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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자 선생을 응원하며(이재승)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5-04 12:11
조회
179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10·29이태원참사진상규명법은 ‘기억, 추모, 애도를 받거나 할 권리’를 피해자의 권리로 명문화하였다(제3조 4호). 애도를 받을 권리나 애도할 권리의 상대방은 어떤 의무를 지는가! 에우리피데스의 <간청하는 여인들>은 이 권리의 진지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테베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아르고스의 일곱 장수들의 시신을 테베가 방치하자 전몰자의 어머니들은 아테네의 테세우스에게 유해 송환에 앞장서줄 것을 간청하였다. 요즈음의 말로 외교적 개입을 요청한 것이다. 아테네와 테베 간의 평화 교섭이 결렬되자, 테세우스는 애도권의 침해(유해 방치)를 이유로 전쟁을 일으켜 시신을 탈환하였다. 그는 국가란 모름지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시전하면서 아테네의 엘레우시스에서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현대판 아르헨티나의 ‘5월광장 어머니들’과 이행기 정의의 실현을 보는 것 같다.

충남 천안시 망향의 동산에 세운 이희자 선생의 부친의비석은 백비로 있다.
사진은 2007년 4월의 모습이다. -사진 필자 제공
야스쿠니신사의 조선인합사 문제는 유족들이 2025년 12월 한국에서 합사 취소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시 점화되었다. 이 소송의 원고는 이희자 선생이다. 이희자 선생이 두 살 때인 1944년, 부친 이사현은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되어 종내 소식이 없었다. 1989년에 이르러서야 부친이 1945년 6월 중국 광서성 병원에서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었고, 유족의 동의 없이 부친이 1959년 야스쿠니신사에 무단합사되었다는 더욱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현재 야스쿠니신사에는 2만 1천여 명의 조선인 군인·군속(군무원) 희생자들이 합사되었다. 야스쿠니가 국립묘지와 같은 묘역이 아니라 사당과 유사한 것이므로 합사는 유해가 아닌 영혼을 봉안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희자 선생을 비롯하여 한국인 유족들은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몇 차례 합사 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일관되게 청구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야스쿠니신사는 종교법인으로서 누구를 신으로 모실지는 신사의 종교 활동에 속하는 사항이므로 국가가 이에 개입하는 것은 신사의 신앙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둘째, 자신의 친족이 타인의 종교 시설에서 모셔지는 것에 대해 느끼는 불쾌감이나 정신적 고통은 곧바로 법적 보호 대상인 권리침해로 간주하지 않는다. 셋째, 개인의 감정보다 종교법인의 자유가 우선한다. 넷째, 합사가 1957년에 이루어졌고 이미 이 문제를 다툴 수 있는 20년의 제척기간이 도과하였다.
야스쿠니신사는 태평양전쟁 후 미국 점령군의 정책에 의해 독립적인 법인이 되었지만, 전사자 영혼의 체계적 관리(일본인 전사자 240만 명 합사)는 여전히 국가의 고유한 업무임은 부정할 수 없다. 전쟁 업무 자체를 민간회사가 수행했다고 해서 전쟁 수행에 대한 국가책임이 소멸하지 않듯이, 애도 작업의 민영화로 인해 합사의 국가행위성이 제거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군인·군속 전사자를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금 지급을 거부하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사망 시 제국의 신민이었다는 이유로 조선인의 영혼을 야스쿠니신사에 무단합사(無斷合祀)하였다.
또한 신사 측은 합사가 일본의 고유한 전통이라고 주장하는데, 실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민중을 동원하기 위해 급조된 서푼짜리 군국주의 전통에 불과하다. 본디 일본의 장례 전통은 원한을 품고 죽은 적이 해코지하지 않도록 후하게 제사를 지내고, 이를 통해 평온과 번영을 기원하는 어령신앙(御靈信仰)과 죽은 자는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원친평등(怨親平等)을 바탕으로 한 보편적 애도를 지향하였다. 대체로 이러한 방식이 인류의 오랜 문화적 관례였다. 그러나 1869년 메이지 천황의 요청으로 설립된 초혼사(야스쿠니신사의 전신)는 자기편에 속하는 군인의 죽음을 위령하고 선양하는 군국주의적 시설로 변질되었다. 여기다 식민지 출신 이방인의 혼령까지 붙들어 합사하는 방식은 사후세계로까지 확장된 제국주의의 구습이라고 달리 표현할 방도도 없다. 그러한 관행이 천년을 지속한다고 한들 기이한 악습일 뿐이다.
그러한 무단합사는 국제인도법과 인권법에도 반하고, 문명국들의 일반적인 애도권의 법리나 관행과도 동떨어져 있다. 유가족의 애도권은 제네바 제1협약 제17조, 제네바 제4협약 제130조, 제1추가의정서 제32-34조 등 국제인도법에서 등장하고, 자유권규약 제7조(잔인하고 굴욕적이고 비인도적 처우의 금지), 제12조(출국권), 제17조(사생활·가정생활의 자유), 제18조(종교의 자유), 제27조(종족적, 종교적 또는 언어적 소수민족의 문화 및 종교의 향유권)에 그 근거를 가진다. 한마디로 국제인도법 및 국제인권법은 애도의 영역에서 국가와 가족의 견해가 충돌할 때 가족의 애도권을 우선시한다. 한국의 국립묘지법도 국립묘지 안장 여부에 대해 가족에게 결정권을 부여한다. 이러한 애도권은 한국 헌법의 여러 조항과 관습법상 제사권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또한 식민지인의 유해를 탈식민주의적 맥락에서 출신지로 봉환하는 관행이 발전했다. 국제인도법과 국제관행에 따른다면 전몰자의 유해와 혼백은 국가적 자산이나 전리품이 아니라 유족에게 귀속되어야 할 인격적 가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신사의 기이한 합사 관행을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상화하는 갈라파고스 판결을 반복하였다.
한국에서도 소송의 쟁점은 유족들에게 합사 취소를 청구할 권리가 있는지이다. 애도권을 권리로 인정한다면 이 권리의 주체가 누구이며, 이 권리의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확정해야 한다. 전몰자에 대해서라면 다양한 주체들(가족, 친지, 공동체, 국가, 일반 시민, 사원)이 다양한 방식으로 애도작업(장례식, 안장, 제사, 추도, 보훈, 제사)을 수행한다. 다양한 주체들이 애도권을 갖지만 이러한 애도권들이 동등한 비중을 갖는다고는 볼 수 없다. 다양한 층위와 관계를 내포하는 애도작업에서는 권리의 짙음과 옅음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애도 주체들의 권리와 자유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애도 작업에서 짙은 권리(제사권)는 유가족의 몫이고, 일반적으로 옅은 권리(애도감정의 다양한 표현)는 국가 또는 단체, 일반 시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즉 유가족은 특별한 청구권이자 짙은 권리로서 애도권을 가지며, 그 밖의 애도 주체들은 일반적 자유로서 얕은 권리로서 애도권을 가질 뿐이다.
일본 법원은 야스쿠니신사가 종교법인이라는 이유로 무단합사를 실행할 짙은 권리를 인정하였고, 가족의 애도권을 얕은 권리로 희석하였다. 그러나 가족의 특별한 권리로서 애도권은 다른 어떤 권리보다 우선한다는 게 국제법의 원칙이고, 문명국의 관행이다. 야스쿠니신사의 합사 방식은 일반적 종교의 자유나 애도의 일반적 자유의 범위를 이탈한다. 야스쿠니합사는 망자에게 잠시 들르는 채플이 아니라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봉쇄수도원이나 감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된 합사는 일반적인 애도의 범위를 이탈한 것으로서 망자의 인격권과 가족의 애도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 합사는 일본의 기독교도나 불교도나 무신론자에게도 참담한 것이지만, 최소한 이방인의 영혼에 대해서는 얼토당토않은 괴이한 조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탈식민주의적 해체만이 답이다.
국제인도법은 애도의 문제에서 종교적 관행을 존중하고 종교적 자유의 보장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 경우 국가나 신사와 같은 단체의 종교적 관행이 아니라 망자와 유가족의 종교적 관행이 결정적이다. 일본 법원은 은근슬쩍 신사의 반인권적 행태를 종교의 자유로 합리화하였다. 야스쿠니신사는 합사에 동의하는 유족에 대해서만 애도 업무를 대행하는 시설일 뿐, 제멋대로 망자의 영혼을 채집하여 영구적으로 봉인할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애도의 영역에서는 오로지 망자와 그 가족의 특별한 권리로서 종교의 관행만이 특별히 보호받을 뿐이다. 시설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편의적 논리로는 가족의 특별한 지위로서 애도권을 압도할 수는 없다.
신사 측은 ‘한번 합사하여 영혼(미타마)이 하나가 된 이상, 특정 개인만을 꺼내는 것은 교리상 불가능하다’라는 독특하고 기이한 영혼야금술(metallurgy of souls)을 방패로 내세웠다. 이는 인류가 공통으로 도달한 문화 관행과는 동떨어진 신기술이라고 불릴만하다. 동의하지 않은 영혼까지 무단으로 합사하는 관행은 상징의 세계에서 귀향하는 영혼들을 중간에서 납치하는 악령술이다. 야스쿠니신사는 자신의 종교적 관행을 내세워 가장 중시해야 할 개인의 종교와 관례를 침해하였다. 합사는 고작해야 그러한 합사에 동의하는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만 파생적으로 의미를 지닐 뿐이다.
야스쿠니신사가 유족의 의사에 반해 망자의 혼백을 유폐하는 것은 유족의 애도권과 명예권에 대한 침해이고, 합사에 대한 일본 정부와 법원의 방치는 자유권규약이 금지하는바, 유족에 대한 잔인하고 굴욕적이며 비인도적 처우에 해당한다. 한국 정부는 잔인하고 굴욕적이고 비인도적인 처우 금지(제7조), 사생활 및 가정생활의 보호(제17조), 종교의 자유(제18조), 종족적 종교적 언어적 소수민족의 문화 및 종교 향유권(제27조)을 근거로 일본 정부에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사자의 인간존엄에 대한 유린(국제형사재판소규정 제8조)1)도 전쟁범죄가 될 수 있다. 차제에 일본인이 재판소장으로 있는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형사재판소에 전쟁범죄로 다투어 보아야 한다. 한국은 2만 8천명의 전사자가 합사된 대만과 연대하여 합사를 폐지하고, 야스쿠니신사를 해체하게 함으로써 일본을 애도에 있어서만큼 문명국의 반열에 진입하도록 조력해야 한다.
현재까지 조선인 합사자에 대하여 한국 정부는 어떠한 공식적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 합사 취소를 위해 외교적 노력도 경주하지 않았다. 이는 국민보호의무의 방기이다. 따라서 이번 합사 취소소송에서 한국의 사법부는 우선 유족들의 애도권 침해를 확인해야 하고, 우리 정부도 이를 기점으로 국민보호의무를 다하기 위해 외교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 국가적 수준의 애도권의 서열에서도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보다 선순위에 있으므로 유족이 존재하지 않는 합사자들을 위해서도 영혼의 귀향편을 확보해주어야 할 것이다.
1)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제8조(전쟁범죄) 제2항 나 (21) 및 다(2)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유린행위, 특히 모욕적이고 품위를 손상하는 대우’에서 말하는 인간은 사자를 포함한다. 국제형사재판소 실무편람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죄목에서 ‘인간’은 사망한 사람도 포함할 수 있다. 피해자가 모욕이나 굴욕 또는 기타 침해의 존재를 직접 인지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요소는 피해자의 문화적 배경과 관련된 측면을 고려한다.”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Elements of Crimes, 2013, 주 49, 57 참조. The Prosecutor v. Al Hassan Ag Abdoul Aziz Ag Mohamed Ag Mahmoud ICC-01/12-01/18, Trial Judgement(Juni 26. 2024).
참고문헌
일본의 전쟁 책임 자료센터, 박환무 옮김, 『야스쿠니신사의 정치』, 동북아역사재단, 2011.
동북아역사재단 편, 『야스쿠니에 묻는다 - 야스쿠니신사 무단합사 철폐소송』, 동북아역사재단, 2014.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