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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 아동을 향한 집단 학교폭력은 어떻게 두 번 지워지는가(이승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7-31 13:30
조회
344

이승은행정사 · 전 학교전담경찰관


 한 아이가 교문 앞에 서 있었다.

 가방을 메고, 어머니 손을 잡고, 거기까지는 왔다. 그런데 더 들어가지 못했다.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돌아섰다. 초등학교 5학년,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다. 사건이 있고 두 달이 지난 뒤의 일이다.

 

다섯 명, 두 개의 장소


 봄 한 철 동안 그 아이에게 일어난 일은 이랬다.

 교실에서는 교과서에 욕설 쪽지가 붙었고, 책상에는 초등학생이 썼다고 믿기 어려운 성적(性的) 표현이 적혔다. 담임교사가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기 전에 떼어 버려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교과서 쪽지뿐이다. 급식 시간에는 숟가락이 날아왔다. “너 죽고 싶냐”라는 말을 들었고, 사물함 앞에서 엉덩이와 가슴팍을 발로 차였다. 아이는 어울림반 선생님에게 아프고 억울하다고 여러 번 말했다. 뒷문을 막아서며 “너 같은 건 들어오지 말라”는 말도 들었고, 자신을 낮추는 말을 따라 하게 시키는 일도 있었다.

 화장실에서는 다른 세 명이 있었다. 아이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따라 들어와 팔과 다리를 때렸다. 이 무렵부터 아이의 몸에 멍이 생기기 시작했고 점점 늘었다. 4월의 어느 날, 아이는 밀쳐진 뒤 무서워서 변기 칸으로 도망쳐 문을 잠갔다. 한 아이는 변기를 밟고 올라가 칸 안을 들여다보며 조롱했고, 다른 아이는 문을 발로 차면서 “나와, 닥쳐”라고 했다. 아이가 문을 열고 나오자, 다시 팔을 붙잡혔다.

 교실에서 두 명, 화장실에서 세 명. 모두 같은 반이다.

 한 아이가 다섯 명에게, 두 개의 장소에서, 여러 주에 걸쳐 겪은 일이다. 그 아이는 사회적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고 위험에서 자신을 지키는 능력에 객관적 제한이 있다고 진단서에 적혀 있는 중증장애 아동이다.

 이 사건은 한 번 사라졌다.

 

“관계조정을 받으려면 자체해결에 동의해야 합니다”


 봄이 끝나갈 무렵 학교에서 회의가 열렸다. 부모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학교 관리자는 관계조정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학교장 자체해결에 동의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어머니는 서명했다. 아이를 회복시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조정 프로그램과 학교장 자체해결은 별개의 절차다. 자체해결에 동의해야만 관계조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절차 사이에는 아무런 전제 관계가 없다.

 서명 한 장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다섯 명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나는 이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자체해결 동의서를 받는 자리는 대개 짧고, 설명은 구두로 이루어지며, 보호자에게 숙려할 충분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아직 병원에 다니고 있고 부모가 지쳐 있을 때, “이렇게 하시면 관계회복을 도와드릴 수 있다”라는 말은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법은 이렇게 되어 있지 않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3조의2 제1항은 학교장 자체해결을 “피해 학생 및 그 보호자가 심의위원회의 개최를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한다. 요건을 갖췄는지보다 앞서는 것이 보호자의 의사다. 보호자가 심의를 원하면, 학교장은 자체해결을 할 수 없다. 교육부 사안 처리 가이드북도 같은 취지다.

 그리고 상대방의 부정확한 안내 때문에 생긴 착오는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 민법의 오래된 법리다(민법 제109조). 착오를 유발한 쪽이 그 착오의 효력을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서면 한 통으로 사건을 되살리다


 나는 행정사로서 보호자의 의뢰를 받아 「학교장 자체해결 동의 철회 및 심의위원회 심의 회부 요청서」를 작성했다. 보호자 명의로 학교장에게 제출되었고, 같은 내용이 관할 교육지원청에도 접수되었다. 

 서면에는 다섯 가지를 담았다. 관계학생별로 누가 무엇을 했는지 시기와 장소를 나누어 정리한 사실관계, 그것을 뒷받침하는 복수 의료기관의 진료기록과 진단서, 자체해결 동의가 학교의 부정확한 안내로 유발된 착오라는 점, 지속성과 치료 필요성이라는 객관적 요건도 충족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학교폭력 판단의 다섯 요소 — 심각성·지속성·고의성·반성·화해 — 에 비춘 사안의 중대성.

 객관적 자료는 이미 충분했다. 사건 직후 정신과 진료기록에는 아이가 교내 화장실에서 동급생 여러 명에게 감금과 폭행을 당해 몸 여러 곳에 멍이 들었고 담임교사를 통해 그 사실을 인지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다른 진료기록에는 어머니가 아이 몸에 남은 멍을 채증해 치료자에게 보여준 사실도 남아 있었다. 두 달 사이 체중이 2킬로그램 가까이 빠진 것이 성장 기록에 정서적 스트레스의 반영으로 기재되었고, 아이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주치의는 성급한 종결보다 아이의 안정과 회복을 고려한 신중한 진행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냈다.

 종결된 사건은 다시 열렸다.

 사건이 다시 열린 것은 다행한 일이다. 다만 나는 이 대목에서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이 가족은 비용을 들여 도움을 청할 곳을 찾았기 때문에 사건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러면 그런 곳을 찾지 못하거나, 찾더라도 비용 감당이 어려운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동의서에 서명하고, 사건이 종결되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지나간 사안이 지금까지 얼마나 있었을까.

 사건이 다시 열리고 아이의 진술이 관련 학생 측에 공유된 직후, 맞신고가 접수되었다.

 최초 사건의 학폭위 심의가 아직 열리지도 않은 상태였다.

화장실에 있던 세 명 중 한 명이 그 아이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는데 요지는 이랬다. 

“그 아이가 나에 대해 사실이 아닌 말을 했다, 나는 하지도 않은 일로 의심받았다, 그것이 나에게는 학교폭력이다.”

 이 순간 구도가 바뀐다. 다섯 명에게 둘러싸였던 아이는 더 이상 피해학생이 아니라 ‘쌍방 사안의 한쪽 당사자’가 된다. 몇 주에 걸친 집단 괴롭힘을 다투던 사건은, 아이의 말이 정확했느냐를 따지는 사건으로 축이 옮겨간다. 조사는 두 배가 되고, 심의는 늦어지고, 피해학생 쪽은 지친다.

 한 번은 서명으로 지워졌고, 이번에는 신고로 지워지려 하고 있다.

 


 


AI 생성이미지


 

무엇이 보호받아야 하는가


 여기서 반드시 갈라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절차 안에서 진실하게 말하는 것과, 상대가 말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아 그를 가해자의 자리에 세우는 것. 이 둘은 같지 않다.

 앞의 것은 제도가 예정하고 있는 행위다.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폭력을 상해·폭행·감금·협박·모욕 같은 행위로 정의한다. 피해를 진술한 것은 그 어느 유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 아이의 진술은 교사와 보호자와 의사, 그리고 사안조사 절차 안에서만 이루어졌다. 학급에 퍼뜨린 것도, 밖으로 옮긴 것도 아니다.

 뒤의 것은 법이 이름을 붙여 금지한 행위다. 같은 법 제17조 제1항 제2호는 피해학생과 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협박 및 보복행위를 금지하면서, 괄호 안에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행위까지 포함시켰다. 조문이 대면 접촉에 한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금지의 대상이 ‘접촉의 방식’이 아니라 ‘신고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불이익 그 자체’라는 뜻이다. 제13조의2 제1항 제4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신고·진술·자료제공에 대한 보복행위인 사안은 학교장 자체해결조차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물론 모든 맞신고가 보복은 아니다. 억울하게 지목당한 학생이 자신을 방어할 권리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문제는 판단의 기준이 아직 없다는 데 있다.

 기준은 세 가지면 충분하다. 무엇을 대상으로 삼았는가 — 상대의 구체적 행위인가, 상대가 진술했다는 사실 자체인가. 언제 제기되었는가 — 원사건의 심의 전인가, 자신이 지목된 사실을 안 직후인가. 새로운 사실이 있는가 — 원사건에 없던 사실관계가 추가되었는가, 오직 상대의 진술만이 대상인가.

 셋이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면, 그것은 방어가 아니라 압박에 가깝다.

 

왜 하필 장애학생인가


 맞신고의 표적이 되는 아이들에는 경향이 있다. 진술이 흔들리는 아이들이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는 시간의 앞뒤를 정확히 배열하지 못한다. 여러 사람이 한 말을 누가 무엇을 했는지 나누어 기억하기 어렵다. 질문의 형태가 조금만 달라져도 답이 달라진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단서에 적혀 있는 장애의 내용이다.

 그런데 사안조사에서 이 특성은 정확히 반대로 읽힌다. 진술이 오락가락한다, 앞서 한 말과 다르다, 신빙성이 없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 허위신고다.

 세상에서 가장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아이가, 도움을 청했다는 이유로 추궁받기 가장 쉬운 아이가 되는 것이다.

 

아이가 배우게 되는 것


 학교폭력 절차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조치의 경중이 아니다.아이가 무엇을 배우고 나가느냐다.

 교문 앞에서 돌아섰던 그 아이는 요즘 말을 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학교 이야기를 꺼내면 울거나 화를 낸다. 아이가 반복하는 문장이 하나 있다고 한다. “내가 말해서 내가 또 조사받는 거야.”

 이 아이는 지금 배우고 있다. 아프다고 말하면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된다고. 이 학습은 오래간다. 중학교에 가서도, 고등학교에 가서도, 성인이 되어서도 이 아이는 도움을 청하지 않을 것이다. 도움을 청하는 능력을 잃는 것은,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안전을 잃는 것과 같은 말이다.

 우리가 학교폭력 제도를 만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맞는 아이가 맞았다고 말할 수 있게 하려는 것 아니었나. 그런데 말한 아이가 불려 가고 말하지 않은 아이가 편안한 구조라면, 우리는 정확히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네 가지를 제안한다


 하나, 자체해결 동의는 서면 설명 · 숙려기간 · 철회권 고지를 갖춘 절차여야 한다. 자체해결의 효과와 심의위원회 개최를 요구할 권리, 그리고 관계조정 프로그램이 자체해결과 무관하게 이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서면으로 안내하고, 최소한의 숙려기간을 둔 뒤 서명을 받아야 한다. 도움을 구할 여력이 있는 가정만 사건을 되살릴 수 있는 구조는 공정하지 않다.

 둘, 원사건과 맞신고는 병합하거나 최소한 같은 날 심의해야 한다. 원사건의 판단 없이 맞신고를 먼저 판단하는 것은 사실관계의 전도다. 무엇이 있었는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진술이 옳았는가”를 먼저 물을 수는 없다.

 셋, 신고 사실이 인정되지 않은 것과 허위신고는 다르다.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면 피해학생은 신고에 앞서 자기 진술의 완전한 정확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그런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초등학생은 없다.

 넷, 장애학생 사안에는 별도의 조사 프로토콜이 필요하다. 특수교사뿐만 아니라 보호자나 신뢰관계인의 동석, 질문의 단순화, 유도질문 배제, 충분한 휴식. 어렵고 새로운 요구가 아니다. 이미 법에 근거가 있고, 형사절차에서는 오래전부터 쓰고 있는 방식이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심의위원회가 판단할 몫이고, 맞신고를 한 쪽 아이와 그 부모가 겪었을 마음의 무게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무게를 더는 방법이 피해를 말한 아이를 가해자의 자리에 세우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아이의 사건이 서명 한 장으로 지워졌다가 서면 한 통으로 되살아났고, 이제 신고 한 건으로 다시 흔들리고 있다. 그 사이 아이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길을 걷다  또래 아이들만 보면 차도로 뛰어들어 피하려는 통에 부모님은 가슴이 터질 듯 아프다고 하신다.

 그 아이가 다시 교문을 넘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번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말해도 괜찮다는 것을, 이번에는 어른들이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 알림— 본 칼럼은 2026년 6월에 수임하여 현재까지 진행 중인 학교폭력 사안을 바탕으로, 아동의 신원 보호를 위하여 성명·학교명·일자 등 사건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제외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