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우리시대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가짜 혼인신고서 작성기(전예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5-25 10:38
조회
692

전예원/ 회원칼럼니스트


 지난해 수강한 한 교양수업에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법학 관련 과목이었던 만큼 “살면서 한 번쯤 작성하게 될 법률문서를 제 손으로 작성해보라”는 것이 취지였건만, 종이를 앞에 두고 한참 들여다봤던 기억이 있다. 가상의 상대를 지정하여 작성해도 좋다기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본관이며 주소를 꾸며 적었다. 많은 것이 낯설었다. 결혼이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혼인신고서를 ‘살면서 한 번쯤 작성할 문서’로 일컫는 가정 자체에 의문이 들었던 탓이다.


 혼인율이 감소함에 따라 결혼도 ‘선택’이라는 인식이 커진 것도 사실이나, 여전히 결혼을 ‘의무’로 규정짓는 무의식을 경험한다. 혼인신고서의 작성이 별다른 이의 없이 과제가 되는 모습이 그러하다. 제도로서의 결혼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는 까닭은 결혼제도의 사회유지 기능에 있다. 법률혼은 가족과 가계를 일치시켜 관리를 쉽게 하고, 출산을 통해 사회구성원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해 결혼은 개인 간의 관계를 결정짓는 것을 넘어 국가 성원(국민)을 확충하기 위한 의미 또한 갖는 것이다.


출처-pixabay


 그러나 법률혼주의를 중심으로 국민을 ‘관리’하고 ‘재생산’하는 데에 초점한 이 제도는 어떤 지점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의 결혼과 가족제도는 많은 부분 부부와 그 자녀를 단위로 하는 정상가족을 상정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는 당사자들만이 가족으로 인정받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받는 것이다.


 이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이들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온전한 권리행사가 불가능하다. 가령 재생산의 의무를 다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퀴어 커플들은 법률상 부부를 이룰 수 없으며 가족 정책의 적용을 받기 어렵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국제결혼을 통해 가족법상의 부부를 이룰 수는 있으나, ‘자녀 없음’을 사유로 하여 국적 인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 사회에서의 개인의 지위가 가족과 자녀 유무에 종속되어 성립하는 것이다. 한 사회가 개인을 대우하는 방식이 ‘재생산 기능’을 요건으로 한 조건부 인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상가족을 기준삼은 결혼제도가 사회유지에 긍정적인 기능을 해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부터 정상기능을 해온 것들에도 오기능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결혼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늘어난 현실은 제도의 점검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결혼은 선택’이라는 인식과 무관하게 행해지는 ‘결혼제도’에 대한 고민은 변화하는 현실과 얼마만큼 조응하며 나아갈 수 있을까.


 가정의 달 5월을 통과하며, 새삼스레 가족의 의미를 질문하게 되는 요즘이다. 결혼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과, 결혼이 선택 아닌 의무가 되는 사람들에 대한 폭넓은 고려가 필요하다. 최근의 정부가 인구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밝혔다는 사실로부터 한 가지 기대를 건다. 양적증가에 지향을 두었던 저출산정책에, 인구감소에 적응하는 방식 역시 고려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환에 기존의 혼인·가족정책에 내재한 재생산의 요구에 대한 질문과 성찰이 동반되었으면 한다. 가족성원을 한단위의 국가성원으로 치환하지 않는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상호인정에 기반 한, 그야말로 애정으로 충만한 ‘가정의 달’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