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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에 대해 영구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서보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4-21 11:54
조회
199

서보학/ 인권연대 운영위원


1.이근안의 죽음과 청산되지 않은 과거


최근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 전 경감이 단죄받지 못한 수많은 만행을 뒤로한 채 사망했다. 그는 고(故) 김근태 의원 등 민주화 운동가들을 잔혹하게 고문하며 국가폭력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었다. 2000년대 들어 이근안은 징역 7년을 복역하며 부분적으로 죗값을 치르긴 했으나, 그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과 피해자들에게 남긴 깊은 상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가벼운 처벌이었다. 살아생전 이근안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악행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거나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얼룩진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에도 그는 “고문은 예술이었다”, “나는 애국자였다” 등의 망언을 쏟아내었고, 그 결과 2012년 소속 교단에서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이제 이근안이 사망함으로써 그가 저질렀던 악행에 대해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를 받을 기회는 영원히 사라졌다. 그런데 과거 군부독재 시절 야만적인 고문으로 수많은 민주 인사의 삶을 파괴했던 권력의 주구가 과연 이근안 혼자뿐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가해자 대부분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국가로부터 연금 혜택을 받으며 평안하게 살고 있을 것이며, 죽어서는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영예를 누리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근안 같은 악인들이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단죄를 피하고 천수를 누리는 현실은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부조리다. 국가폭력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국가의 묵인과 지원 아래 발생하기에, 일반 범죄와 동일한 잣대로 공소시효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2.검찰의 사건조작 범죄에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국가폭력은 비단 물리적 고문에만 그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국가폭력은 얼굴을 바꿔가며 계속 자행되고 있다. 현재 국회 '검찰 조작 기소 국정조사'에서 명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검사들의 사건조작은 합법성의 외피를 두른 국가폭력이다. 국정조사에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인 검사들의 불법적인 사건조작 행태가 연일 폭로되고 있다.

쌍방울 김성태 회장의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박상용 검사는 이 사건을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위한 '방북 비용 대납 사건'으로 조작하기 위해, 측근인 이화영 부지사를 형량 거래로 회유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녹취록에서 박상용은 이화영에게 "이재명에게 불리한 진술을 해주면 종범으로 처리해 조만간 보석으로 석방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기본 형량 10년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며 명백한 협박을 가했다. 또한 박상용은 김성태 회장 등 관련 공범들을 수원지검 검사실로 불러 모아 이재명 지사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진술을 맞추게 하고, 그 보상으로 '연어회와 술 파티'를 열어준 사실도 교도관 등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이는 명백한 모해위증 교사이자 검사 주도의 사건조작이다. 박상용 검사는 이러한 수사가 윗선에 보고된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공익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검사들이 집단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모해위증을 교사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겨레TV 갈무리


 

대장동 사건 수사는 어떠했는가? 정일권 부장검사는 핵심 공범 중 한 명인 남욱 변호사를 서울중앙지검 지하 구치감에 불법 감금해 놓고, 이재명에게 배임죄를 뒤집어씌울 진술(최측근에게 뇌물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하도록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협조하지 않으면 "배를 갈라 장기를 다 드러낼 수 있다"라는 식의 협박성 발언을 하고,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며 "얼른 아이들 얼굴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회유하기도 했다. 사건조작에 필요한 허위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피의자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파고든 파렴치한 수사다. 검사들은 이런 방식으로 허위 증거를 만들고 사건을 조작하여 결국 야당 대표를 8건의 부패 범죄로 기소했다. 유력한 정치 지도자에게 부패하고 파렴치한 범죄자 이미지를 덧씌운, 권력의 주구인 검찰의 명백한 정치 개입이었다.

당시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했던 검찰에게 사건조작과 허위 기소는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었다. 정치검사들이 사건을 조작하고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 법정에 세운 것은 사법 정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중대한 범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검사들의 사건조작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만큼, 국회는 반드시 특검을 도입하여 수사 검사들의 범죄를 밝혀내고 엄중한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또는 차기 공소청장)을 지휘하여 현재 1심 계류 중인 사건들에 대해 공소 취소를 명해야 한다. 조작과 허위 증거에 기초한 기소 사건을 법원이 계속 심판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3.국가폭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는 시대적 과제

검사들의 사건조작은 최근 도입된 ‘법왜곡죄’(형법 제123조의2)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다만 법왜곡죄의 공소시효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통상 권력기관의 법 왜곡 행위는 정권이 교체되거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진실이 드러나곤 한다. 따라서 법왜곡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할 필요가 있다. 사건을 조작하고 법을 왜곡 적용해 무고한 시민을 옥살이시킨 판사·검사·수사관들에게 단지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는 것은 사법 정의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나 이번 국정조사에서 드러난 각종 사건조작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공무원이 권한을 국가폭력의 도구로 사용할 때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원칙이 확립되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가 상처를 치유한다'라는 시효의 논리는 국가가 조직적으로 자행한 폭력 앞에서는 가해자에게 부여되는 부당한 특권일 뿐이다.

또한 법 왜곡은 수많은 국가폭력 범죄의 일부분일 뿐이다. 불법 체포·감금, 고문, 협박을 통한 자백 강요, 증거 위조, 과도한 집회 진압, 불법 사찰 등 시민의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국가폭력범죄는 국가권력의 용인하에 저질러지며 조직적으로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실효적으로 예방하고 처벌하기 위해서는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입법 조치가 필수적이다. 이미 1968년 UN 협약 등 국제법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시효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폭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를 강력히 시사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다"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인권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중대한 선언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또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준비해 왔다. 2026년 4월 정청래 대표가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하며 당론 추진을 공식화했다.

법안의 핵심은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한 형사상 공소시효를 없애고, 피해자 및 유족의 손해배상청구권에도 소멸시효 특례를 두는 것이다. 또한 이미 각하·기각 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권리 구제 범위를 넓혔다. 국가폭력에 대한 입법적 제동은 국회의 시급한 의무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은 세월이 흘러도 절대 씻기지 않는 범죄임을 명확히 하고, 가해자들이 끝까지 법적·도덕적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인권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의 시대적 과제다. 조속한 시일 내에 국가폭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및 민사시효 배제 입법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서보학 위원은 현재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