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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상품이 되길 거부한다-경복고 에스파 성희롱 사건에 대하여 (조혜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5-31 10:48
조회
656

조혜원/ 회원칼럼니스트


 지난 5월 2일 걸그룹 에스파가 경복고 축제에 참석했다가 현장에 참석한 학생들의 도를 넘은 행동들로 인한 피해 사실이 전해졌다. 학생들은 무대에 난입해 과도한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등 위협적 행위를 이어갔다. 사건 이후에도 자신들의 SNS에 해당 사진과 함께 성희롱적 발언을 올리기까지 했다. 학교 측은 두 차례에 걸쳐 사과문을 내놓았지만, 그 어디에도 문제의 본질은 찾아볼 수 없는, 표면적인 사과일 뿐이었다. 이번 경복고 사건의 문제점은 가해 학생들 개개인의 일탈에 국한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는 해당 행사 자체에 문제가 있다. 에스파의 소속사는 SM 엔터테인먼트다. 이수만 총괄프로듀서가 실질적 오너인 회사다. 그리고 경복고는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의 모교다.

 동문에 SM 오너 등과 같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 가수 공연이 선물 혹은 특혜처럼 제공될 때, 그 공연을 관람하는 남학생들은 이를 특권으로 인식하게 되며 해당 가수들을 하나의 개인으로 보지 않게 된다. 즉 공연의 주체는 사라지고 그저 권력을 가진 동문이 하사해주는 하나의 상품으로 대상화되며, 이 과정에서 왜곡된 성 관념과 여성의 성적 대상화, 그리고 여성 혐오적 시각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현장이 공교육으로서 아이들에게 어떠한 교육적 효과를 가져다주며, 무슨 의미를 가진다는 말인가.

사진출처 - 세계일보


 이는 올해 초 ‘진명여고 위문편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여성들이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대상화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하는가. 반복되는 사건들에서 여성은 그저 남성에게 기쁨과 즐거움, 응원을 주는 보조적인 존재로서 추락해 버림과 동시에 전통적인 성 역할을 재생산하는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다.

 남성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여성들, 그리고 쉽게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남성 카르텔, 기분이 나쁜 남성과 실질적인 공포를 느끼는 여성. 경복고 사태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계속해서 반복하여 발생하는 문제들의 집약체이다. 이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직시하여야 한다.

 ‘명문’ 경복고가 동창회 주최의 기념식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7년 전 동문 체육대회 협찬 품목 현수막에 품목명으로 ‘레드벨벳’이라고 기재한 전적과 이번 사건이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그들만의 카르텔을 통해 경복고는 남성중심적, 가부장적인 가치관 확산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발뺌할 수 있을 것인가. 학연과 특권의식으로 얼룩진 남성 카르텔에서 피해를 보는 자는 오롯이 여성이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명문고등학교’라면, 그 명문은 틀렸다.

 경복고는 본교의 공고한 권력 카르텔로부터 발생한 가부장적인 가치관 생산과 왜곡된 성 인지 감수성 확산 사실에 대하여 제대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더 이상 가해자 개인의 일탈로 꼬리 자를 생각 말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묻어두고 회피할수록 우리 사회의 곪아터진 현실은 계속해서 이렇게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무엇이 올바른 교육의 방향성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