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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이동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0-27 13:37
조회
627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매년 많은 한국인들이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19년의 경우 이스라엘 통계청이 밝힌 이스라엘 방문 한국인은 61,200명이다. 이는 아시아국가 중에서는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방문객 수이고 전체 국가를 대상으로 하면 17위에 해당된다. 방문객 중에는 사업과 학업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하는 관광객들이다. 이들은 예수 탄생과 부활의 장소인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하지만 이 도시들이 팔레스타인지역에 위치함에도 한국 방문객들 중 자신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방문하고 그 곳 사람들을 만났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별도의 비자나 입국절차가 요구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팔레스타인 영토로 알려진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중 완벽하게 통제된 가자지구를 제외하고는 예루살렘과 서안지구 내 C 지역을 이동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물론 이스라엘 법령으로 서안지구 내 A 지역과 B 지역의 출입이 제한되지만 두 지역은 서안지구의 40%에 불과하고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사람의 출입을 막지는 않는다. 더욱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도로를 통해 더욱 빠르게 왕래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이스라엘 점령전만 해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지구의 서쪽 끝부터 서안지구의 동쪽 끝까지 차량으로 2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었고, 서안지구, 가자지구, 예루살렘 상관없이 모든 도시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스라엘이 설치한 수많은 검문소와 장벽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동은 가로막혔다. 지중해 바닷길을 포함하여 사방이 가로막힌 가자지구, 이스라엘과 서안지구 간 국경 길이가 330km(1949년 휴전협정기준)이지만 전체 700km가 넘는 장벽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서안지구, 어디가 장벽의 안이고 밖인지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뱀처럼 휘감은 장벽에 둘러싸인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이곳에서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이동은 꿈과도 같은 일이다.



분리장벽에 가로막힌 길을 돌아가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사진 출처 - 사단법인 아디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이동의 제약을 받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팔레스타인 여성들, 이들에게 장벽은 이중적 차별이자 폭력 그 자체다. 그럼에도 많은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이를 낳기 위해, 면회를 가기 위해서 오늘도 국경과 장벽을 넘어야 한다. 때로는 이스라엘 정부가 발급한 비자를 소지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자신들의 빼앗긴 땅 위에 세워진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에 들어가 가정부 역할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한다.


 사단법인 아디는 매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권 이슈에 관련한 인권보고서를 제작했다. 올해 아디는 작년에 이어 또 한 번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삶에 집중하기로 했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조사와 연구를 통해 아디는 2021년 팔레스타인 인권보고서로 이스라엘의 국경과 장벽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제작 중이고 11월 말 발간 예정이다. 이 보고서를 위해 아디는 총 15명의 여성들과의 심도있는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들에게 ‘선’이 가진 의미와 제약들, ‘선’ 안에서 또 ‘선’ 밖에서의 삶을 물어보았다. 15명의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본인들의 삶에 대해 담담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아디는 이야기들을 통해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갖는 ‘점령’이라는 특이성과 ‘여성의 삶’이라는 보편성을 동시에 들을 수 있었다.


 분쟁지역에서 인권기록 활동을 하는 단체의 활동가로서 많은 이들에게 기록물이 전달되기를 바라지만 경험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 의해 36년간 점령통치를 경험했고 여전히 휴전선에 의해 남북이 가로막힌 곳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일 것이다. 그리고 ‘점령과 평화’라는 주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팔레스타인과 여성의 삶에 관심있는 독자들은 11월말에 출간되는 보고서를 시간 내서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심지어 무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