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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새 학기 증후군(이회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5-16 10:47
조회
453

이회림/ 경찰관


 저는 저희 관내 50개 학교 중 25개를 담당하는 학교전담경찰관입니다. 여학생이 피해자인 경우는 여성 경찰인 제가 맡게 되어 있어서 사실상 50개 학교 전부가 제 담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2022년 4월, 2명의 아이들로 부터 자살 관련 신고가 있었습니다. 여중생 A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자살 시도 직전에 1388로 전화를 해서 가까스로 구조되었고 여중생 B는 가정불화로 인해 죽고 싶다는 문자를 선생님에게 남기고 소재 불명이 되었다가 스스로 마음을 돌리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여중생 A는 3학년이 되면서부터 친했던 친구 두 명과 반이 나누어졌습니다. 두 명은 같은 반이고 A 혼자 다른 반이 되다 보니, 쉬는 시간만 되면 그 친구들이 있는 반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3월이 지나고 4월 초에 이르니 둘 사이에 A가 들어갈 틈을 더이상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개학한 지 2개월 차에 들어서면서 셋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공유했던 관계에 그만 단절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 어른들은 “반이 나뉘었으니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네가 이해를 하렴..새로운 친구를 사귀도록 노력해 보렴.” 하고 쉽게 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는 ‘친구들과 싸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지? 그럼 앞으로도 새 학기마다 계속 이런 식일 텐데..나는 이런 식으로는 살기가 힘들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A는 친했던 여학생 무리에서 느낀 이같은 소외감에 학업 스트레스가 더해져 등굣길 아침에 학교 대신 아파트 옥상으로 향하였던 것입니다.


 3~4월은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계절.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 한편으로 긴장이 공존하는 시기입니다. 낯선 선생님과 급우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구요. 그러나 여중생 A처럼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쉬는 시간만 되면 친했던 친구의 교실로 찾아가 새로운 친구와 친해지지 못하는 현상이 생깁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새 학기 증후군(new semester blues)”이라고 부릅니다.



사진 출처 - pixtastock


새 학기 증후군을 극복하려면?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새로 배정받은 반 분위기는 어떤지,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이고, 학교생활에서 답답한 점은 무엇인지. 학교 이외에 다른 활동을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아이의 새로운 흥밋거리나 어려움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합니다. 부모의 유사한 경험이 있다면 요즘 말로 ‘격하게’ 공감대를 형성해주면서 자신의 청소년 시절의 마음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잘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여중생 A는 그 일 이후로 잠시 학교를 쉬었다가 다시 등교하였고, 요즘은 중간고사 공부를 하느라 바쁩니다. 관내 청소년 문화센터에도 등록하여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를 못 사귀어도 여기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시시 웃으면서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문화센터에 잘 등록하였고 시설이 좋더라고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약간은 안도하게 됩니다. 문화센터에서 집으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BTS의 노래 ‘Magic Shop’을 틀었더니, 반가워하며 “선생님도,,혹시 아미.세요?”라고 묻습니다. 이어 자연스럽게 함께 BTS의 노래를 들으며 이어진 대화는 이렇습니다.


“선생님 최애 누구예요”
“7명 다 최애지..하하. 딱 한명 꼽으라면,,누구게~? 맞춰볼래?”
“뷔? 진?”
“아니...아니...난 ,,,, 지민님~~”
“악~~저도 지민님이 최애예요.”
“악~~그래?? 넘 반갑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맘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 곳이 기다릴 거야
믿어도 괜찮아 널 위로해 줄 Magic Shop’


 A에게 유난히 잔인했던 2022년 4월이 BTS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 속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새 학기 증후군은 아이의 적응력과 면역력 상태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호전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일부 증상이 심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다음 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학교생활 내내 학업 부진을 포함한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주의 깊은 관찰과 격려가 필요하다.


 이 시기는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 주고 긍정적인 정서를 가지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부모의 역할과 태도가 학교에 대한 아이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 아이와 산책을 하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함께 하면서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