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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받지 못하는 노동 (김지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6-08 15:10
조회
481

김지혜/ 회원 칼럼니스트



만약 일반 기업에서 업무 중 화장실 이용 시간을 근무평가에 반영해 경쟁에 붙인다면 어떻게 될까? 배달업체인 요기요의 AI는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라이더의 휴게시간을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요기요의 AI는 잠깐의 휴게시간도 데이터로 산정하여 라이더에게 등급을 부여하고 일감을 줄인다. 등급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감소를 막기 위해 라이더들은 화장실 참는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배달업체 라이더는 특수 고용직 플랫폼 노동자이다. 그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의 형태로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출처 - 중앙일보


 코로나 사태 이후 비대면‧비접촉의 형태로 생활양식이 변화하면서 플랫폼 노동은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소비자에게는 편리함이, 일하는 이들에게는 과외 시간을 이용해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이점이 강조됐다. 그러나 이 플랫폼 산업은 출혈적 경쟁과 알고리즘에 의한 비인간적 통제에 의해 굴러가는 시스템이었다.


 진입장벽이 낮고 시간관리가 자유롭다는 이점으로 배달라이더의 수는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그런 이점을 비웃는다. 계속해서 콜을 받지 않으면 점차 콜이 줄어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수입(콜)을 유지하려면 그들은 계속해서 도로 위를 질주할 수밖에 없다. 즉, 이들은 무한노동을 전제로 24시간 대기상태에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륜차사고가 지난 1월부터 지난 5월 20일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 동안에 비해 47.1%포인트 증가했다. 횡단보도 주행, 신호위반 등이 그 원인이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다. 보다 빠른 배달을 원하는 소비자, 콜을 잡기 위한 라이더끼리의 지나친 경쟁, ‘단순중개’라는 명목 하에 방관하는 플랫폼 기업, 이륜차의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부실 단속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다.


 지난 5월 29일, 배달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을 막아왔던 전속성 조항(두 군데 이상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라이더의 경우 한 사업장에서 월 소득 115만원 이상을 벌거나 93시간 이상을 일해야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폐지하는 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동안 전속성 조항의 미충족으로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이 되지 못했던 노동자들에게 산재 적용 대상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건 사고에 대한 예방이 중요하기에 의무는 있으나 권리는 없는 그들에게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먼저다. 국내에서 거대 플랫폼 기업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계속 심화하고 있는데 정작 이들은 국경을 넘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이들은 인간적으로 노동할 수 없다. 알고리즘, 콜, 평점 등으로 노동자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플랫폼 기업은 관리자로서 책임을 져야하며 동시에 플랫폼 노동자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노동법학자인 제레미아스 아담스-프라슬은 이를 “혁신의 역설”로 표현하며 플랫폼 기술은 혁신적일지 몰라도 플랫폼 노동자가 일하는 방식은 오히려 퇴행적임을 지적한다. 플랫폼 산업 시대, 우리는 노동자의 권리와 사업주의 책임에 대해 다시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