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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三伏) 잘 보내기- 버티는 것도 인생이다 -(오항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8-03 17:04
조회
387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전주대 명예교수
오는 8월 7일은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이다. 난 입추가 더위를 가시게 해주리라 믿지 않는다. 입추 뒤의 절기는 처서(處暑), 백로(白露)이다. 처서는 더위를 한 곳에 치워놓는다는 의미 정도이고, 백로는 새벽 기온이 떨어져 흰 이슬이 맺힌다는 뜻이다. 입추보다 처서는 지나야 더위가 가신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예전에도 입추가 지나도 여름 무더위가 사람을 힘들게 했나 보다. 조선 중기 4대 문장가로 알려진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는 이 경험을 담고 있다. 입추 때 살짝 서늘한 기운이 돌자, 아, 이제 숙살(肅殺)의 기운이 돈다고 여겼나 보다. 숙살은 꽃피고 열매 맺은 뒤 사물이 새로운 생명을 피우기 전까지 사라지는 양상이다. 그래서 가을이 곧 숙살의 계절이 된다.
그런데 오히려 늙은 더위[老炎]가 사라지지 않고 끄떡없이 기승을 부리고, 작렬하는 태양[熾曝]이 지면을 다 태워버릴 기세였다. 이 어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의 시를 일부를 감상해 보겠다. 《계곡집》 제25권에 나온다.
연못에는 실 같은 물결조차 일지 않고 淪池息纖紋
높은 나뭇가지 간들거림도 멈췄구나 高樹停調刁
가벼운 모시옷도 갑옷 입은 듯하며 輕絺若衽革
높은 집에 있어도 가마 속에 갇힌 듯 崇館如藏窰
계곡이 겪은 여름날의 사투가 시 곳곳에 핍진하다. 무슨 날이 바람 한 점 없단다. 연못에 가는 비단실 같은 물결도 일지 않는 것이다. 쉽게 흔들이는 큰 나무의 가지 역시 간들거리지조차 않는다.
모시옷은 가볍다. 여름에 입는 옷감인데, 일일이 다려 입어야 해서 ‘모시옷은 모시고 다닌다’라는 말이 있다. 그 모시옷이 천근만근 갑옷처럼 느껴진다. 혁(革)은 갑옷과 투구이다. ‘높은 집’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겠지만, 누각 같은 데를 말하는 듯하다. 좀 선선할까 해서 누각에 올라도 기와 굽는 가마 속에 있는 듯하였다.
하물며 나의 처소 낮은 데다 비좁아 而我處湫隘
누추한 골목길에 근근이 사는 처지라 陋巷甘簞瓢
붉은 해 종일 짧은 처마네 지글지글 赤日烘短簷
온몸이 녹아나며 기름땀에 범벅일세 爍體融脂 膋
한데 내 집은 밀집된 골목에 있으니, 그나마 바람도 통하지 않고 지열은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 좁은 집이라 처마도 짧으니 햇볕을 차단하기에 역부족이다. 그러니 몸이 녹아나며 체지방이 녹아내리는지 기름땀 범벅이다. 원래 료(膋)는 발기름이라고 해서 동물 뱃가죽 안쪽에 낀 지방덩어리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몸의 어떤 부위를 특별히 지칭하는 게 아니다.
어찌 옛 질병 도질까 따질 틈 있으리 寧論舊疾動
숨이 턱턱 막히면서 소갈증 생겼는데 渴肺成中痟
영락없이 시루 속 물고기 처지 되어 有如鬵中魚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볶이기 기다리네 宛轉待爛焦
컨디션이 나빠졌지만, 지병 걱정할 때가 아니다. 폐가 마르다 보니 소갈증이 생긴다. 계속 갈증이 나면 소갈[痟]이라고 표현하였다. 흔히 소갈을 당뇨라고도 하지만, 실제 소갈의 범위가 더 넓은 듯하다.
심(鬵)은 떡 찌는 시루이다. 시루는 밑에 구멍이 뚫려 있어, 수증기를 받아낼 수 있다. 그래서 콩나물을 키울 때도 사용하였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가 시루떡을 할 때면 솥 위에 시루를 걸고 밀가루를 이겨 솥과 시루 사이의 빈틈을 막은 뒤,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찌던 기억이 있다. 난(爛)은 폭 익어 살점도 보이지 않게 된 상태를 말한다. 고기를 곤다고 할 때 그 느낌이다. 초(焦)는 콩 볶듯이 달달 볶는 것이다.
흐르는 땀 훔치고 창틀에 기대어도 揮汗倚牕欞
가쁘게 몰아쉬는 숨소리 헉헉거릴 뿐 急喘聲嘵嘵
밤 들어 더욱 극성인 이놈의 찜통더위 入夜轉欝蒸
남은 늦더위는 언제쯤 사라질런고 殘暑何曾消
돗자리 펴보지만 정말 그냥 해보는 짓 枕簟諒徒設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짧은 밤 지새우며 轉輾徹短宵
머리 들어 푸른 하늘에 하소연하며 擧頭呼蒼天
미리 북두칠성 자루를 돌려놓고 싶구나 徑欲斡斗杓
어쩌랴, 땀 닦고 혹여 바람이 들어올까 창문에 기대며 헉헉거릴 뿐이다. 그나마 돗자리가 위안이다. 대나무로 만들어 살갗에 닿으면 시원하다. 죽부인이 그래서 나왔는데, 나도 하나 가지고 있어 가끔 사용한다.

[사진 1: 전주 한옥마을에서 본 여름과 겨울, 북두칠성의 위치. ChatGPT가 생성해 주었다.]
빌 데는 하늘뿐이다. 마지막 구절의 북두칠성 자루를 돌려놓는다는 말은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북두칠성이 물 뜨는 바가지 모양이니까, 물을 담아 쏟아지게 했으면 좋겠다는 뜻도 있을 듯하다. 둘째,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면 북두칠성의 자루가 위치가 바뀌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다만, 계절에 따라 북두칠성이 낮아지기는 해도 자루가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 해석의 약점이 있다. 셋째, 돗자리 펴고 자려는데 열대야로 더워서 잠을 못 이루는 상황과 연결하여, 빨리 밤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구절로 볼 수 있다.

[사진 2: 전주 한옥마을에서 본 여름 저녁과 새벽까지 북두칠성의 위치. 역시 ChatGPT가 생성해 주었다.]
계곡의 시를 읽고 더 더워졌다고 느끼신다면 송구하다. 당초 의도는 계곡의 고통을 보면서 위로받자는 고약한 심보였다. 더위를 더위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삼복에는 삼계탕, 추어탕 등 주로 펄펄 끓인 탕(湯)류를 먹는다. 덥다고 자꾸 찬 걸 먹어서 속이 차가워지면 탈이 나니까 탕을 먹고 보(補)하라는 것이다.
더우면 화(火)가 날 때처럼 마음이 촉급해지고 쉽게 짜증을 낸다. 그러니 운동해서 땀을 내고 하면서 마음을 챙기자. 처서가 올 때까지 가능한 술은 자제하자. 계곡이 시를 쓰며 견뎠듯이 우리도 시를 써보든지 하면서.
추신
1) 산책을 다녀왔다. 저녁 8시 아파트 단지는 뜨듯하다. 100여 미터 동산 옆 작은 숲길, 천변으로 들어서니 달라졌다. ‘도저히 못 자겠다’에서, ‘이 정도면 잠은 자겠다’로. 우리는 이 문명을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 그늘 한 점 아쉬운 한여름에 가로수 가지 치는 짓부터 멈추고, 제발 삼복에는 학술회의 같은 거 하지 말자.
2) 요즘 인권연대는 수도권과 호남권 교도소에서 평화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이번 주는 수원구치소에서 열린다. 교도소에도 에어컨을 설치하자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회원도 계실 것이다. 다만 묻고 싶다. 교도소의 더위로 인한 고통이 이 사회의 평온과 공존에 도움이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