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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 청년인턴 (손정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7 10:50
조회
434

손정원/ 객원 칼럼니스트



‘베이비붐 세대’, ‘386 세대’ 등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닉네임이 있다. 필자처럼 청년실업 100만 시대의 청년들은 ‘88만원 세대’로 불린다. 미취업 또는 저임금 비정규직이 지금의 젊은 세대를 표현하는 핵심어인 셈이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 가운데 하나가 ‘청년인턴제’이다. 미취업 청년에게 현장 경험과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단다.

2009년 3월, 정부 산하 청소년 활동기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10개월 계약직인 줄 알고 일을 시작했는데 공식 명칭은 ‘청년인턴’이었다. 당시 채용 담당자는 “부처에서 일반 계약직 T/O를 주지 않는다”며 “신분만 청년인턴일 뿐 급여는 일반 계약직과 다를 바 없다”는 친절한 설명을 해줬다. 기관 전체 직원 40명 중 절반인 20명이 비정규직이었는데, 청년인턴은 그 중 일부였던 셈이다.
10개월짜리 비정규직 ‘청년인턴’

애초 ‘청소년 해외봉사단 코디네이터’라는 업무를 보고 지원했기에, 신분 명칭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열심히 하면 될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할수록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다가왔다.

어느새 연말이 왔다. 계약직에게 12월이란 마치 ‘선고일’과도 같다. 그 해 겨울, 비정규직 20명 가운데 정규직을 선고 받은 이는 단 1명도 없었다. 12개월 단위로 계약한 보통의 비정규직들은 계약기간을 12개월 더 연장했고, 이미 24개월 동안 계약직으로 일한 이들은 하는 수 없이 다른 둥지를 찾아 떠나야 했다.

계약기간이 10개월이던 청년인턴은 딱 한 달 만 연장이 가능했다. 한 달의 추가계약 기간이 지난 뒤 담당 직원이 조용히 불렀다. “더 이상 계약 연장이 안 된다.” 이어지는 설명. “11개월 경력으로는 어딜 가도 쓸모가 없으니, 한 달 만 쉬었다 나오면 돼.” 다시 청년인턴 채용공고가 날 것이니 그때 지원하면 재고용이 된다는 얘기였다. 반드시 1달 간의 공백을 거친 뒤 다시 10개월짜리 계약을 새로 맺어야 하는 이유는, 12개월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두 번째 계약만이라도 12개월을 단위로 했다면,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청년인턴으로서는 퇴직금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경력단절 없이 일할 수 있는 1년 단위 계약직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일선 현장에서 청년인턴은 ‘더욱 질 나쁜 비정규직’에 다름 아니었다. 결국 다시 구직자의 신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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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5월 1일 119주년 노동절을 맞아 울산대공원 동문에서 지역 노동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민생민주 살리기 울산대회'를 연 가운데 대회 관계자들이 피켓을 설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 청년은 청년대로 불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동안 취업시장의 문은 더욱 좁아져 있었다. 전 직장의 직원 말처럼 11개월짜리 청년인턴 경력은 어디에도 쓸모가 없었다. ‘T/O가 없어 청년인턴이라는 이름만 빌렸다’는 설명을 누가 들어주겠는가. 당장 생계부터 문제였고, 시간을 갖고 ‘제 자리’를 찾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헤매길 두 달, 결국 다시 청년인턴이 됐다. 이번엔 금융 관련 공기업에서 사회공헌 업무를 봤다. 여기서의 청년인턴은 정말 잉여 인간에 가까웠다. 초기 몇 달은 일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인턴 동기 몇몇이 모이면 하나같이 ‘일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책상에 앉아 다른 일을 하자니 민망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 청년인턴 기간 동안 다른 구직활동을 했다. 기관에서도 면접 등에 대비하라며 3일 간 무급휴가도 줬다.

부서 직원과 점심을 먹을 때였다. 그는 청년인턴에게 정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언제 떠날지 몰라 일을 가르쳐 주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으로 일하는 공기업 직원에게 청년인턴은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과 같은 존재였다. 결국 정은 못 주되 업무시간에 취업 공부를 하거나 이력서를 작성하는 등 ‘딴짓’을 해도 눈감아주었다. ‘공부’가 아니라 ‘일’을 하고 싶어 찾아왔건만, 그리고 여기서 잘 배워 정규직이 되기를 희망했건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다시 연말이 되었다. 이번엔 청년인턴 90명 중 4명이 정규직이 됐다. 나머지는 각자 제 갈 길을 준비했다. 담당한 직원이 조용히 불렀다. “사회공헌 업무에 사회복지사가 있으면 좋겠다. 파견직으로 전환해 일해 보는 것은 어떠냐”는 얘기를 했다. ‘한 달 쉬었다 나오라’는 제안보다는 인간적이긴 했다. 그러나 파견직은 파견업체 소속으로 월급도 더 박했다. 청년인턴으로 일하면서 세금을 포함해 120만원 가량 받았는데, 파견직이 되면 파견업체에서 떼는 몫이 있어 급여가 100만원에도 못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2년 뒤엔 또다시 갈 곳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청년인턴 하지마! 다쳐! 조심해!

결국 두 번째 청년인턴직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공언한대로 청년인턴이 취업의 기회를 준 것은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이었으며, 되레 다른 구직 활동에 손해가 됐다. 어떤 곳에서도 1년 미만의 경력은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의 성공사례가 있다. 정부는 이들을 가리키며 청년인턴이 돼보라고 권유한다. 일단 채용인원을 늘려 취업률을 높이고자하는 심산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에게 청년인턴은 ‘잠깐 일자리’였으며, 되레 직업 선택의 폭을 좁게 하는 효과만 가져왔다.

청년인턴을 염두에 둔 청년에게, 또 청년인턴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정부에 말하고 싶다. ‘청년인턴 하지마! 다쳐! 조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