 한다. 이와 함께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옛말로 바꿔버렸다.


 한국 역사를 통틀어 힘들지 않았던 세대가 어디 있겠느냐만, 본디 인간이란 ‘남이 칼에 찔린 고통보다 내 손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다고 느낀다’라는 말이 있는 만큼, 취준생이 된 지금의 나는 같은 90년대생 취준생들의 고통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글을 마무리 지은 후, 난 또다시 OPIc과 토익 책을 펼치고 인강을 재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