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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전환 시대의 정치(권혁용)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5-18 15:44
조회
255

권혁용/ 인권연대 운영위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는 한 연구에서 기술발전이 사회와 사회구성원 모두의 번영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일부 구성원의 번영으로 귀결될지는 정치적 선택에 달려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로봇, 자동화, 인공지능(AI) 등으로 대표되는 기술발전은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추동하는 핵심 기술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기술전환 시대에는 노동시장에서 고학력·고숙련 노동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저학력·저숙련 노동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 결과 임금과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경제적 양극화도 심화한다. 여기에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각자가 보유한 기술이 대체 가능한 노동인지, 아니면 기술과 보완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노동인지에 따라 실업 위험을 다르게 만든다. 이처럼 기술전환 시대에는 소득 수준과 실업 위험이 기술 특성과 직업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기술전환 시대의 경제는 크게 지식경제 부문과 낙후된 제조업 부문으로 구분된다. 지식경제 부문에는 창의적이고 기술집약적인 제조업과 서비스업, 금융서비스, 다양한 전문직 등이 포함된다. 반면 낙후된 제조업 부문에는 부가가치가 낮은 제조업 및 서비스업이 속한다. 한국의 경우 전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그리고 판교와 테헤란로에 집결한 기술 선도 스타트업들로 대표된다면, 후자는 전국 산업단지에 분포한 중소기업들로 대표된다. 서산·창원·울산·구미 등 산업단지가 쇠락하고 주변 상권이 무너진 현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최근 통계 자료들 역시 우리 사회의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기술전환 시대에 낙후된 부문에 종사하거나 일자리를 잃고 소득 감소를 경험한 사람들이 정치에 대한 누적된 불만을 극우 세력 지지나 반민주주의적 태도로 표출한다는 점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이미 관찰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기술전환 시대가 초래하는 경제적·정치적 문제들에 정치와 정책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애쓰모글루가 말했듯이, 기술발전의 열매가 사회구성원 전체의 번영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지는 결국 정치적 선택에 달려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메시지가 논란이 되었다. 반도체 호황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둔 대기업들의 “초과이윤”을 국민배당금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내용이었다고 한다(나는 게시글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는 점을 밝힌다). 다음 날 청와대는 즉각 “논의된 바 없는 사안”이라며, “초과이윤”이 아니라 관련 대기업들의 법인세 “초과세수”를 의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지는 정치권의 반응을 보면서 기술전환 시대 한국 정치의 현재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정치권의 후진적인 즉자성(卽者性)이다. 즉자성의 반대는 숙고와 성찰을 거친 대자성(對者性)이다. 먼저 국민의힘의 즉각적인 논평 대응을 보자. 김용범 실장의 메시지가 “공산당”이나 “사회주의”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결국 시대착오적인 레드 콤플렉스를 동원해 보수 우파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국민의힘은 기술전환 시대가 초래하는 소득 및 자산 불평등, 그리고 실업 위험의 불균등성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의 눈에는 대기업과 대주주들, 그리고 강성 지지층만 보이는 듯하다. 그런데 정작 그 대기업과 상당수 주주조차 국민의힘의 낡은 레드 콤플렉스 동원이 후진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책임 있는 야당이라는 자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반응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용범 실장의 즉자성도 문제다. 청와대 정책 컨트롤타워의 책임자라면 자신의 말 한마디, 글 한 줄이 시장과 사회에 던질 파장을 적어도 한번은 숙고했어야 했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발언 하나하나에 극도로 신중한 이유는, 그 말이 시장 전체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때로는 시장의 기대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발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용범 실장이 그러한 전략적 의도를 가지고 소셜미디어에 “초과이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진 출처


 

둘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호황을 누린 대기업들의 법인세 증가로 발생한 초과세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현재 법률과 시행령은 세수 집행의 우선순위와 배분 비율을 규정하고 있다. 우선순위는 지방재정교부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그런데 지방재정교부금은 과연 지방정부별 재정자립도 등 객관적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배분되고 있는가. 매년 연말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다음 해 예산을 최종적으로 양당 원내대표와 수석부대표 몇몇이 비공개로 조정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쪽지예산”이 반영되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교육재정교부금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학령인구가 급감한 상황에서도 오래전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내국세와 교육세의 약 20%를 자동 배정하는 현행 제도가 과연 타당한지 논의해야 한다. 학생 1인당 교육재정교부금이 증가하는 이유는 교육재정이 획기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학생 수 감소의 결과이다.

셋째, 우선순위에 따른 재정 집행 이후 남는 초과세수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국민배당금은 아마도 고소득층 일부를 제외한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현금이나 지역화폐 형태로 일괄 지급하자는 아이디어일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많은 국민, 정확히 말하면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는 데 일정한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정책 효과 역시 눈에 잘 보인다. 그러나 정책결정자가 장기적 시각에서 기술전환 시대에 대한 정치적 대응을 고민한다면, 일회성 소액 배당보다는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와 실업급여 확대 같은 사회보험 강화, 그리고 교육 및 직업훈련 확대를 우선시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이재명 정부에서 복지정책은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그러나 복지정책은 대체로 입법 사안이며, 집권당이 의회 다수당인 상황에서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추진 가능한 영역이다. 기술전환 시대에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기술발전의 열매를 어떻게 사회 전체의 장기적 번영으로 연결할 것인지 고민하는 장기적 시각의 정치가 필요하다.

 

권혁용 위원은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