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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민주주의: 무기여 잘 있거라(권혁용)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3-16 17:27
조회
276

권혁용/ 인권연대 운영위원


 

레비츠키, 웨이, 그리고 지블랫, 세 명의 정치학자가 최근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미국 권위주의의 대가”는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미국이 “경쟁적 권위주의” 체제에 들어섰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선거를 통한 경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한 축인 입법부·행정부·사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졌다는 점에서 트럼프 2기 정부하의 미국은 더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논문은 트럼프 정부가 정책 집행에 협조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행정부 기술관료들을 색출해 해임하고, 사소한 법률 위반을 빌미로 검찰 기소를 진행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나아가 뉴욕주 검찰총장 레디티아 제임스Letitia James(미국의 검찰총장은 선출직이다), 캘리포니아 민주당 상원의원 아담 쉬프Adam Schiff, 투자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트럼프 1기 정부 출신이지만 반트럼프로 돌아선 제임스 코미James Comey와 존 볼턴John Bolton 등에 대한 법무부와 연방검찰의 수사 및 기소도 서술한다. 저자들이 날카롭게 표현하듯이, 법률·규칙·규제가 정치적 반대파를 표적으로 선택적으로 집행될 때 법은 무기가 된다.

 

트럼프가 수사와 기소를 지시한 인물들의 법률 위반 혐의는 중대한 범죄라고 보기 어렵다. 은행 주택담보대출 상환 연체, 대출 신청서 작성상의 실수, 세금 신고서 기재 오류 등이다. 중요한 것은 유죄 평결이나 징역형 선고가 아니다. 혐의를 받는 인물들은 법적 대리인을 고용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수년 동안 막대한 비용과 시간,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명예와 평판도 훼손된다. 민주주의 퇴행을 경험한 나라들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일종의 필드 매뉴얼(FM)처럼 활용해 온 기술이다. 반대로 미국 민주주의에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였던 2023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습격과 폭력행위 참여자들은 대부분 트럼프에 의해 사면되었다. 트럼프의 칼은 시민사회에서 반트럼프 목소리를 높였던 시민단체와 언론, 그리고 대학에도 향했다. 트럼프는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과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를 고발했고, ABC, CBS, PBS, NPR 등 방송사들도 연방미디어위원회의 조사받고 있다. 미국 의회가 의결해 확정한 대학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하고, 대부분 대학의 정부 보조 연구비가 크게 줄어들었다. 미네소타주에서 민간인 두 명을 살해한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적절히 통제되지 않는 준군사기구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긍정적인 장면은 트럼프의 관세 드라이브에 대해 보수 6명, 진보 3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조세(관세 포함)에 관한 권한은 의회에 있다는 수정헌법 조항을 어겼다는 판단이었다.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홈페이지 갈무리



레비츠키 등의 “미국 권위주의의 대가” 논문과 미국 연방대법원의 위헌 선고를 접하면서 한국의 검찰과 조희대 대법원이 오버랩되었다. 첫째, 검찰은 법률을 선택적으로 사용한 적이 있는가? 상식적인 우리의 답은 당연한 “예스”다. 그것도 매우 많이, 매우 빈번하게, 그리고 매우 선택적으로. 정권 권력자의 정적을 표적으로, 하거나 권력자의 우호 세력의 범죄 혐의를 덮어주기 위한 법률 사용 여부를 떠올려 보자. 여기에서 구체적인 사례들을 열거하지 않겠다.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그것이 매우 뚜렷하고 노골적이었다는 사실을. 1948년 제헌헌법을 보면, 일제강점기 일본이 사용했던 용어 ‘재판소’는 ‘법원’으로 바뀌었지만 ‘검찰(청)’이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에도, 그 이후에도 줄곧 사용해 왔다. 행정부 외청으로서의 검찰청이 정확한 지위임에도, 엠블렘은 다른 행정부 외청과 달리 칼이 수직으로 배열된 상징을 사용한다. 이 엠블렘부터 바꾸자. 다른 행정부 외청과 같은 것으로. 검찰개혁이 법적·제도적으로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검찰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법률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제어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국 검찰이 법률을 선택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동기부여나 소명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1948년 이후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면, 제도개혁 없이는, 앞으로 발견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

 

둘째, 조희대 대법원은 정적을 제거하거나 권력자와 그 세력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 해석과 선고를 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에 대한 답이 명백한 “예스”라는 점을. 2025년 6월 대통령 궐위선거 직전 대법원이 내린 이재명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결정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고, 판사 지귀연이 유례없고 전무후무한 ‘시간 계산’ 기준을 적용해 윤석열을 석방한 판결도 또 다른 사례다. 물론 이 밖에도 많은 사례가 있을 것이다. 판사 지귀연의 경우를 법기술자의 ‘법꾸라지’ 행태로 이해할 수 있다면, 조희대 대법원의 민주주의 선거 개입은 법을 무기화하여 민주주의를 침식한 적극적 행위이다. 법이 무기화될 때 민주주의는 위험해진다. 조희대 대법원이 파기환송 선고를 내렸을 때 한국 민주주의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 2024년 12월 윤석열의 계엄 및 내란의 겨울을 지나,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거쳐 대통령 궐위선거로 민주주의 회복의 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대법원이 개입한 것이다. 법을 무기화하는 자는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자다.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자를 우리 공동체가 용인해서는 안 된다. 조희대는 탄핵되어야 한다. 아니면 그 전에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

 

검찰개혁과 사법부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국회와 정부는 법률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법이, 그리고 사법체계가 무기화될 때 민주주의는 위험해진다는 점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지속적 발전이 우리 공동체가 용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계선이라면, 법과 사법체계가 정치적 목적으로 선택적으로 무기화될 여지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무기여 잘 있거라.

 

권혁용 위원은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