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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관음사를 생각하며(이재승)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3-03 16:48
조회
146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2021년 이후 제주4.3특별법이 개정되면서 제주4.3 군사재판의 재심 및 피해보상 문제 등 주요 현안들은 해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특정한 부류의 피해자를 희생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배제 방침은 국가폭력 이후의 사회에서 화해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 글은 조금 더 수월한 문제로서 제주4.3사건 당시 불교계의 피해를 거론하겠다. 종교인과 종교시설의 피해는 사건 당시 불교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전쟁기에도 전국적으로 불교계의 피해는 심각했으며, 기독교인들도 이념적·종교적 이유로 집단학살을 당했다.
제주4·3사건 당시 불교계는 인적·물적 수난을 당했다. 2025년 발간된 제주불교4.3희생자추모사업회의 자료집 <제주4.3과 불교>에 따르면, 약 17명의 스님이 군경에 의해 총살, 수장, 고문 후유증 등으로 희생되었다. 관음사 주지 오이화 스님은 무장대 내통 혐의로 가혹한 고문을 받은 후 그 후유증으로 입적했으며, 이세진 스님은 자수한 이후 산지포구에서 수장당했다. 당시 제주도 내 사찰은 대체로 중산간지대에 널리 분포했기 때문에 무장대의 은신처나 토벌대의 주둔지로 이용되면서 공방전의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제주도 내 80개 사찰 중 56곳이 방화로 전소되거나 훼손되었다. 최소 16곳 이상이 완전히 불에 타 사라졌으며, 여기에는 관음사, 법화사 등 주요 거점 사찰도 포함된다. 신도들의 노력으로 복원된 사찰도 있지만, 영원히 폐허가 된 곳도 적지 않다.
비상사태에서 종교인의 보호에 관한 근대 국제법을 살펴보자. 이러한 국제법은 좁은 의미의 전쟁뿐만 아니라 반란, 봉기, 평시에도 종교 또는 종교인의 보호에 관한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 교리는 성직자가 직접 무기를 들고 전투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전쟁터에서 종교인은 비전투원으로 간주해 보호받아 왔다. 군대 안에서 종교요원의 보호는 초기 종교적 관습에서 시작되었는데 근대 국제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확립되었다. 또한 포로가 된 군인이나 보호받은 사람도 종교적 관행에 따라 예배를 보는 권리를 보장받았다. 그리고 무력충돌시에 교회나 사원, 문화재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이는 국제적인 전쟁뿐만 아니라 비국제적인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종교요원 및 종교시설의 보호와 특권은 종교인이 출동이나 갈등에 대하여 중립적이어야 하고, 종교시설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 위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원칙은 19세기 후반부터 제네바협약, 헤이그협약, 추가의정서 등 모든 전쟁법에 등장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강행법규나 국제관습법에 해당한다.

그러나 국제적인 전쟁이나 내전 상황에서 이러한 원칙은 곧잘 무시되었다. 나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의 20여 개국에서 나치 체제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성직자들을 2,720여 명을 다카우 강제수용소 사제동에 수용하였다. 민족말살의 대상이 된 폴란드에서 폴란드 가톨릭 사제가 수용소 수용인의 3분의 2에 해당하였다. 수용된 사제 중 1천 명 이상이 수용소에서 사망하였다. 크메르루주 집권 기간에 승려와 불교도들은 집단살해를 당했다. 라틴 아메리카 군부독재 시기에 각국에서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가톨릭 사제들과 수녀들이 살해당하고 강제실종을 당했다. 이러한 사례들을 극복하고 성직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방안도 확립되어 있다. 각국은 성직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유죄판결을 무효화하거나 인권역사박물관을 세우거나 기림비를 세운다. 가톨릭교회는 박해당하여 사망한 신부, 수녀, 평신도를 순교자로 인정하고 시복절차를 진행하였다. 캄보디아에서는 불교를 국교로 다시 지정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도 종교적 박해로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사건들이 있다.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 학살 과정에 모스크, 교회, 불교 사찰 수백 곳이 파괴되었다.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서 교회·모스크가 공격으로 파괴되거나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되었다. 나이지리아에서 보코하람·ISWAP 등 무장단체가 교회를 공격하고 신도를 살해하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백 개의 성당·교회·수도원 등 UNESCO 지정 문화재도 파괴당했다. 이러한 사건의 귀추와 관련해서 최근 국제형사재판소의 결정을 주목해 볼 만하다.
2016년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012년 말리(Mali) 내전 당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슬람 문화재를 파괴한 알 마흐디를 전쟁범죄자로 판단하고 징역 9년을 선고했다. 2001년 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ICTY)는 1995년 세르비아군이 보스니아 내 무슬림 거주지인 스레브레니차를 점령하고 약 8,000명의 무슬림 남성과 소년들을 학살한 행위를 종교적 제노사이드로 처벌하였다. 2005년 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ICTY)는 1991년 발생한 두브로브니크 포위 공격,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구도심(Old Town)에 대한 포격을 전쟁범죄로 판단했다.
제주4.3특별법은 피해를 특정한 피해(사망, 상이, 실종, 구금)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피해는 물적 피해로서 피해 복구의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인적 피해라고 하더라도 연고자가 있는 스님들만이 피해자로 인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연고 희생자들이 다수가 존재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한 제주4.3사건으로 인해 가족 중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제주도민은 공동체로서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는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제주도 내의 부분적인 사회로서 불교계가 입은 피해도 독립 항목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사찰의 파괴는 간단히 물적인 피해로 그치지 않고 공동체에 대한 정신적 공격에 해당하기 때문에 제주 불교계에 대한 상징적인 보상, 개별적 사찰들에 대한 적절한 피해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시설의 복원까지도 이루어져야 하지만, 최소한 해당 사찰의 터에 그 경위를 기록하고 정부의 사과를 담은 기림비 등을 건립해야 할 것이다. 제주도의 불교계를 대표하는 사찰 두어 곳에 제주의 불교사와 불교의 피해를 담은 역사인권박물관과 같은 시설을 설치하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추후에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주4.3특별법 제22조상의 공동체 회복에 관한 규정은 문제를 풀어가는 적절한 권한규정이라고 여겨진다. 제주시민사회, 제주불교계가 제주4.3위원회에 적절한 피해구제를 신청하고, 위원회와 불교계 간의 숙의를 거친다면 좋은 해법은 마련될 것이라고 본다.
혼란의 시기에는 종교시설은 저항자와 박해받는 자들이 은신처로 활용하거나 정부군이 주둔지로 사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사회나 국가가 성직자를 보호할 의무뿐만 아니라 성직자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도와야 할 의무도 존재한다. 종교의 영역에서는 도움을 청하는 속인들을 보호해 줄 의무를 여전히 성직자의 의무 중의 하나로 인정하기 때문이다.1) 물론 성직자가 성직의 범위를 넘어 적극적 투사가 될 때는 일반 시민으로서 자유와 권리의 문제에 속한다.2) 되짚어보는 역사에서 종교의 역할과 종교인의 특별한 보호 의무를 생각하게 된다.
1)최기식 신부는 1982년 3월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의 주동자인 문부식, 김은숙 등이 자수를 위해 원주교구로 찾아왔을 때 이들을 숨겨주고 자수를 주선했다는 이유로 1982년 4월 8일 구속되었다. 최신부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3년 등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83년 8월 12일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대법원은 최 신부의 행위가 사제의 정당한 직무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1983. 3. 8. 선고 82도3248 판결. 한국 천주교회, 특히 김수환 추기경 및 지학순 주교는 강론에서 사제는 언제든지 비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2)미국 내 월남전 반대 운동의 기폭제가 되는 '캔턴즈빌 나인(Catonsville Nine)' 사건은 가장 유명하다. 1968년 5월 17일 베리건 형제 신부를 포함한 9명의 가톨릭 사제 수녀 평신도 활동가들은 메릴랜드주 캔턴즈빌에 있는 징집 사무소(Selective Service office)에 침입하여 378명의 징집 서류를 가져와 주차장에서 직접 만든 네이팜탄을 이용해 소각했다. 이는 미군이 베트남에서 사용한 네이팜탄을 역으로 이용한 상징적 퍼포먼스였고, 이들은 서류가 타오르는 동안 노래를 부르고 기도하며 현장에 온 기자들과 인터뷰를 한 뒤 경찰에 체포되었고 모두 18년형의 선고를 받았다. A Catholic anti-Vietnam War group burns draft records in Catonsville, https://maryland400.org/2024/02/29/a-catholic-anti-vietnam-war-group-burns-draft-records-in-catonsville/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