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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망각의 강 앞에 서서(이서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6-28 18:54
조회
363

이서하/ 회원칼럼니스트


 언젠가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만날 장소를 정하던 중, 상대로부터 파리바게뜨에서 만나자는 말을 들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 시그니처 지점이었다. 임종린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의 단식 투쟁이 한창 화제였던 시기라 SPC 산하 가게들은 불매 중이라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서로 차선책이 없었다. 초면의 상대를 만나는 자리에서 마땅한 대안 없이 고집을 부릴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결국 파리바게뜨에서의 만남을 수락했다. 나는 “그곳도 괜찮다”라고 답한 순간부터 만남이 파하는 순간까지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단식 투쟁이 한창 진행되는 현장과는 달리, 그날의 파리바게뜨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수많은 정보가 각종 매체를 통하여 송출되는 요즈음, 정보를 접하기 쉬워진 만큼 잊어버리는 속도 역시 빨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알려야 할 소식이 너무나도 많기에 한 번 지면에 오른 이야기는 어지간한 화제성을 가지지 않고서야 쉽게 묻힌다. 그렇게 우리로부터 먼 이야기를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잊어버린다.


 이러한 망각의 시대에서 시민운동의 숙명이라면 기억됨에 있지 않은가 싶다. 불매운동이 특히 그렇다.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어 기업의 반성을 촉구하는 운동인 만큼 소비자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이 유의미한 지표를 보이지 못했다면 조용해지기만을 기다려 온 사측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선을 돌리고, 노동자 앞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만이 덩그러니 남을 것이다.


 요즈음 또 하나의 불매운동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3월 28일부터 임종린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은 SPC의 노조 탄압 및 부당노동행위 중단, 2018년 1월 합의한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53일간의 단식 투쟁을 진행했다. SPC는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등의 산하 기업을 두고 있으며 국내 제빵업계에서는 선두로 꼽히는 그룹이다. SPC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승진 차별 및 노조 탈퇴 종용, 연차휴가 및 여성 노동자의 월경·출산·육아휴직을 보장하지 않은 등의 사유로 불매운동의 대열에 올랐다.


 SPC는 노조원에 대한 차별이 없었으며, 사회적 합의 내용의 충분한 이행을 통해 당사와 가맹점주가 제빵기사들에게 동종업계에서 최고 수준인 임금 및 복리후생을 제공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6월 16일 파리바게뜨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위원회는 2018년 1월 사회적 합의 주체들이 합의한 11개 항 중 실제로 이행된 것은 2가지, 일부 이행된 것으로 확인된 항목은 3가지라고 밝혔다.


 이처럼 노사 간의 갈등이 길어지자 임 지회장의 단식은 건강을 위하여 끝을 맺었으며 현재 시민과 노동자가 합심하여 릴레이 단식 및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처음 단식이 시작될 때 SNS에서는 이를 지지하기 위하여 SPC 산하 기업 목록을 정리해 불매 리스트를 만들거나 파리바게뜨를 대체할 동네 빵집을 소개하는 챌린지를 진행했다. 그러나 임 지회장의 단식이 끝난 지금, 언론 보도 및 관심을 기울이는 시민의 수는 한 폭 줄어들었다. 이는 특정한 원인이 있다기보다도 한번 언급한 정보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보도 순위에서 밀리게 되는 현상일 것이다.


 가끔 이렇게 한 시기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이 얼마나 기억되고 있을까를 생각한다. 누군가 여전히 기억하며 불매를 이어가는가 하면 희미한 기억을 붙잡기 위해 검색을 하는 이도, 아주 잊어버린 이도 존재할 것이다. 사실 망각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은 흘러가고 우리는 연일 보도되는 새로운 사건들에 귀를 기울이게 될 테니까.


 하지만 삶의 편린이 스쳐 지나간다는 주마등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런 것을 믿는다. 유수 같은 세상 밑에 조약돌처럼 가라앉아 있는 기억의 잔해를, 잠시 밀려나 있었을 뿐 수면 위로 떠 오를 듯 말 듯 어른거리는 기억의 끈질김을 믿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하는 우리의 인간됨 역시도 믿는다.


 그러니 모든 것을 매일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소란을 동반했던 어떤 이름들이 보인다면 퍼뜩 떠올릴 수는 있지 않을까. 오래 바라보고 검색창 위에 손가락을 올려 그 이름이 누군가의 삶을 잡아먹고 성장했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는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망각의 강 앞에 서서, 동료 시민의 고통에 기여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혹시 잊어버린 것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