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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민주주의는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했나? (1)(권혁용)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7-20 11:08
조회
547

권혁용/ 인권연대 운영위


 

한국의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누군가는 벤틀리를 몰고 타워팰리스에 살며 어린 자녀를 미국에서 유학시킨다. 반면 누군가는 중고 포터 트럭으로 자녀와 함께 택배를 배송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또 다른 누군가는 가족과의 연락이 끊긴 채 폐지를 주우며 쪽방에서 홀로 노년을 버틴다. 같은 대학 안에서도 현실은 다르다. 누군가는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 없이 학업에 전념한다. 반면 누군가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두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채 졸업한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노조가 있는 대기업의 정규직으로 일하고, 누군가는 노조 없는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두 사람의 임금과 삶의 질, 그리고 미래를 설계할 기회는 크게 다르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구별한다. 20세기 근대화는 귀속적 지위에서 성취적 지위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우리는 다시 귀속적 지위가 삶의 기회를 좌우하는 사회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목격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와 조부모의 자산과 교육 수준이 만들어내는 격차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현실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정치가 만든 결과다. 정책은 집단적 의사결정의 산물이며, 집단적 의사결정이 곧 정치이다. 유권자의 선호는 선거와 조직화한 이익집단을 통해 표출되고, 정치제도는 그 선호를 의석으로 바꾸어 승자를 결정한다. 그리고 승자는 조세와 복지,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소득과 부의 분배를 바꾼다. 결국 불평등은 정치의 산물이다.

반대로 불평등은 다시 정치를 바꾼다. 불평등이 심화할수록 정치는 점점 더 부유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민주주의 정부는 시장이 만들어낸 불평등을 조세와 재정, 사회정책을 통해 완화해야 한다. 말하자면 현대 민주국가는 ‘로빈후드’의 역할을 해야 한다. 1원 1표의 자본주의와 1인 1표의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었던 원리이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임금, 소득, 자산 어느 지표를 보더라도 불평등은 꾸준히 확대해 왔다. 반면 정부의 재분배 노력은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문다. 왜 그럴까. 한국 민주주의는 왜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했을까.

 


사진 출처


 

이 질문에 답하려면 시민과 유권자의 선호라는 수요 측면과 정당·정부의 정책 결정이라는 공급 측면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물론 두 측면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치인들은 나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시민의 냉소, 체념 또는 분노와 “유권자가 원하지 않으니 증세와 복지 확대를 추진할 이유가 없다”라는 정치인의 계산은 서로를 강화한다. 정치학자 존 잘러John Zaller는 공공 여론이 정치 엘리트가 위로부터 보내는 당파적 신호(partisan cues)에 의해 상당 부분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위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민주적 정치인이 민주적 규범을 공격하면, 그 신호를 받아들인 시민들 역시 반민주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은 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여전히 학문적 논쟁의 대상이다.

 

먼저 수요 측면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매일 불평등과 격차를 경험한다. 그런데도 왜 증세를 통해 재분배를 확대하는 정책을 적극 지지하지 않을까. 왜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 가운데 상당수가 보수정당을 지지할까.

첫째는 투표 참여의 소득 편향이다.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보다 덜 투표한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청년은 장년층보다 투표율이 낮다. 재분배 정책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계층이 정치에 가장 적게 참여하는 것이다. 반대로 재분배로 가장 큰 부담을 질 가능성이 있는 고소득층은 적극적으로 투표한다. 저소득층은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정치권이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정치효능감도 낮다. 그러니 투표장에 갈 동기를 잃는다. 그러나 표출되지 않은 민심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인은 많지 않다. 정치인의 눈에 보이는 것은 결국 투표하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 저소득층은 더 대표되지 못하고, 정치적 소외는 다시 낮은 투표율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둘째는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증세와 재분배가 자신에게 이익인지 손해인지를 판단하려면 자신의 가구가 소득분포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자신의 경제적 위치를 실제와 다르게 인식한다. 하위 소득계층은 자신의 위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반면, 상위 소득계층은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저소득층임에도 재분배 정책에 반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보의 문제다. 정체성의 문제도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다른 사회적 정체성이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계급보다 국민, 지역, 성별, 세대, 이념과 같은 정체성이 정치적 선택을 좌우하기도 한다. 저소득 노동자라는 정체성보다 대한민국 국민이나 산업화 세대라는 정체성이 더 강하게 작동하면, 정책 선호 역시 그에 맞추어 형성된다.

 

사람들은 불평등의 원인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재분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불평등이 부모의 자산과 교육, 성별이나 외모처럼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운(luck)’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재분배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불평등을 개인의 노력과 능력의 결과라고 믿는다면 현재의 격차를 공정한 결과로 받아들이기 쉽다. 일반적으로 유럽인은 전자의 인식이 강하고, 미국인은 후자의 인식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차이는 재분배 선호와 복지국가의 규모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그러나 시민들의 선호만으로 정책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부는 재분배를 확대하고, 어떤 정부는 그렇지 않다. 왜 한국의 정치권은 불평등 완화 정책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했을까. 다음 글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공급 측면에서 살펴본다.

 

권혁용 위원은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