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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그럼에도, 우리 함께(전예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7-13 10:30
조회
311

전예원/ 회원 칼럼니스트


 6월 18일 세계 난민의 날을 기념하는 제7회 난민영화제(‘그럼에도 우리 함께’)가 열렸다. 이번 난민영화제가 소개한 <파리의 별빛 아래>(2020), <나의 집은 어디인가>(2021), <기록(Writing To Reach You)>(2021), <소속(Belonging)>(2021) 등 네 편의 영화는 국적국을 떠난 이들이 맞닥트린 ‘난민 이후의 삶’에 주목했다.

출처 -  KOREFF 공식 홈페이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난민의 형상은 대부분 독재와 내전, 종교 박해 등으로 무너진 삶의 고통에 머물곤 한다. 시선은 국적국을 떠나게 된 사건이나 국경을 넘나드는 행적 이후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난민들이 이주 후 일상에서 겪는 현실의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 낸 이 네 편의 영화에는 그들의 취약하고 위태로운 삶의 실체가 담겨 있다.

 난민들이 국적국을 벗어난 이후 겪는 문제의 양상은 복잡하다. 영화 <파리의 별빛아래>는 엄마와 헤어져 거리를 떠도는 난민소년 ‘술리’와, 그의 엄마를 찾는 여정에 함께하는 홈리스 여성 ‘크리스틴’의 이야기를 통해 난민들이 마주한 문제적 현실을 드러낸다.

 난민은 법 안에서도 그 지위가 불안정하다. 술리가 프랑스의 거리를 떠돌게 된 시작은 다름 아닌 모자(母子)의 강제 퇴거조치기 때문이다. 난민들의 처지는 그들이 체류하고 있는 국가의 상황에 좌우된다. 술리 모자가 강제퇴거 대상이 되는 까닭 역시 프랑스의 난민정책상 이들 모자가 오스트리아로 보내져야했기 때문인데, 이 장면을 통해 자기의사와 관계없이 거소가 정해지는 난민들의 불안정한 처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와 다르다는 차별도 난민들에게 강력한 낙인이 된다. 영화 속 프랑스 사람들은 술리를 프랑스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는 골칫덩이로 취급하거나,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로 불편함을 드러낸다. 어린아이의 몸으로 산과 강을 건너 전쟁 중인 국적국을 벗어난 술리의 삶에 대한 이해는 찾아보기 어렵다. 난민협약 가입국으로서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형식적인 법과 절차는 갖췄지만, 그들을 공동체의 존재로 받아들이려는 인식은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난민들은 언제라도 다시 추방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난민’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혐오와 편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중의 문제를 겪고 있는 셈이다.

 난민이 맞닥뜨린 이 이중문제의 현실은 비단 영화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정율이 1.5~3프로에 그치는 현행 심사제도에서 한국사회의 절대다수의 난민이 ‘인도적 체류자’와 같은 불안정한 지위로 부유한다. 난민인정을 받기 위해 입증해야 하는 ‘박해받을 두려움’은 그 성질상 증명이 쉽지 않아 분명한 기준안이 제시되어야 함에도 법무부는 난민인정심사의 기준이 되는 ‘난민체류지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차별적 인식도 마찬가지다. 2018년, 제주 도착 예멘 난민들을 향했던 ‘가짜난민’의 프레임과 ‘난민법 폐지발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당시 다수의 언론은 난민을 청년의 일자리와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온한 존재로 비추어 난민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겼다. 난민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정책이 청년들의 고용불안을 심화시킬 것이며, 예멘이 여권이 낮은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있기 때문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하리라는 것이 주 논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상당 부분 그 근거가 빈약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실재하는 대다수의 난민은 국내의 취업자들과 직접 경쟁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없고, 이슬람권의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추측은 미디어를 통해 빚어진 왜곡된 이미지의 일면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느 사회에서건 난민들은 법적지위를 획득하기 어렵고, 운 좋게 난민인정을 받은 이후에도 숱한 차별적 인식들과 마주해야 한다. 낯선 문화권의 난민들은 인종적, 종교적 이유로 왜곡 보도되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문화적 차이 탓에 한국사회에 융화되기 어려운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난민영화제에는 ‘이란 난민소년’으로 잘 알려진 김민혁 학생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었는데, 그는 복잡다단했던 한국에서의 난민인정심사의 경험을 환기하는 한편 차별적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해 자신이 했던 최근의 노력들을 언급했다. 일례로 그는 난민이기에 한국 사회에 융화되지 못할 것이라는 시선들을 바꾸기 위해 배우로서 모델로서, 또한 학생으로서 자신이 이뤄온 많은 성과들을 이야기한 후에야 자신이 사실 난민임을 밝히는 화법을 취한다고 한다. ‘난민’이기 이전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임을 보임으로써 차별과 편견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하고 복잡한 난민인정심사의 과정과 그 이후의 삶에서 마주하는 일상의 차별적 인식들을, 난민 개인의 힘만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난민’과 ‘국민’이 공생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한 고민은 분명 필요한 일이나, 그것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어느 한쪽에만 짐 지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모두는 태어난 나라를 선택할 수 없고, 예고 없이 발생하는 재난과 전쟁, 그 밖의 박해사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제의 슬로건처럼 ‘그럼에도 우리 함께’ 가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대단한 노력을 요하는 종류의 것은 아닐지 모른다. 난민들과의 마주침의 계기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들이 국적국을 떠나오게 된 맥락을 상상하는 것,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편견 없이 지켜보는 것. 그럼에도 ‘함께’하는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